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 충성스러운 강아지들

애교는 아빠를 춤추게 한다.

by 김신애


"아빠가 나가면 아빠 향수 냄새가 나요. 아빠의 냄새예요."
- 영화 '타임 투게더' 중



“끼깅~~ 깽~~~ 끄응~~ 끄응~~”

“쟤 또 시작이니?”

“응, 아빠 오셨나 보네.”


우리 집에서 아빠의 퇴근 시간이 되면 흔히 벌어지는 광경이었다. ‘코코’라고 불리는 이 놈은 아파트에 이 시간이 되면 주차되는 수십대의 차 소리 중에 아빠의 차 소리를 알아차리는 희귀한 능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놈은 차 소리가 나면 갑자기 벌떡 튀겨지듯이 일어났다. 그런 다음 집을 향해 걸어오시는 아빠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면서 정말 딱 ‘미친 것처럼’ 환영 의식을 준비하곤 했다.


우리 집에서 자란 반려견은 총 세 마리였다. 그리고 이 세 반려견들은 모두 안하무인이었고 아빠의 충견들이었다. 아마 아빠가 그렇게 만들었던듯싶다. 강아지들은 모두 아빠의 극진한 사랑을 받았다.


맨 처음에 내가 강아지를 키우자고 조르기 시작했을 때 엄마는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거절했었다.


"나는 꽃가루 알레르기가 있는데, 강아지 털에도 어떨지 모르잖니. 그리고 너 하나 키우기도 힘든데 강아지까지 건사해야겠니."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나는 거의 포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말씀은 안 하셨지만 아빠도 강아지를 키우고 싶으셨던 것일까, 아니면 정말 나의 의견을 받아들이셨던 것일까. 어느 날 강아지를 한 마리 데려오셨다.


우리 식구가 되었던 첫 강아지는 '미니 핀' 종이 었고, ‘던(dawn)’이고 불렸다. 처음으로 온 강아지였기 때문에 이름을 지을 때 공을 많이 들였었다. 영어사전을 열심히 뒤져서 영어로 ‘새벽’이라는 이 강아지의 이름을 지어주었던 것은 바로 나였다. 그러나 뜻과는 상관없이 이 녀석은 보통 ‘더니 더니’나 ‘던던’으로 불렸고, 그 뜻이 '새벽'인지 '황혼'인지 기억하는 사람은 나 외에는 아무도 없게 되었다.


이 녀석은 말 그대로 그냥 마냥 천방지축이었다. 예쁨만 받고 자란 이 ‘던’은 얄밉게 반항도 하고, 말썽을 무던히도 피웠다. 그때 우리 집에는 알로에 화분이 하나 있었다. 아빠가 드시거나 상처에 바르기 위해 키웠던 것이었다. 그런데 던은 틈만 나면 야금야금 그 알로에를 깨물어 먹었다. 야단을 맞으면 맞을수록 그 현상은 더 잦아졌는데 야단맞으면서 먹는 그 과정 자체도 즐기는 듯했다. 그 아이는 '약 오르지?'하고 말하는 듯한 표정으로 알로에의 끝부분을 꼭꼭 씹어먹었다. 알로에의 효과인지 던의 털은 항상 반지르르 윤기가 흘렀고 표정은 늘 장난기가 가득했다.


미니핀은 사냥개 종류라고 한다. 그것이 사실인지는 몰라도 던은 사냥을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엄청나게 빨리 뛰었다. 게다가 웬만한 높이에서는 망설임 없이 그냥 뛰어내렸다. 한 번은 한강변을 데려간 적이 있었는데, 목줄이 풀어지면서 강아지가 질주를 한 적이 있었다. 나와 던은 정말 미친 듯이 서로를 바라보며 달렸었다. 녀석은 나를 자꾸 돌아보며 뛰었는데, 내가 자신을 쫓아오고 있는 것을 즐기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얄미웠지만 정말로 잃어버리게 될까 봐 지쳐 쓰러질 때까지 쫒아서 뛰었었다. 이때 이후로 내가 깨달은 것은 개랑 달리기를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이길 수가 없다.


두 번째 강아지가 바로 아빠가 퇴근할 때 요란한 환영인사를 했던 페키니즈인 ‘코코’였다. 페키니즈는 코가 눌린 모습이어서 ‘코’를 강조해서 이름을 지었었다. 작명은 늘 내 몫이었는데, 정성을 들여 이름을 선정했던 처음과는 달리 두 번째는 대충 용모를 보고 이름을 지었다. 그래서 그런지 나중에 알고 보니 페키니즈 중에는 '코코'라는 이름이 엄청나게 많았다.


이 강아지는 어미 개의 갑작스러운 변고로 아주 어릴 때에 오게 되었다. 그런데 이 강아지가 집에 왔던 그때 아빠가 몸이 불편하셔서 입원을 하시고 부모님께서 집을 비우게 되었다. 나는 부모님이 안 계시는 사이 어린 강아지가 탈이 날까 봐 노심초사하며 잠을 설쳐가며 어린 코코를 키웠다. 그래서 그런지 어릴 때의 ‘코코’는 나를 무척 따랐다. 그러니까 다른 강아지들은 몰라도 이 아이만큼은 나의 충견이 되었어야 했다. 거위도 처음 본 사람을 각인하고 따른다고 하지 않는가. 하지만 강아지는 거위랑 달랐다. 요놈은 권력의 구조를 정말 기가 막히게 파악했다.


자라나면서 이 집안의 서열을 파악하기 시작한 코코는 어느 순간부터인가 아빠에게 애교를 부리고 그 이득을 챙기기 시작했다. ‘코코’에게는 아빠가 오시는 차 소리까지도 알아내는 것은 쉬운 일이었으며 아빠의 발소리만 들어도 바닥에 오줌을 질질 흘리면서까지 좋아했다. 관심을 가지면 깨우치고 경지에 이르게 된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이 경지에 이른 ‘코코’의 아빠를 환영하는 모습은 정말 대단했다. 그 당시 휴대폰이 있었다면 촬영해서 보관해 놓았을 텐데 참 안타깝다. 그 광경은 ‘광란의 도가니’였다고 표현하는 것이 제일 적합할 듯하다. 코코는 제정신이 아닌 듯한 모습으로 날뛰며 이상한 소리를 내고 펄쩍거렸다.


이 엄청난 환영연의 대가로 ‘코코’는 아빠의 엄청난 사랑을 받았으며 나의 윗자리에 군림했다. 우리 집의 서열은 ‘아빠’,‘엄마’,‘코코’,‘나’의 순서로 정해졌던 것이다. 나는 가족들이 모두 모일 경우에는 거실의 소파 위에도 앉지 못할 정도였다. 가족들이 모두 있을 때 내가 가끔이라도 소파 위에 앉으려고 하면 강아지가 나를 우악스럽게 쫓아내고 아빠 옆자리에 앉았다. 아빠는 강아지를 나무라시기는커녕 그 모습을 만족스럽게 바라보셨다. 아빠의 옆자리를 지키려는 코코의 모습이 예뻐 보이셨던 것이다.


코코는 어느 날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우리 가족은 모두 슬퍼했다. 그중 단연 아빠의 상실감은 가장 컸다. 평상시에는 잘 우시지 않던 아빠가 누구보다 슬프게 눈물을 흘리셨던 것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코코'가 죽은 후에 아빠는 코코를 잊지 못하시고 그리워하시다가 동일한 종의 강아지를 데려오셨는데 이 강아지가 우리 집의 세 번째 강아지인 ‘삐삐’였다. 삐삐는 코코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열심히 애교를 부렸지만 코코의 빈자리를 완전히 없앨 수는 없었다. 아빠는 삐삐 역시 예뻐하셨다. 하지만 삐삐는 코코처럼 아빠에게 충성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우리는 그 광란의 환영연을 다시는 볼 수 없었다.


우리 집에 왔던 세 마리의 반려견들은 모두 너무 아낌을 받은 나머지 약간 건방졌다. 티브이에서 반려견 훈련사들이 하는 말을 따르자면 교육적으로 약간 망쳐졌다고나 할까. 사실 나는 가끔 아빠가 그 강아지들의 반만이라도 나를 예뻐하고 아껴줬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본 적이 있었다. 나는 인간이기에 그렇게까지 예뻐하면 교육적으로 좋지 않아서 아빠가 배려해 주신 것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훗날 손주를 예뻐하시는 모습을 보면 이건 반려견에 비할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문제는 나였다는 건데.


아마도 아빠가 집에 돌아오셨을 때 달려 나와서 반기지 않았던 게 문제가 아니었을까 싶다.



(아빠와의 화해)


아빠, 아빠는 사실 나를 그렇게 예뻐하고 싶었던 것이지요?


내가 아빠가 돌아왔을 때 강아지들의 반만이라도 환영했다면, 뛰어나와 반갑게 인사라도 했었다면 아빠와 훨씬 잘 통할 수 있었을 텐데.


아빠, 미안해요. 사춘기라는 이유로, 공부할게 많다는 이유로, 그냥 성격이 그렇다는 이유로 제가 미처 헤아리지 못했고 아빠에게 조금도 맞춰드리지 못했어요. 조금만 더 노력했더라면, 조금만 더 헤아렸다면 우리는 정말 좋은 부녀가 되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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