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간의 뜻 파악하기
우리가 읽어야 할 것은 그 말이 아니라, 그 말 뒤에 있는 사람이다.
-새뮤엘 버틀러
“아무리 봐도 이 안에 뭐가 들었는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이렇게 문제가 반복되니 수술을 해서 이 부분을 제거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아빠의 대장은 내 결혼 전부터 시작해서 계속 문제를 일으키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사촌오빠에게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의논했고, 오빠는 대장을 막고 있는 무언가가 있으니 그것을 제거하는 수술을 하자고 했다.
무엇이 있을지 모른다는 말은 그 안에 암세포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얘기였다. 대체 무엇이 대장을 그렇게 두껍게 막아 놓은 것일까? 무엇이 그렇게도 아빠를 아프게 하는 것일까? 아빠와 엄마는 의논하신 끝에 수술을 받으시기로 하셨다. 이 긴 싸움의 끝을 내고자 마음먹으신 것이다.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아빠의 대장을 막고 있던 물질은 제거되었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말하기 어렵다고 했다. 확실한 건 암세포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암이 아니라고 하는 말에 우리는 모두 안심했다. 마치 한 고비를 통과한 것 같았다.
나는 수술이 끝나고 결과를 들은 후 바로 병원에 가보려 했지만 아빠가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오지 말라고 하셨다.
“그게, 수술 후에 배를 갈라서 장을 꺼냈어. 지금 바깥으로 보이게 관으로 연결해 놓은 상태인데, 애가 보고 놀라면 어떻게 하니.”
엄마가 전화기 너머로 설명하셨다.
“장이 몸밖에 나와있다고?”
“응, 조금 지나고 나면 다시 집어넣어 준다고 하네.”
대체 장을 어떻게 몸 밖으로 빼놓았다는 걸까. 그럼 음식은 어떻게 먹지? 소변이나 대변은? 엄마는 자세히 설명해 주시려고 했지만 보지 않고는 뭐를 어떻게 했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이런 경우, 나는 그저 엄마가 집에 있으라고 하면 집에서 잠잠히 기다려왔었다. 하지만 이제 나는 한 아이의 엄마이기도 했고 손주를 예뻐하시는 아빠의 모습을 보며 마음을 조금씩 열고 있었기에 집에서 기다리기보다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가는 쪽을 택했다.
병원에 가자 아빠는 정말로 배에서 장을 꺼내 놓고 계셨다. 엄마의 설명을 들었을 때는 이해가 전혀 안 가던 것들이 가서 보니까 어떤 상황인지 확 이해가 되었다.
오지 말라는 말을 듣지 않고 병원에 굳이 아이를 데리고 찾아온 나를 아빠는 퉁명스럽게 바라보셨지만 내가 온 것이 그렇게 싫지는 않으신 눈치였다.
“하비, 배, 뭐가 있어.”
“무섭니?”
“아니.”
손주가 겁내 할까 봐 걱정하셨었지만 아들은 그 모습을 겁낸다기보다 신기해했다. 아빠는 냄새가 나서 아이가 싫어할까 봐 걱정하셨지만 손주는 아랑곳하지 않고 할아버지에게 가서 관을 만져보기까지 했다.
나는 그제야 알았다. 여태껏 오지 말라고 하는 것이 정말로 오지 말라는 뜻이 아니었다는 것을. 나는 소위 ‘행간의 뜻’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음을.
늘 그래 왔던 것이다. 괜찮다고 신경 쓰지 말라고 하면 시키는 대로 하고, 오지 말라고 하면 가지 않고. 그런데 사실은 와서 봐주기를 원하셨던 것이고 괜찮지 않았던 것이다. 아니, 왜 그리 어렵게 돌려서 표현하는 것일까? 가만히 보면 부모님들도 본인들의 마음을 잘 아시는 것 같지는 않았다. 정말로 걱정시키고 싶지 않은 마음 반, 그래도 와주기를 바라는 마음 반. 그것 참. 시험 문제 푸는 게 이것보다는 쉽구나.
나는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고, 아빠와 엄마는 2차 치료를 받기 위해 병원에 남으셨다. 그리고 몇 주 뒤 아빠는 집에 돌아오셨다. 아빠가 돌아오신다고 하는 날 나는 아침부터 수선을 떨었다. 아이를 어린이 집에 데려다준 후 시간을 잘 분배하여 집안을 청소하고 음식을 준비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부모님은 말씀하신 시간보다 훨씬 일찍 돌아오셨다. 아직 환영의 준비가 다 안 끝났는데. 아빠는 오시자마자 집을 한번 쭉 둘러보시고 못마땅한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집이 더럽게 이게 무슨 꼴인고?”
우와, 또 시작이구나.
(아빠와의 화해)
아빠, 참 많이 힘드셨어요. 너무 아프시고 짜증이 나셨을 거예요.
이제 겨우 좀 쉬어가나 싶으면 아프고, 나았다 싶으면 또 아프고.
오지 말라고 걱정시키고 싶지 않다고 하셨던 것은 진심이셨을 거예요.
행간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한 것은 제 잘못이지요.
아빠, 괜찮아요. 저 조금 힘들어도 염려스러워도 감당할 수 있어요.
너무 늦게 깨달아서 죄송해요, 아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