아빠의 꿈과 나의 피아노

꿈이란?

by 김신애
네가 되고 싶은 사람이 되는 것에 너무 늦거나, 또는 내 경우처럼, 너무 빠른 것은 없어. 그런 것에 시간제한 따윈 없지. 네가 원할 때 멈춰. 뭔가를 바꿀 수도 있고, 그저 똑같이 머무를 수도 있어. 이런 것에 규칙이란 없으니까.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중


나의 어린 시절 꿈은 ‘화가’였다. 나는 어려서부터 미술학원이 제일 좋았다. 그림이 완성되어가는 과정이, 그 시간이 너무나 행복했다. 내 손 끝에 마치 세상의 모든 힘이 모여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모든 종류의 그림을 좋아했지만 특히 나는 얼굴을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얼굴 안에 있는 표정들을 그리면서 나는 그 느낌을 느꼈고, 마치 다른 사람이 된 듯한 그 느낌을 즐기곤 했다. 손으로 뭉개고 붓으로 터치하고. 어깨가 너무너무 아파와도 참을 수 있었다.


그렇게 좋아했던 그림 그리기였지만 전공을 미술로 정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우리 집은 재정이 빠듯했기 때문이었다. 나의 미대 입시 뒷바라지는 우리 집에서 해주시기에는 버거운 일이었다. 게다가 내가 그림 그릴 때 행복한 것과 나의 재능과는 별개의 이야기라서 내가 그림으로 성공할 수 있으리라는 보장도 없었다. 아빠, 엄마는 늘 외동딸인 내가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에도 혹은 결혼을 하지 않고도 자립하여 먹고살 수 있는 직업을 가지고 살기를 원하셨었다.


어느 날 엄마는 나에게 물어보셨다.


“너 미술 하면 늘 일등 할 자신 있어?”


바로 이 질문이 내가 미술 전공을 고집할 수 없었던 이유가 되었다. 당연히 나의 답은 ‘아니오’였고, 그 후는 없었다.


이 질문에도 불구하고 내가 울고불고하며 매달렸다면. 일등은 못해도 평생 행복할 수 있다고 우겼더라면.

그랬더라면 지금 나는 다른 삶을 살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우리 집 사정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고 욕심을 내면 모두가 힘들어진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이렇게 포기한 내 꿈은 이후에 이루어졌었던 내 선택들에 큰 영향을 주었었다. 이렇게 나에게도 지금과는 전혀 다른 어린 시절의 꿈이 있었다.


나에게도 이런 꿈이 있었듯이 우리 아빠에게도 어린 시절 꾸었던 꿈이 있었다.

아빠의 꿈은 바로 ‘성악가’였다.


아빠의 꿈 덕택에 나는 어린 시절, 가요나 트로트 대신 독일어나 이탈리어로 된 오페라나 가곡을 더 많이 들었다. 많이 들었다고 좋아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나는 뮤지컬은 몹시 좋아했지만 오페라는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다. 너무 많이 들어서 성악곡들의 선율은 다 익숙해졌지만 내용이 재미있어 보이지도 않았다. 오페라가 얼마나 재미있는지 모른다고 부모님은 말씀하시곤 했다. '그래, 재미있으니까 전 세계에서 계속 공연이 되겠지.'라고 생각은 했지만 오히려 집에서 너무 많이 들어서 역효과가 났는지 크게 관심이 가지는 않았다. 원래 강요의 향기가 나면 더 멀어지게 되는 법이다.


성악곡들과 성악가들을 싫어했던 것은 아니다. 심지어 나는 성악가들의 목소리 중에서 ‘동굴 목소리’라고 불리는 바리톤의 음색을 가진 남성들을 선망했다. 이 목소리는 저음의 목소리로 마치 동굴에서 울려 나오는 소리와 비슷하다고 해서 다들 그렇게 부른다고 했다. 매력적이면서도 섹시한 느낌을 주는 목소리다. 슬픈 사실은, 아빠는 바리톤이 아니었다. 테너였다.


그때에는 3명의 테너가 유명했는데, 바로 루치아노 파바로티(Luciano Pavarotti), 플라시도 도밍고(Plácido Domingo), 호세 카레라스(Jose Carreras)였다. 세계 3대 테너라 불리는 이 세 명의 성악가는 그 당시 함께 모여서 공연을 했는데 아마도 그 공연 실황의 비디오는 우리 집에서 가장 많이 틀어진 비디오였을 것이다. 얼마나 들었으면 나는 이 공연 실황에서 어느 부분에 어떤 노래가 나오고 가수들이 어떤 몸짓을 하는지, 심지어 언제 박수가 얼마나 길게 나오는지도 외울 정도였다.


아빠는 나에게 자신의 꿈에 대해 따로 불러서 이야기를 해주신 적은 없었다. 음악에 대한 느낌을 나눈 적도 없었다. 그렇지만 유일하게 아빠가 음악과 관련하여 나에게 기대했던 것이 있었다. 바로 딸이 반주하는 곡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시는 것이었다.


불행하게도 나는 음악, 특별히 피아노에 크게 재능이 없었다. 동네의 피아노 학원에 보내 놓으니 악보는 보지 않고 소리만 듣고 치겠다고 우기기도 했고 피아노 학원이 이사 갔다고 말하며 집으로 돌아오는 경우도 있을 정도였다.


넉넉하지 않았던 살림에도 불구하고 우리 집에는 피아노가 있었다. 나는 그 피아노가 정말로 부담스러웠다. 시켜서 억지로 하는 것을 몸서리치게 싫어했던 나는, 엄마가 바를 정(正) 자를 그려가며 나의 연습 횟수를 적으며 강요하는 것이 싫었다. 특히 손 연습으로 주어진 하농을 계속 반복해서 치는 것은 정말 곤욕이었다.


이렇게 피아노 연습을 싫어했던 내게 반주라니 너무나 잔혹한 일이었다. 하지만 아빠의 마음속에서 기대되는 딸은 여성스럽고 피아노 반주를 잘하는 딸이었다. 이상적인 딸의 흉내라도 낼 수 있었더라면 좋았겠지만 원래 이상형은 가질 수 없는 법. 게다가 아빠를 무서워했던 나는 아빠가 간단한 곡이라도 악보를 주고 치면 노래를 부르시겠다고 하면 본래 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이 틀려서 아빠의 눈총을 샀다.


“자 이거 좀 쳐봐.”


아빠는 악보만 던져 주시면 내가 반주를 마법처럼 칠 수 있길 바라셨던 것 같다. 실제로 그런 사람들이 있던데. 하지만 나는 연습을 백번은 해도 안 틀리고 칠 수 있을까 말까 한데, 그게 가능했겠는가.


“자~시작!”


시작은 무슨 시작. 가곡은 항상 시작 전에 전주가 있었는데, 그 전주부터 계속 틀리니 노래는 늘 시작도 하지 못했다. 어찌어찌해서 노래가 시작되는 부분까지 어떻게 무사히 연주하더라도 아빠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면 제대로 한 마디를 다 끝내지 못했다.


그런 반주에 어떻게 노래를 부를 수 있었겠는가. 아빠는 나의 반주를 짜증스러워했고, 그러면 그럴수록 나는 그런 시간들과 피아노가 정말 정말 싫어졌다. 그래서 나는 내가 그만둘 학원을 선택할 수 있었을 때 모두의 실망을 뒤로하고 피아노를 가장 먼저 그만두었다. 그래도 ‘체르니 30번’까지 쳤었다. 정말 오래 버틴 셈이다.


피아노를 그만둔 후 나는 ‘나비야’의 반주도 하지 못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하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나의 피아노에 대한 인상은 ‘정말 더럽게 싫은’ 것으로 남았다.


아빠가 돌아가신 후에 나는 우연히 동네 복지관의 피아노 교실이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게 되어 시간이 좀 나게 되었을 때였다. 갑자기 그렇게 싫었던 피아노를 다시 도전해 보고 싶은 마음이 불현듯 들었다. 그래서 덜컥 나는 피아노 교실에 등록을 했다.


아무도 내게 피아노를 잘 치는 것을 기대하지 않았던 그때, 나는 매일 피아노를 3시간씩 연습했다. 잘 안 되는 부분을 될 때까지 쳐보고, 또 치면서 내가 치는 그 음률에 기쁨을 느끼고 감동을 느끼기까지 했다. 나는 바이엘부터 다시 쳐야 했었다. 기억이 나는 게 있어야지. 그런데 바이엘을 다시 치면서 그 안에 정말 좋은 곡이 많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내가 연습을 너무 열심히 하니까 복지관에서 청소를 해 주시는 아주머니는 자연스럽게 나의 피아노 소리를 많이 듣게 되셨다. 어느 날 그분은, “회원님 피아노 소리는 뭔가 느낌이 남달라서 자꾸 와서 듣게 돼요.”라고 말씀해 주셨다. 그 말은 내게 정말 큰 힘이 되어주었다.


나는 피아노에 재능은 없었지만 그렇게 피아노를 치며 음악을 즐기는 법을 익혔다. 그러면서 생각하게 되었다. 어째서 아빠가 그렇게 내가 피아노 반주를 해주기를 원했을 때는 피아노가 그렇게 싫었을까? 그때 피아노를 쳤으면 내는 아빠와 조금은 더 가까워졌을까? 아니면, 더 멀어졌을까?


아빠가 돌아가신 후 유품을 정리할 때 놀랐던 것은 어마어마한 양의 악보와 음악 테이프 그리고 시디였다. 이걸 다 어떻게 모았지 싶을 정도였다. 복사된 악보를 서류철에서 하나하나 다 뽑아내서 종이 쓰레기를 분리하는 것이 힘들 정도였다.


나는 후회했다. 아빠의 꿈에 좀 더 귀 기울여 드리지 못했던 것을. 아빠도 어린 시절이 있었고, 꿈이 있었다. 내가 글을 쓰고 책을 내보고 싶어 하고, 교사가 되어 보고 싶어 하고, 연극배우가 되어보고 싶어 했던 것처럼, 아빠도 성악곡을 들으며 가쁨을 느끼고 무대에 서서 노래하는 테너 가수가 되는 꿈이 있었다.


(아빠와의 화해)


아빠, 그때 아빠 노래의 반주를 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한 곡만이라도, 단 한 곡만이라도 해드릴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아빠의 꿈에 대해서 아빠가 좋아했던 것들에 대해서 좀 더 이야기를 들어드렸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랬다면 저도 제 꿈을 이야기해 드릴 수 있었을 것이고 아빠도 좀 더 저를 이해해주시지 않았을까요?


사실 저는 아빠가 저에게 ‘잘한다.’고 칭찬해 주시는 것이 정말로 듣고 싶었어요. 아빠한테 인정받고 싶었답니다. 그것이 제 진심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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