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어 아버지에게서 한 걸음 떨어졌을 때, 자신만의 가정을 시작하기 위해 아버지를 떠났을 때만이 당신은 아버지의 위대함을 측량할 수 있게 되고, 진정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마가렛 트루먼
엄마는 내 결혼식이 있었던 날을 돌아볼 때마다 ‘아빠가 너무 아파서 네 결혼식을 못하는 줄 알았어.’라고 말씀하시곤 한다.
내가 결혼을 준비할 때 우리 아빠는 아팠다. 그냥 아프신 것이 아니었다. 아빠는 ‘많이’ 아팠다.
처음에는 아빠를 모시고 서둘러 응급실로 갔었다. 응급실은 자리도 쉽게 나지 않았다. 순서를 기다리던 아빠는 어찌나 아프신지 침대 위에 일어서서 배를 움켜쥐고 아파 죽겠으니 살려달라고 소리치셨었다. 체면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던 아빠의 모습이 아니었다.
대체 어디에 문제가 있어서 이렇게 아파하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모르는 것, 그것은 답답하고 공포스러웠다. 처음에는 응급실, 그다음에는 입원을 하는 과정이 반복되었고 아빠와 엄마는 몸도 마음도 차츰 지쳐갔다. 병원에서는 원인을 알아낼 때까지 여기저기 사진을 많이도 찍었다. 그것도 정말 피곤한 일이었다. 그 길고 힘든 검사들 끝에 우리는 결국 아빠의 대장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결혼식을 준비하던 때는 아빠가 응급실에 실려갔다가 입원을 했다가를 반복하던 때였다. 나는 그런 상황에서도 결혼식을 하려고 준비하고 있는 내가 더 웃겼다. 학교에 출근하고, 퇴근하면 결혼식 준비를 했다. 중간중간 입원하신 아빠와 늘 병원에서 주무시는 엄마를 위해 짐을 싸서 나르기도 했다. ‘이 결혼을 꼭 해야 하나 그냥 못한다고 해버릴까.’하는 생각이 중간중간 들었다.
스튜디오 촬영을 계획한 전날이었다. 다른 예비 신부들의 조언에 따르자면 피부관리를 하고 네일아트를 받으면 사진이 예쁘게 나온다고 했다. 피부관리와 네일아트라니.
그날 저녁에 청첩장이 배달을 왔다. 택배를 받기 위해 문을 열어야 하는데 강아지 ‘삐삐’가 너무 심하게 짖었다. 이때에도 아빠가 입원을 하셔서 나는 혼자 지내고 있었다. 도와줄 사람이 없어서 급한 마음에 강아지를 한 손으로 안고 문을 열었다. 삐삐도 당시에 매우 예민해져 있었는데, 녀석은 정신이 나간 것처럼 짖으면서 내 손에 이빨을 박았다. 내 손에서는 피가 뚝뚝 흘렀다. 나는 망연자실하게 내 손을 바라보았다.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피식 나왔다.
“네일아트, 받았으면 돈 아까울 뻔했네.”
결혼식날,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아빠의 야윈 모습이 가장 많이 떠오른다. 아빠는 오랜 병원 생활로 살이 빠지고 지쳐 보였다. 예전의 기세 등등하시던 그 모습이 아니었다. 젊은 시절, 배가 너무 나와서 발톱을 못 깎으실 정도였다고 했었던 아빠는 그날 매우 마르고 약해 보였다. 아빠는 웃는 모습으로 나를 바라보셨지만 그 미소는 약간 걱정스럽게 느껴졌다.
‘앞으로 고생할 텐데, 네가 어떻게 해나갈지 모르겠구나.’라고 생각하시는 것처럼.
물론 아빠는 나에게 다정한 축하의 말도, 걱정의 말도 한마디 건네지 않으셨지만.
(아빠와의 화해)
아빠, 그때요, 나 결혼할 때, 많이 아프셨지요? 그리고 많이 걱정도 되셨었던 거죠?
그렇게 아팠는데, 입원했다가 딸이 결혼한다고 상견례도 나오시고 또 입원했다가 결혼식도 오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