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일은 내가 술집의 긴 테이블의 가장 안쪽 구석에 앉게 되면서 생긴 일이었다. 원래 일찍 참석하면 일찍 나올 수 있는 줄 알고 먼저 모임 장소에 도착해 있었는데 어떻게 하다 보니 밀려서 가장 안쪽으로 들어가서 앉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모임은 사람들이 다 와야 시작되기 때문에 내 마음대로 일찍 시작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여지없이 9시에 삐삐가 울렸고, 나는 맨 안쪽 자리에서 밖으로 나가야 했으니 눈에 띄지 않고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나가는 방법은 탁자 아래로 기어나가거나, 선배들과 교수님이 다 일어나셔서 내가 나가도록 자리를 비켜줘야만 했다. 식탁 아래로 기어나가면 두고두고 기억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이런 나에게 대학교 시절 붙여진 별명이 있었으니 바로 ‘신데렐라’이다.
내가 공주처럼 예뻐서 붙여진 별명이면 좋았겠지만 슬프게도 그건 아니었다.
바로 9시가 되면 어디에서든 일어나서 나와야 했기 때문에 생긴 별명이었다.
마치 공주가 시간이 되면 다시 재투성이의 아가씨로 변하듯이.
게다가 우리 아빠는 신데렐라에 나오는 요정보다 시간제한이 더 빡빡했다. 신데렐라는 12시에 나가면 되던데, 나의 경우는 바로 밤 9시가 종이 울리는, 아니 삐삐가 울리는 바로 그 시간이었다.
대부분의 수험생들은 대학생활을 꿈꾼다.
‘이 지겨운 공부를 끝내고 나면 대학에 가서 놀아주겠어.’ 따위의 다짐을 하며 마지막을 버티는 것은 흔한 일이다. 나 역시 그런 학생 중 한 명이었다. 고등학교 때 딱히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더라도 빡빡하고 스트레스받는 수험생활에서는 벗어나고 싶게 마련이다.
그 생활을 벗어나서 그들이 누리고 싶은 것은 바로 ‘자유’다. 공부하라고 압박받지 않아도 되는 그런 자유.
그러나 나의 대학생활은 ‘시간제한’에 걸려서 매우 퍽퍽한 모습으로 출발했다. 내가 다니던 H대학에서 우리 집은 1시간이 넘어 걸리는 거리였다. 지금처럼 지하철이 많지 않아서 상당 부분을 걸어야 했다. 따라서 통학은 시간도 걸리고 힘들기도 했다. 그런데 매번 밤 10시까지 집에 들어오라니. 모임은 대체로 술자리가 많았기 때문에 7, 8시는 되어야 시작했다. 9시에 일어나야 하는 나는 모임이 시작하고 자기소개도 마치기 전에 나와야 할 때도 있었다. 처음에는 뭘 모르고 가장 안쪽으로 밀려 들어갔다면 나중에는 빨리 나올 수 있는 요령도 터득할 수 있었다. 매번 모임 장소에서 최대한 끝자리에 앉아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 같은 존재를 연기해 내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었다.
한 번은 9시에 친구와 헤어지려는데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아니, 왜 이런 생활을 계속해야 하지? 나도 이제 성인인데 조금 늦을 수도 있잖아? 신데렐라도 12시까지는 놀았다고.’
나는 갑자기 생겨난 반항심에 그날은 통금시간을 어기기로 마음먹었다.
별명과 걸맞게 딱 12시까지만 버티려고 했는데, 11시쯤 되자 불안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역시 습관이란 무서운 것이다. 한 시간만 더 버텨보라는 친구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나는 불안함을 극복하지 못하고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가는 내내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밀려왔다. 규칙을 어긴 대가는 과연 어떠할 것인가? 나는 잘못했다고 빌어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나도 성인이니 자유를 달라고 대들어봐야 하는 것일까?
과연 아빠의 말씀을 거역한 대가는 있었다. 단지 내가 치르지 않았을 뿐이다. 집 쪽으로 향하는데 어두운 밤거리에 익숙한 사람이 서있었다. 바로 우리 엄마였다. 아빠는 내가 연락이 되지 않자 10시부터 엄마에게 나가서 나를 데리고 오라고 하셨다고 한다. 그래서 그 성화에 못 이겨 엄마는 추운데도 불구하고 밖에서 떨면서 나를 기다리고 계셨던 것이다. 우리가 집에 들어갔을 때에 아빠는 내 인사를 받지도 않고 방으로 들어가셨다. 이 모든 일들은 내가 했던 상상과 매우 달랐다.
나는 그 후 규칙을 웬만하면 어기지 않았다. 그리고 정말 과제나 꼭 필요한 모임이 생겼을 때는 반드시 전화를 드리고 언제까지는 들어가겠다고 미리 말씀을 드렸다. 역시 우리 아빠는 내 머리 위에 있었다. 이번 게임은 아빠의 완승이었다.
신데렐라야, 남에게 맞추며 살진 않을 거라고? 너도 나 같은 아빠를 만나면 어쩔 수 없을걸?
(아빠와의 화해)
아빠, 아빠는 아마 소중한 딸이 다치거나 나쁜 일에 휘말릴까 봐 저를 단속하셨던 거죠? 그러나 그때는 그렇게 생각하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그저 조이면 조일수록 벗어나고 싶었어요. 원망도 많이 했고 불평도 많이 했지만, 이제는 돌아보며 웃을 수 있게 되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