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

-그날의 기억, 사춘기

by 김신애
노여움에 관한 기억은 그것이 아무리 희미한 것이라도 다시 분노의 불길로 치솟게 한다.
-푸블릴리우스 시루스

“야, 너 지금 내 땀이 더럽다는 거야?”


이것은 내가 아빠에게 얻어맞기 전에 들은 분노가 가득 담긴 한 마디였다.


나는 그날 아빠에게 인정사정없이 맞았다.

맞은 후 후유증은 대단했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났을 때 아빠에게 머리채를 잡혔던지라 두피가 너무 아팠다. 머리카락이 일어서는 기분이 이런 건가 싶은 느낌이었다. 멍이 든 몸도 욱신거렸다.


몸이 아픈 것은 참을 수 있었다. 내가 진짜 아팠던 것은 몸이 아니라 마음이었다.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그날은 매우 더운 날이었다. 날이 더우면 모든 사람들이 짜증이 나고 예민해지기 마련이다. 이런 날은 자고로 서로 조심하며 심기를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


짜증이 날만큼 더운데 에어컨은 돌아가고 있지 않았던 바로 그날, 아빠는 운동을 나가시고 엄마는 일이 있어서 집에 계시지 않았다. 배가 고팠던 나는 집에 있던 식빵을 굽고 계란을 부치고 해서 빵 사이에 끼워 막 입에 집어넣으려고 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 집에 아빠가 들어오셨다.


덥고 짜증이 나 있으셨는데, 내가 무언가를 먹으려던 것을 보고 퉁명스러운 얼굴로 달라고 하셨다.

그냥 드렸으면 좋았을 것이다.


변명을 하자면, 나도 배가 몹시 고팠다. 게다가 나는 고분고분하지 않은 사춘기였다.

아빠가 갑자기 들어와서 막 먹으려던 음식을 내놓으라고 하니 나는 심기가 편하지 않았다.


“아빠가 만들어 드세요.”


이 말에는 짜증스러움이 잔뜩 묻어있었다. 딸자식이 고분고분하게 ‘네.’라고 대답하지 않자 아빠의 얼굴은 퉁명스러운 표정에서 속이 부글부글 끓는 표정으로 변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땀에 젖은 아빠의 옷이 잘 벗겨지지 않았다.


“이리 와서 이것 좀 당겨라.”


나는 땀이 묻은 옷을 잡고 싶지 않았던 터라 양손 모두 엄지와 검지 손가락만을 이용하여 그 옷을 잡으려고 했다. 나의 표정도 이 상황이 마땅치 않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아빠의 분노에 찬 일갈이 터져 나온 것은.


에어컨만 틀어져 있었어도 좀 괜찮지 않았을까. 나는 지금도 그때의 일을 돌아보며 그런 생각을 하곤 한다.


흥분한 아빠의 부리부리한 눈이 진노함을 담아 완전히 커졌다. 그게 위험의 첫 번째 신호였다. 사실 두 번째 신호 같은 것은 없었다. 아빠가 우악스럽게 내 머리채부터 잡아챘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머리채를 쥐고 흔들면서 그 크고 두터운 손으로 때리기 시작하셨다. 아뿔싸,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 말려 줄 엄마가 집에 없었다. 나는 이런 일이 처음인지라 당황했다. 어떻게든 방어하려 했지만 이성을 잃은 아빠는 인정사정도 없었다. 게다가 힘이 너무 세서 내 힘으로 막아내기는 역부족이었다. 이러다가 맞아 죽겠다 싶었을 때 다행히 집에 돌아오신 엄마가 뭐라고 소리치시며 아빠의 두 손을 붙드셨다. 엄마가 아빠를 막아서는 그 순간, 나는 후다닥 방으로 뛰어들어가서 문을 잠갔다.


방에 들어가서 문을 잠그고 나니 우선은 안도감이 밀려왔다. 몸이 계속 부들부들 떨렸다. 이게 왜 이렇게 떨리는 거지? 몸이 떨리는 것이 놀라서인지 화가 나서 인지도 알 수가 없었다. 그제야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온몸은 상처가 나서 따갑고 아팠다. 나는 거울을 보며 얼굴과 몸에 난 상처들을 확인했다. 내 얼굴은 상처와 눈물로 꼴이 말이 아니었다. 거울을 보면서 아파서 흘리던 눈물은 차츰 억울함과 분노의 눈물로 바뀌어갔다.

‘지금 나, 계란 프라이랑 땀에 젖은 옷 때문에 이 지경이 되게 맞은 거야?’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었다. 내가 이렇게 두들겨 맞을 일이 아니지 않은가.


문밖에서는 아직도 엄마가 아빠를 말리고 있었다.

“당신이 너무 오냐오냐 키우니까 애가 저런 거잖아.”

아빠가 온 동네가 울리도록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포효했다. 아빠는 내가 마음에 안 드는 행동을 할 때마다 저런 식으로 엄마에게 책임을 전가하곤 했다.


아니,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는 거야? 먹을걸 달라고 할 때 흔쾌히 드리지 않아서? 아니면 땀에 젖은 옷을 덥석 잡지 않아서? 그게 그렇게 분노할 일인가? '아이고, 우리 아빠의 귀한 땀인데 제가 만지지 않으려 하다니 제가 미쳤지요.' 나는 방에서 울면서 마음속으로는 분노의 폭언을 쏟아내고 있었다. 대체 왜 나에게는 화만 잘 내고 폭력만 휘두를 줄 아는 저런 아빠가 있는 것일까? 하나님께서는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신 것일까?


아빠의 폭력은 나의 잘못된 행동을 교정하기는커녕 아빠에 대한 나의 분노와 적대감만을 불러왔다. 나는 이 사건으로 아빠를 이해해보려는 노력을 이후로는 조금도 하지 않게 되었다. 조금만 돌아보았어도 나의 태도에도 뉘우칠 점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빠의 손찌검 이후 아빠에 대한 분노와 편견으로 더욱 견고한 성을 쌓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는 점점 더 멀어져 갔다.


(아빠와의 화해)


아빠, 나도 자식을 낳고 키우다 보니 아이가 그날의 나처럼 행동하면 화가 나더라고요. 제가 아빠를 존중하지 못했고, 지나치게 이기적이었죠. 아마 아빠가 화가 나신 것은 그날 하루의 일 때문만은 아니었을 거예요.


아빠가 ‘때린 것은 미안해.’라고 한 번만 이야기해주셨다면 저도 조금은 아빠를 이해하려고 돌아보게 되었을 텐데요. 우리는 자존심을 위해 너무 많은 세월을 돌아왔네요. 삶과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은 지금에야 이 이야기를 꺼낼 수 있다니.


우리 이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서로 사과하고 이해해 줄 수 있지 않을까요? 아빠가 살아계실 때 직접 이야기를 나누고 화해했으면 정말 좋았겠지만, 이제라도 제 마음속에서 아빠에게 사과하고, 또한 아빠를 용서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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