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은 소풍같이

-함께하는 마지막 시간들

by 김신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천상병 시인 ‘귀천’


“오늘은 뭐 만들 거야?”

“지금 생각 중이야.”


나는 요리를 잘하지 못한다. 뭐든지 다 잘 먹는 내 식성과 당뇨라 늘 맛없는 것만 먹어야 했던 아빠의 식단 덕에 나는 요리에는 단 1의 관심도 없었다. 그런 나의 요리 인생에 발전을 가져온 두 가지 사건은 ‘입맛이 까다로운 아들’을 낳은 일과 ‘아빠가 암에 걸리신 일’이었다.


아빠는 항암치료로 매일 병원에 가셔야 했다. 그런데 병원의 밥은 맛이 없다고 하셨고 그래서 나는 도시락을 매일 싸기로 결정했다.

그럼, 왜? 엄마가 아니라 내가 준비하느냐?

글쎄. 왜 그렇게 결정되었는지 모르겠다.

그냥 그렇게 되었다. 내가 손을 들고 자원을 했었던가?

그래서 나는 매일 아침 아이를 준비해서 어린이집에 등원시키고 도시락을 싸서 부모님을 모시고 병원으로 향했다. 운전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나였다.

아빠가 치료를 마치시고 지친 얼굴로 나오시면 나는 도시락을 먹을 장소를 미리 정해 놓고 함께 모여 앉아 밥을 먹었다. 이렇게 모여 앉아 밥을 함께 먹는 일도 드물었는데.

내가 해 간 도시락이 병원 식당에서 파는 밥보다 맛있었을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아빠는 오랜 입원 생활을 하셔서 그런지 병원에서 나오는 밥은 다 싫다고 하셨다.


그리고 우리는 아빠가 좋아했던 음식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아빠는 햄버거, 피자 같이 당뇨에 좋지 않고 살찌는 음식을 좋아하셨었다. 건강을 위해서 못 드시고 계셨었을 뿐이었다. 이제 건강이 무슨 소용이랴. 그래서 우리는 모든 브랜드의 햄버거 집을 돌아다녔다.

“음....”

나는 햄버거를 눈을 감고 음미하시면서 드시는 아빠를 바라보았다. 마음이 아렸다. 고작 햄버거라니.


직업 군인인 남편은 주말에만 집에 올 수가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주말이면 멀리 운전 가능한 남편이 있다는 것을 핑계 삼아 소풍을 다니기 시작했다. 가을날이라 날씨가 좋았고, 아빠는 많이 걸으실 수 없었기 때문에 그것에 맞추어 각종 수목원, 한강변. 아빠는 좋아서 따라오시는 것인지 아니면 남겨질 우리를 위해서 그러시는 것인지 열심히 따라나서셨다. 할아버지바라기 손주는 늘 기분이 좋았다. 아이는 그 당시 좋아하던 ‘피터팬’의 배경음악을 흥얼거리며 날아다니는 시늉을 하며 뛰어다녔다. 수목원에 가서는 온갖 벌레를 잡아서 할아버지 앞에 보여주며 또 기뻐했다. 아무것도 모르고 노래 부르는 아이가 우리는 정말 의지가 되었다.


아무것도 모를 것이라고 생각했던 아이가 우리 모두를 울렸던 일은 아침고요 수목원이라는 곳에 가서였다. 이 수목원은 참 예뻤다. 우리가 걷다가 작은 교회를 보고 들어가게 되었을 때였다. 아이는 그 교회의 의자에 앉아서 ‘하비가 아프지 않고 낫게 해 주세요.’라고 소리 내어 기도했다. 아무것도 모르니까 할 수 있는 행동이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모두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병은 나을 수 없다는 것을. 아이가 이 기도를 드렸을 때, 죽음에 대해 겉으로는 담담하게 보이려 하셨던 아빠는 처음으로 눈물을 보이셨다.


이 소풍 같은 나날은 그렇게 오래가지는 못했다. 아빠의 병은 악화되어 걸어서 집 밖으로 나오는 것도 힘들어졌으니까. 그래도 서로 친하지 못했던 우리 가족은 그래도 이 소풍들 덕에 조금은 마음의 짐과 응어리들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아빠와의 화해)

아빠, 우리 이때 마음속은 늘 울고 있었지만 그래도 참 행복했었죠?

저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빠에게 뭔가 해드릴 수 있다는 것이 좋았어요. 그것이 잘 못하는 요리였지만요.

아빠가 좋아하시는 음식도 알았어요. 너무 늦었지만요.

제가 어렸을 때, 아빠가 곁에 계시지 못해서 함께 못했던 소풍을, 아빠의 마지막 순간에야 함께 갈 수 있게 되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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