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 않고 버티기
편견은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게 하고,
오만은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하지 못하게 한다.
-제인 오스틴 ‘오만과 편견’ 중
어떤 사람과 말하지 않고 한 집에 산다는 것은 가능할까?
답은 ‘가능하다.’이다. 바로 이 내가, 살아 있는 증인이다.
나는 아빠와 한 마디도 하지 않고 한 집에서 버텨보았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반년 정도는 버텨봤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아빠는 내가 사춘기에 접어들 무렵부터 내가 하는 말에 벌컥벌컥 화를 내시곤 했다. 원래부터도 마음에 안들 때에는 화를 내시긴 했지만 나의 태도가 달라진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어렸을 때는 아빠가 화를 내면 달팽이처럼 나만의 세계 속으로 쏙 숨어들었었다면 언제부터인가 나는 따박따박 아빠의 말에 토를 달기 시작했다.
이렇게 시작된 사소한 불순종들에 화가 나신 아빠는 어느 날부터인가 나를 무시하기 시작하셨다. 말을 해도 안 통한다고 여기셨던 것일까. 불같은 성미가 아빠를 똑같이 닮았다고 평가받는 나 역시 그런 아빠에게 빌거나 사과를 할 마음이 전혀 없었다. 우리는 닮았기에 더 부딪혔다.
누가 먼저 이야기를 꺼내던지 먼저 이야기를 시작하면 지는 것이다.
이건, 승부였다.
아빠와 대화하지 않고 지내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나는 학교에 가야 하니 이른 시간에 집에서 나섰고, 아빠는 유람선 선장님이시라서 출근이 늦은 편이셨다. 내가 학교에 가면 아빠는 집에서 쉬셨고 내가 돌아올 때쯤에는 아빠가 출근을 하셨으니까 우리는 마주칠 시간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 그리고 늦게 아빠가 집에 오시면 나는 내 방으로 들어가서 문을 잠갔다. 찰칵, 마음의 빗장을 거는 것처럼.
아빠와 나는 오직 엄마와만 이야기했다.
우리는 그 당시 아주 조그만 집에서 살았다. 하지만 마음속에서는 드넓은 궁전의 양 끝에 위치한 방에 떨어져 살았다. 서로 불러도 절대로 들리지 않는 그런 거리에 말이다. 우리는 서로 양보하고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
(아빠와의 화해)
아빠, 저는 제가 아빠보다 나은 사람이라고 여겼어요. 아빠에 대해서는 그 누가 어떤 말을 해도 고집스럽고 화만 잘 내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제 시선을 바꾸지 않았어요.
죄송해요, 아빠. 이 모든 생각들이 모두 저의 ‘오만’이었고, ‘편견’이었음을 늦었지만 지금 고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