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암의 발견
이 세상에 태어나 우리가 경험하는 가장 멋진 일은 가족의 사랑을 배우는 것이다.
-조지 맥도날드
아빠는 대장 수술을 잘 견뎌 내시고 회복하신 후 집으로 돌아오셔서 손주를 보고 즐겁게 지내고 계셨다. 매일 운동을 다녀오셨고 식단도 당뇨에 좋은 식단으로 늘 유지하셨다. 이 싱겁고 밍밍한 식단을 계속 참고 드시는 것도 대단했다. 그만큼 아빠는 건강에 신경을 쓰고 계셨다.
나도 그 시기에 손주를 앞세워서 아빠와 가장 가깝다고 생각되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아이는 누구보다도 살갑게 아빠에게 애교를 부렸고 아빠는 그런 손주가 귀엽기 그지없어서 그저 무엇을 해줘야 좋을지 늘 전전긍긍해하셨다. 이런 아빠의 모습을 보면서 나도 차츰 아빠에 대한 어색함이나 맺혀있었던 분노 같은 것들을 풀어내고 있었다.
이렇게 평화로움이 지속될 것 같던 날들이 지속되고 있었는데 어느 날부터 아빠에게서 이상 증세가 발견되기 시작했다. 그것을 내가 처음 느낀 것은 어느 날 아빠가 운동에서 돌아오실 때였다. 아빠가 운동을 다니시는 장소가 거리가 좀 있어서 운동을 다녀오실 때 항상 차를 운전해서 가셨었다. 그날은 내가 지나가다가 돌아오시는 아빠의 차를 발견했다. 보통은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데 나름 반가운 마음에 차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어~어~어~!”
차가 술 마신 것처럼 비틀비틀거리더니 이상하게 옆의 화단 쪽으로 붙는 것이 아닌가. 지켜보던 나는 이 이상한 상황에 조금 당황했다. 아빠가 차에서 내려서 살펴보시더니,
"다행히 화단은 괜찮고 차만 조금 긁혔네." 하시며 그냥 머쓱해하셨다.
나중에 “왜 그러셨어요?”라고 여쭈어보자 아빠는 그냥 머뭇대셨다. 나는 별로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나이가 드셔서 조금 감각이 무뎌지셨나 보다’라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그날 저녁에 엄마가 나에게 오셔서 말씀하셨다.
“아빠 말씀이 치매 검사를 받고 싶으시대. 내일은 너희랑 애버랜드에 놀러 가기로 했으니까 함께 가고 그다음 날 치매 검사하는 곳에 다녀오려고. 글씨가 갑자기 잘 안 써지신다고 해서. 우리가 치매를 제일 무서워하는 거 알잖니.”
그랬다. 아빠, 엄마는 늘 치매를 가장 무서운 병으로 생각하셨다. 자식도 못 알아보고 자식만 힘들게 한다고 하는 병이 치매라면서 아빠, 엄마는 늘 치매에 걸리면 큰일이라고 말씀하셨었고 치매에 좋다는 운동이나 음식들을 챙기시면서 주의하셨었다.
놀이공원에 다 함께 가기로 했던 그날, 남편은 차가 막히기 전에 일찍 출발하자고 했었다. 그래서 우리는 새벽같이 ‘애버랜드’로 떠났다. 도착했을 때 놀이공원은 아직 개장을 하지도 않았었다. 놀이공원의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며 아이는 즐거운 기분에 팔랑거리며 할아버지 앞을 뛰어다녔다. 그리고 아빠는 흐뭇한 미소를 띠시고 아이를 바라보셨다. 그 순간, 그 장면 그리고 그때의 기분까지도 기억이 난다.
그날은 모두 참 즐거웠다. 아빠는 조금 걷는 것이 힘들어 보이셨지만 엄마랑 손을 잡고 그 드넓은 애버랜드를 손주를 위해 뛰어다니셨다. 빨리 가서 줄을 서야 한다고 우리 모두는 웃으며 뛰어다녔고, 동물을 무척 사랑하는 손주는 이 놀이공원에 있는 동물원까지 모두 돌면서 모두와 함께 깔깔 웃으며 엄청나게 좋은 시간을 보냈다. 그날 아빠의 동작이 좀 굼뜨고 이상하다고는 생각했지만 오래간만에 엄마랑 손을 꼭 잡고 다니시는 모습을 보며 ‘아 앞으로 남은 여생은 저렇게 두 분이 손잡고 다정하게 알콩달콩 보내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던 것이 기억이 난다.
그런데 그것은 안타깝게도 끝을 향한 시작이었다. 다음날 아빠, 엄마는 예정대로 치매 검사를 받으러 나가셨고 우리는 그저 평범하게 ‘다녀오세요.’하고 인사했다. 그리고 평범한 하루가 시작되었다. 갑자기 엄마가 전화하시기 전까지는.
“신애야, 검사를 받으러 갔더니 아무래도 뇌 쪽 사진을 찍어보는 게 나을 것 같다고 해서, 오빠네 병원으로 가보려고 해. 그러니까 좀 시간이 걸릴지도 몰라.”
이 전화를 받고도 나는 큰일이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검사라면 여태까지도 지겹게 받지 않았던가.
오후에 내가 어린이집에서 하원한 아이를 데리고 놀이터에서 놀다 집으로 들어올 때였다. 아이와 함께 집으로 올라가려고 빌라 복도 1층에 막 들어왔을 때 오빠로부터 전화가 왔다. 나는 문득 이 전화는 꼭 지금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이를 안고 계단을 오르려다가 잠시 아이를 놓아주고는 계단에 앉아서 전화를 받았다.
“응, 신애야, 난데..... 이모부가 아무래도 뇌종양인 것 같아.”
나는 단번에 대답을 하거나 입을 뗄 수가 없었다. 뭔가 내 이야기가 아닌 것 같았고 현실도 아닌 것 같았다. 그때의 내 기분을 묘사하자면 눈앞이 정말 하얘지는 느낌이었다. 안돼, 지금은, 아이도 봐야 하고, 얘기도 끝까지 들어야 해. 나는 나 자신을 다잡았다.
“OOO병원의 XXX의사 선생님이 그 분야의 전문가야. 병원에 전화를 해서 예약을 잡아야 해. 듣고 있지?”
나는 정신을 다 잡으려고 애썼다.
“응. 전화해서 예약만 잡으면 되는 거야? 아빠는 어떤데?”
“암이 너무 크다. 어려울 거 같긴 한데, 그 분야에서는 그 교수님이 제일 권위자이시니까, 전화하고 연락해.”
오빠는 목소리를 최대한 담담하게 나에게 이것저것을 이야기해주었다. 역시 의사는 이런 일들을 많이 겪어봤겠지. 나도 담담해야만 했다. 내 앞에는 내 기분에 영향을 많이 받는 아이가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까르르 웃는 아이를 안고 나는 집으로 올라왔다. 머릿속은 온갖 생각으로 폭죽이 터지는 듯했지만, 오직 하나, ‘병원에 전화해야 해’만 잊지 않으려고 애썼다.
검사를 마치고 아빠, 엄마가 집에 돌아오셨을 때에도 나는 울 수도 웃을 수도 없었다. 그저 아무런 감정을 나타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이때는 아빠는 자신에게 어떤 병이 있는지 잘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아빠는 이전에도 수술을 경험했기에 '모든 병은 수술을 하면 나아지겠지'라고 막연히 생각하고 계실 때였다. 아빠의 얼굴에는 쉽지 않은 검사를 받고 오셔서 피로하고 짜증이 난다는 표정만이 역력했다.
내가 처음으로 울음을 터뜨렸을 때는 아이가 자는 밤, 남편과 집 밖을 산책한다고 잠시 나왔을 때였다. 인적이 드문 공원이 한 군데 있었는데 왠지 아무도 보지 않는 곳으로 가야 울어도 들키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깜깜한 밤중에 나는 오열을 했다. 한 번 눈물이 터지자 걷잡을 수가 없었다.
"우리 아빠 불쌍해서 어떻게 해."
나는 가슴을 쥐어뜯으며 울부짖었다.
의사는 아빠에게 수술을 권했지만 ‘암이 너무 크다.’는 말을 강조했다. 수술을 해도 몇 달, 혹은 몇 년을 연장할 뿐이라고 했다. 정말 헷갈리는 말이었다. 몇 달이랑 몇 년은 차이가 큰데. 게다가 살아계시는 동안에도 정상적으로 생활할 수 있는지도 확언할 수 없다고 했다.
우리에게는 누구나 기간이 정해진 삶이 있다. 우리가 웃으며 사는 것은 끝을 모르기 때문이다. 아빠는 이제 그 끝을 알게 되었다. 나는 급하게 생각했다. 화해를 해야 한다고. 하지만 화해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었다. 아빠와 함께 해야 하는 것이었다.
(아빠와의 화해)
아빠, 우리 그때도 대화를 많이 못했어요. 그래요, 안 하던 대화를 단번에 진전시킬 수는 없었지요. 아빠, 왜 그때도 내게 손을 내밀어주지 않으셨어요? 내가 받아들이지 못할 것 같았나요? 저도 그 지경이 되었는데도 아빠가 무서웠어요. 아빠가 짜증 내는 것이, 아빠가 소리 지르는 것이 무서웠어요. 그래서 아빠가 손 내밀지 않았다고 그렇게 핑계 대는 것이었는지도 몰라요. 아마 제가 한 발짝만 더 다가갔어도 손 내밀어 주셨을 텐데. 아빠, 정말 미안해요. 그저 익숙하지 못함에 머뭇거리다가 시간을 그저 흘려버린 것, 정말 미안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