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 아빠가 필요했던 건, 아들?

by 김신애
임신은 고달프고, 출산은 잔인하고, 회복의 과정은 참, 구차하죠.
-드라마 '산후조리원'에서 산후조리원 원장의 대사

결혼을 하고 적응도 하기 전에 아이가 생겼다. 이름하여 허니문 베이비! 몇 년은 아이가 없이 서로에게 적응하며 알콩달콩 시간을 보내려고 했었던 우리 부부는 적지 않게 당황을 했다. 학교에 막 출근하여 중학교 담임교사를 맡으며 너무 자신 있게 ‘아이는 몇 년 후에나 가질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던 나 자신이 우스워지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내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 또 하나 있었다. 바로 입덧이었다. 아이를 가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부터 입덧이 시작되었는데 이 기간은 내게 특별히 고통스럽게 느껴졌다. 특히 아침에 눈을 뜨고 ‘아, 오늘은 좀 괜찮은가?’라고 생각하면 정확하게 30초 후부터 울렁거림이 시작되었다. 늘 배를 타고 항해를 하는 기분이었는데 정말 미칠 지경이었다. 남편에게 ‘늘 울렁거리고 배 멀미하는 기분’이라고 설명했더니 남편이 자신은 멀미를 느껴본 적이 없어서 이해해줄 수가 없다고 했다. 살짝 얄미웠다. 정말 남편은 뱃멀미가 없어서 신혼여행 때에 호핑투어를 할 때에도 갑판을 뛰어다녔다. 반면 나는 그때 토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누가 뱃사람의 자식인지 헷갈리는 상황이었다.


학교에 출근하면 아침부터 시작되는 아이들이 다 먹고 정리해 둔 우유갑들에서 나는 냄새, 심지어는 아이들이 뛰면 생기는 먼지의 냄새도 느껴졌다. 마치 내게 초자연적인 능력이 생겨서 모든 것을 느낄 수 있게 된 듯싶었다. 냉장고를 열어도 화장실에 들어가도 미칠 것 같기는 마찬가지였다. 신혼이라 새것이어서 냄새가 날 것 같지 않은 냉장고에서도 문만 열면 온갖 냄새가 났고, 아래 집에는 담배를 피우시는 분이 계셨는지 화장실에서 담배 냄새가 늘 나서 또 견딜 수가 없었다.


이렇게 힘들게 임신 기간을 버티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병원에서 다운증후군일 확률이 높게 나왔다고 했다. 엎친데 덮친 격이 아닐 수 없었다. 이제는 울렁거림 이외에 걱정거리도 껴안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 말을 들은 후에는 갖가지 꿈도 꾸게 되었는데, 이빨이 많은 괴물이 나를 쫓아와서 있는 힘껏 달려도 벗어날 수 없었던 꿈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 그 당시에 나는 동네에서 뛰어다니는 건강한 아이들을 보기만 해도 ‘너희들은 건강하고 정상이구나.’하면서 부러움에 눈물이 나곤 했었다.


나에게는 이 고민을 진지하게 이야기하고 나눌 사람이 극히 드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병원에서 들은 검사 결과를 아빠에게는 이야기할 수가 없었다. 항상 걱정이 많은 아빠는 아마 내가 아이를 낳을 때까지 잠도 못 자고 힘들어하실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아빠가 그렇게 걱정하시기 시작하면 분명 그 옆의 엄마도 무사하지는 못할 터였다.


내가 이런 고민을 하는지 아실 리 없었던 우리 아빠는 그저 아이의 성별에 관심이 많으셨다. 티를 내시지는 않으려고 노력하시는 것은 분명했지만 그래도 알고 싶어 하시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사실 나도 궁금하기는 했다. 하지만 병원에서는 잘 알려주려 하지 않았다. 그리고 거의 출산이 다가와서 알 수 있는 주수가 되어 촬영을 했을 때에도 아이가 바로‘그 부분’만 가리고 있어서 알 수가 없었다. 나는 딸이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 내가 엄마와 사이가 매우 좋은 편이었기 때문에 나도 사이좋게 지내는 딸이 있었으면 했다. 그리고 시댁에도 아주버님과 형님에게 이미 아들, 딸이 다 있었기 때문에 나에게는 아들을 꼭 낳아야 한다던지 하는 큰 부담은 없었다. 그런데 나는 시부모님이 아닌 바로 우리 아빠가 엄청나게 나의 아들, 바로 손주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었다.


정말 출산에 거의 임박했을 무렵, 정말 마지막 태아 확인을 할 때 아이가 움직여서 아들임을 보여주었다. 나는 조금은 실망했었다. 첫 아이는 딸이었으면 바랬던 마음이 그만큼 컸었는지 눈물이 조금 날 정도였다. 아이의 성별에 관한 소식은 곧 양가 부모님께 전해졌다. 그러자 내가 예상 못했던 놀라운 반응이 나왔다. 시부모님께서는 성별에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좋아하셨다. 하지만 의외였던 것은 보통은 크게 좋다는 표현을 잘 안 하시던 아빠가 엄청나게 좋아하신 것이다.


“암, 암... 아들을 낳으면 좋지. 시부모님께도 그래야 걱정을 안 드리고... 그래, 그래, 아들을 낳는다고... 혹시 필요한 게 뭐가 없니?”


아들을 낳는다는 이유로 나는 나의 작은 중고차에 어울리지 않는 가장 최신의 내비게이션을 장착시킬 수 있었다. 그 후로도 아들을 낳는다는데 뭐가 먹고 싶냐고 물으신다던지, 아들이 필요한 게 뭐가 있을까 같은 말씀을 종종 하셨다. 아니, 아들이 딸보다 더 특별히 더 필요한 것이 뭐가 있을까? 고기를 많이 먹는 게 딸에게 보다 더 도움이 될까?


훗날 아빠가 방사선 치료 때문에 매일매일 병원에 가야 했던 그때에 차 안에서 늘 나누었던 대화가 있었다.

“너.... 둘째는 언제 가질 거니?”

“아빠가 내가 지금 가지고 낳을 때까지 버텨줄 수 있어요?”

“둘째는 낳아야지.”

“나도 생각은 하는데.... 둘째가 딸이라는 확신이 있으면 진짜 좋을 텐데.”

나의 이 말을 들은 아빠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혀를 차며 대답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남자아이를 낳아야지.”

“아니, 남자아이는 하나 있으니까....”

그러나 나는 말을 끝내지도 못했다.

“남자아이가 좋아.”

누가 들으면 대를 이을 아이가 필요한 줄 알았을 것이고 내가 이 집 딸이 아니라 며느리인 줄 알았을 것이다. 그러니까 아빠는 가문을 잇고 하는 문제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냥 남자아이가 좋았던 것이다.


그 후에야 엄마가 그때까지 나에게 이야기하지 않았던 사실을 알려주셨다. 아빠, 엄마에게는 내가 태어난 이후에 둘째가 생겼었다고 한다. 그런데 엄마의 몸이 약해서 유산되었고 그 후로 엄마는 아이를 가질 수가 없었다고 했다. 아빠는 아들이 너무 가지고 싶었지만 엄마를 위험하게 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 꿈을 포기하셨던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듣고야 나는 아빠를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었다.


“그때 내가 다른 아이를 낳았는데, 남자아이고 나를 닮았으면 너는 찬밥 신세였을 거야.”


듣고 보니 아빠에게 아들이 없었던 것은 아빠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나에게는 '집안에서의 나의 지위'의 몰락을 막아주었던 일이었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엄마를 닮은 동생이었으면 분명히 공부도 나보다 잘했을 것이고 아빠의 비위도 나보다 잘 맞추었을 것이다. 그야말로 집에서 찬밥 신세가 될 뻔했던 것이다.


나는 그 오랜 세월을 살아오면서 그런 것들을 알지도 못했고 궁금해하지도 않았던 내가 더 신기했다. 아빠만 내 취향을 모르는 것이 아니었다. 나도 아빠가 정말로 원하는 것에 관심도 없었고 아빠를 이해할 생각도 하지 못했다는 것을 그때에야 겨우 알았다.

아들이 있었어도 아빠를 잘 이해해주었을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아빠는 같은 남자로서 아빠를 이해해주고 서로 기대고 의지할 수 있을 아들을 원하셨던 것이었다.

아무 말씀도 하시지 않고 엄마를 배려하고 나를 배려하셨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런데 사실 그때는 배려받았다는 생각보다는 딸인 나는 필요 없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어서 샐쭉해졌었다. 참 나쁜 생각은 좋은 생각보다 먼저 드는 법인가 보다.


(아빠와의 화해)


아빠, 아들로 태어나지 못해서 미안하지는 않아요. 그렇지만 아들에 버금가는 든든한 딸 노릇을 못 한 것 같아서 그게 제일 죄송해요. 아빠는 의지가 되는 자식과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싶으셨을 테지요.


사실 아빠가 아프셨을 때 병원에서 갑자기 쓰러지셨던 날, 병원 복도에서 엄마와 내가 아빠를 부축했는데 쉽지 않더라고요. 그때 차라리 힘 있는 아들로 태어났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처음으로 생각했었어요. 그리고 집에서 나가야 할 때 4층에서 한 계단 한 계단 엄마는 아빠 발을 잡아서 옮기고 나는 부축해야 할 때 '내가 아들이면 모두가 덜 힘들었을까?' 잠시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아빠. 아마 아들이었으면 저 출근해서 집에 없었을걸요. 그러니까 우리, 제가 아들이 아니었던 건 그냥 더 좋았다고 받아들여봐요.

아빠도 알죠? 딸도 장점이 많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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