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망스러운 선물

나에 대해 물어봐주세요.

by 김신애

3. 실망스러운 선물


나 대신 산타에게 전해주시겠어요? 선물 대신 가족을 돌려달라고요.

-영화 ‘나 홀로 집에’ 중


요즘은 선물을 할 때 상대의 취향을 고려한다. 아들에게 선물을 사주려면 그냥 사주지 않는다. 먼저 아이에게 무엇을 가지고 싶은지 물어봐야 한다. 그리고 때로는 무엇인지 정확하게 아이가 그 물건의 사진을 링크로 걸어 공유해 준다. 심지어는 아이가 직접 검색해서 최저가를 찾아서 상품의 링크를 보내주기도 한다.


그런데 옛날에는 아이에게 선물을 사줄 때 아이의 취향을 고려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아니, 우리 집만 그랬나. 아빠가 내게 보내주셨었던 선물들을 잘 살펴보면 그 사실을 잘 알 수 있다.


아빠가 해외에 계실 때 보내주셨던 선물은 귀한 것들이었다. 하지만 나의 취향을 고려한 것들은 아니었다. 나를 제일 잘 안다고 자부하는 우리 엄마가 편지를 그렇게나 많이 보낸 것으로 보아 그 안에 내 취향도 들어있을 법도 한데, 보내주시는 선물들은 내가 좋아할 만한 것들이 아니었다. 내가 좋아하기를 바랐던 것들이 아니었을까.


엄마도 내 취향을 반영하여 선물을 고르시지는 않았다. 집안 사정이 어려워서 내가 가지고 싶은 것들을 다 사줄 수 없었던 것은 이해가 간다. 하지만 주된 이유는 나의 취향과 엄마가 생각하는 '내가 좋아하여야 마땅한 것'의 모습이 달랐던 것이었다. 나는 공주처럼 긴 머리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엄마는 수영하려면 짧은 머리가 좋다며 쇼트커트를 해주셨다. 공주 같은 치마를 나폴 대며 입고 다니고 싶었지만 편하다며 바지를 사주셨다. 실용성에 기초한 것들이었다. 그러나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항상 헷갈려야만 했다. 심지어 내가 좋아하는 것은 가질 필요가 없는 헛된 물건들이라는 생각도 하곤 했다.


아빠는 늘 나에게 남자아이들이 좋아할 법한 선물들을 보내왔다. 작은 자동차들이 그 좋은 예이다. 아, 심지어 그 미니카들은 아랫집 남자아이가 탐내서 항상 우리 집에 와서 내 방에서 그걸 가지고 놀곤 했었다. 나랑 친하지도 않았는데 내 방에 와서 누워서. 그 후에 엄마가 그 미니카를 그 아이에게 선물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것 참.


내가 초등학생이었던 어느 날의 일이었다. 아빠가 엄마를 통해 내가 무엇을 갖고 싶은지를 물었다. 직접 물어봐도 될 텐데 꼭 전화기로 대화하듯이 엄마를 통해 의사를 물었다. 그때 나는 정말 가지고 싶은 것이 있었다. 예쁜 인형. 다른 여자아이들은 하나씩 예쁜 여자 인형을 가지고 있지 않던가. 그 아이들이 인형을 가지고 놀 때 나는 늘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곤 했었다.


무엇을 사줄까 물어보면 잘 모르겠다고 대답하곤 했지만 몹시 가지고 싶었던 것이 있었기에 조심스럽지만 힘 있게 대답했다.


“응응... 예쁜 여자 아기 인형을 가지고 싶어.”


나는 더 설명을 했어야 했다. 아예 그림을 그려주었어야 했다. 아니, 사진을 찍어주었으면 더 나았을 텐데.


내 생일이 다가오고 있었다. 일단 말을 해놓자 나는 은근히 기대가 몽글몽글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너무 크게 기대해서는 안돼. 크리스마스 때 산타에게 크게 실망한 일이 있어서 선물에 큰 기대를 하면 안 된다는 것은 깨우쳐 알고 있었다. 다른 애들한테는 장난감을 주었지만 나에게는 책을 주었었거든.


그런데 그해 생일 일어난 일은 조금 전개가 색달랐다.


‘정말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으신 거야? 그럼 뭘 가지고 싶은지는 왜 물어본 거지?’


나는 나의 생일날, 퇴근하시는 아빠의 손을 흘끔거리며 속으로 실망감을 감추며 생각했다.

기대하지 않는다고 마음을 다 잡았었지만 실망감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선물이다.”


긴 미사여구 없는 깔끔한 아빠의 대사였다.


갑자기 나타난 선물 박스를 받아 든 나는 기쁨 반, 걱정 반이었다. 인형 일지 아닐지도 잘 모르겠고, 내가 괜한 말을 해서 금전적으로 여유도 없는데 아빠 엄마가 무리해서 선물을 사신 건 아닌지도 조금 걱정도 되었다. 뭘 그렇게 많이 생각하나. 나는 모든 것을 잊고 포장지를 빠르게 뜯었다. 자고로 나는 선물포장을 그렇게 많이 하는 것은 비효율적인 일이라고 여긴다. 뜯는 과정이 열받는다. 포장지가 뜯어지고, 나는 선물의 정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나의 표정이 어땠는지 잘 모르겠다. 아직도 나는 그때 내 표정을 내가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울음을 터뜨렸다. 부모님이 나를 어이없는 표정으로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거기 앉아서 계속 울 수는 없었다. 나는 화장실에 뛰어들어가서 문을 잠갔다. 그다지 큰 집이 크고 방음이 끝내주지도 않았으니까 화장실에서 울려 퍼지는 내 통곡 소리는 분명히 밖에 들렸을 것이다. 아빠 엄마가 내가 왜 그러는지 몰라서 서로 얘기하시는 소리가 조그맣게 들렸다. 훌쩍거림이 조금 진정이 되었을 때 나는 문을 열었다. 아빠가 대표로 지정하여 파견한 엄마가 와서 나에게 조심스럽게 왜 그러는지 물어보셨다.


“응......(훌쩍~) 인형이 너무 예뻐서 그래.”


나는 너무 가지고 싶었던 인형을 받아서 감동받아서 그렇다고 설명했다. 아빠 엄마도 미심쩍은 표정이긴 했지만 일단 수긍하는 표정이었다.


내가 한 말은 나의 진심이 절대 아니었다.


정말 그 상자 안에는 인형이 들어있었다. 그것도 남자 인형이 아닌 여자 인형이 들어있었다. 내 주문에 맞추어서 산 인형이 맞았다. 문제는 인형의 생김새였다. 그 인형은 내 기대와는 너무나 다르게 정말 정말 정말 너무나 못생겼었던 것이었다. 그렇게 많은 인형들 중에 어떻게 그렇게 내가 제일 싫어할만한 인형을 고를 수 있었던 것일까.


그 인형이 어른 기준에서 예뻐 보이는 물건이었는지 알 수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만약에 아빠 엄마가 평소에 나의 취향을 조금만 더 아셨더라면 나는 선물을 보고 통곡할 필요가 없었을 텐데.

인형의 금발 머리는 남자처럼 짧았다. 눈도 감았다 떴다 할 수 있었지만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아닌 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내가 가지고 싶었던 것은 여성스러운 긴 머리를 가진 미소를 띤 공주였는데 말이다.


도저히 그 인형이 못생겨서 싫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나오는 울음은 참을 수도 없었다.


나는 그 인형을 많이 가지고 놀지 않았다. 그 아이를 볼 때마다 실망감이 밀려왔다. 불쌍한 인형.


우리 부모님은 그날 나의 생각과는 다른 결론을 내렸다.

'우리 딸은 인형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구나.'


이 황당한 선물 대통곡 사건이 있기 전에도 후에도 나는 아빠에게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잘 말해 준 적이 없었다. 그리고 아빠 또한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내가 정말 원하고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몰랐다.


(아빠와의 화해)


아빠, 미안해요. 아빠는 사실 어떻게 해야 상대방을 이해하고 기쁘게 해 주는지 서투른 것뿐이었을 텐데,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고 어떻게 하고 싶은지도 자세히 설명해 드린 적이 없네요.


그때는 나도 내 마음을 잘 몰랐고 표현이 서툴러서 그냥 어른인 아빠가 다 알아주기를 바랐어요. 그만큼 어른들은 대단한 존재로 보였어요.

말을 안 하면 당연히 내 마음을 모를 수밖에 없다는 당연한 사실을 그때는 몰라서 그랬답니다.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아빠에게 직접 가서 말할 거예요.


“아빠, 사실 저는 공주처럼 예쁜 인형이 가지고 싶어요. 아빠가 내가 좋아하는 아이를 모를 수 있으니까 내가 아빠랑 같이 가서 골라도 돼요? 아빠 같이 가요.”라고요.


왜, 매사에 함께하자는 얘기를 하지 못했을까요? 내가 그렇게 말했다면 아빠는 더 좋은 아빠가 되었을 것이고 저는 애교가 많은 딸이 되었을 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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