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신 아플 수 있게 해 주세요.
갑자기 시간 여행이 쓸모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왜냐하면 인생의 모든 사소한 것들이 기쁨을 주기 때문이다.
-영화 ‘About Time(어바웃타임)’ 중
“가기 시러. 시러! 으아아앙~”
아이는 바닥에 달라붙어 울곤 했다. 매일 아침 어린이집에 보내기 전에 벌어지는 일이었다.
가고 싶지 않다고 매일 아침 아들이 울어댔기 때문에 이웃집에 창피할 정도였다.
그 무엇도 아이를 달래지 못했다.
“아이고, 우리 기윤이 이리 와라.”
외할아버지의 한 마디에 아이는 그 품에 안겼다. 그리고 훌쩍거렸지만 울음을 그쳤다.
대단했다. 그야말로 누구 말을 들으면 복이 오는지 터득하고 있는 듯했다.
지금도 돌아보면 아빠는 이 아이를 왜 그렇게까지 사랑하고 예뻐했는지 신기할 때가 있다. 사랑하는 딸의 아들이어서? 아니면 그냥 남자아이인 자신의 핏줄이어서? 그것도 아니면 아이가 애교가 유별나게 많은 남자아이여서?
나의 아들은 유난히 애교가 많고 세심한 아이였다. 아기일 때에도 산후조리원 옆방의 여자아이는 장군처럼 크게 울었다면 아들인 내 아이는 가늘고 작게 울었지만 자기의 욕구가 해결될 때까지 끈질기게 울었다. 정말 대단한 아이였다. 초보 엄마인 내가 1번, 2번, 3번에 배고파서, 기저귀가 젖어서, 열이 나서 등등을 적어 놓고 하나씩 살펴보는 동안에 정말 끊이지 않고 울었다.
산후조리원에서 나온 나는 100일까지만 친정에 있을 셈으로 아빠, 엄마에게 갔다. 잠시만 도움을 받을 생각이었기 때문에 나는, ‘친정 집에 가면 네 가치관은 포기해라. 친정 엄마의 가치관에 모두 맞추어라.’라는 원칙을 준수하려고 노력했다. 사실 큰 노력은 필요 없었다. 아는 게 별로 없었던 것이다. 아들은 젖도 잘 안 먹고 분유도 잘 안 먹어서 깊이 자지 못하고 자꾸 깨어났다. 그래서 1시간 반 정도에 한 번씩 깨어나서 모유수유를 해야 했다.(어른들은 모두 모유수유는 꼭 해야 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셨었다.) 나는 늘 암흑 속에 젖을 주고는 우두커니 앉아서 ‘내가 누구고 여기 왜 있는지.’ 자꾸 생각해 내야 했다. 잠 안 재우고 고문하는 게 가장 잔인한 고문이라더니. 내 존재는 사라져 가는 것만 같았다.
친정에 오래 있어도 눈치는 보이기 마련이다. 아빠가 조용히 우리가 언제 집에 돌아가는지 물어보셨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조용히 남편을 불러서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그러자 의외로 남편이 친정에 더 있으면 안 될까 하고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내가 짜증 부릴까 봐 무서웠던게지. 우리는 조금 더 친정에 머물렀고 그것이 어찌하다 보니 계속 눌러앉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자신의 생활을 방해받는 것을 무척 싫어하셨던 아빠는 아마 우리를 집에 남겨두려고 계획하시지는 않았었다. 그런데 아기 때도 눈치가 빨랐던 이 영민한 손주는 외할아버지의 기대에 엄청나게 잘 호응해 주었다. 이미 아들이라는 엄청난 특권을 가지고 있었던 이 손주 녀석은 고집 있게 울면서 누가 와서 아무리 달래도 울음을 그치지 않다가 정말 신기하게도 외할아버지가 안아주면 대충 고집을 접었다. 그야말로 ‘놀랄 노’ 자가 튀어나오는 현상이었다. 이 희한한 현상은 그 후에도 계속되었다.
한 번은 아이가 열이 나고 아팠던 적이 있었다. 방안을 살펴보니 아빠가 아픈 아이 옆에 쪼그리고 누워계신 것이 아닌가.
“차라리 내가 아픈 것이 나을 것을.... 차라리 내가 대신 아프게 해 주세요.”
아빠가 이렇게 말씀하시며 조용히 기도하고 계셨다. 나는 그 순간에 들었던 감정을 잊을 수가 없다.
이 사랑이 금전적으로 증명이 되었던 사건이 있었다. 우리 아빠는 굉장히 절약하시는 분이었다. 얼마나 지독한 절약이었는지 우리는 겨울에 보일러를 돌리지 않으려고 집에서 외투를 껴입고 지냈다. 한 번은 친구가 우리 집에 잠깐 예고 없이 왔었는데, 옷을 껴입은 나를 보고 어이없다는 듯이 “너 어디 나가려고 하는 거야?”하고 물어봤을 정도였다. 이렇게 근검절약하셨던 아빠가 손주에게 예외를 두셨다. 아빠가 입원을 하셔서 집에 나랑 아이밖에 없었던 적이 있었다. 비염이 있었던 아이가 감기에 걸려서 병원에 갔는데 의사는 집안의 온도를 25도 정도로 유지하라고 했다. 아무 생각 없이 우리 집의 낡은 보일러를 그 온도에 맞추어 놓았던 나는 그다음 달에 나온 난방비를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난방비가 엄청나게 나왔던 것이다. 아빠가 이 난방비를 보시면 나는 쫓겨나겠구나 했는데, 아이가 감기가 걸려서 그랬다고 하니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단 한 마디도. 이것은 찐 사랑이었다.
아빠는 때마다 손주에게 ‘가장 좋은 것’을 선물하시려고 애쓰셨다. 나에게는 묻지도 않고 마음에 들지 않는 선물을 하시던 분이 손주가 무엇을 좋아할지는 계속 살펴보시고 내게도 물어보셨다. 천연나무로 된 블록에 손주에게 메시지를 새겨서 주신다던지, 방방이를 주문하신다던지, 어쨌든 ‘제일’ 좋은 것 ‘제일’ 가지고 싶어 할 만한 것을 계속 물어보셨다. 그리고 손주가 그것을 좋아하면 진심으로 기뻐하셨다. 안타깝게도 나의 아들은 그 당시 가지고 싶은 것이 별로 없는 아이였다. 다른 아이들은 마트에서 무언가 가지고 싶다고 떼를 쓰고 구르는데, 이 아이는 크게 가지고 싶은 것이 없었고 먹고 싶은 것도 없었다. 나는 속으로 혀를 차며 서로 윈윈(win-win)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아들을 안타까워했다. 외할아버지는 손주가 좋아하면 기쁨을 얻고, 아이는 물건이나 먹을 것을 얻으니 이 어찌 좋은 일이 아닌가. 그런데 아이의 물욕은 아빠가 돌아가시고 한참 후인 지금에서야 나타나고 있으니 더욱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빠가 주는 선물은 특이하게 아이의 나이보다 조금씩 다 앞서는 것들이었다. 그중에서 최고로 앞서 나갔던 선물은 바로 ‘사춘기’에 관한 책이었다. 아이가 세 살쯤 되었을 때 이 책을 사주셨으니 내가 안 놀랄 수가 있었겠는가. 놀라는 나에게 아빠는,
"다 쓸데가 있을 거야. 그때가 되어 읽으면 너무 늦으니 미리 예비해 놓는 게 좋을 거야."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속으로는 도리도리 고개를 저었으나 겉으로는 감사함을 표현하며 그 책을 받았다. 그 책은 지금도 책장에 꽂혀있다. 지금, 나의 아들은 사춘기가 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그 책을 보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그 책을 볼 때마다 깨닫는 것은 아빠는 아프시기 전부터 마치 자신이 먼저 가실 것이라고 예견이라도 하신 듯이 준비하셨다는 것이다. 원래부터 걱정이 많았던 아빠는 사랑하는 손주를 위해 10년 후를 예비하셨다.
아이는 애교 없는 딸이었던 내가 못했던 것들을 아빠에게 해 주었다. ‘하비, 하비’ 부르며 애교를 부렸고 외할아버지를 안아주었고 사랑을 표현했다. 나는 아직까지도 아들에게 그 일로 마음속 깊이 감사한다. 아이는 알고 한 일이 아니었겠지만 나는 아들 덕분에 내 마음에 하나 더 얹혔을지도 모르는 무거운 돌을 하나 덜었다.
(아빠와의 화해)
아빠, 그래도 내가 낳은 아들이니까 그렇게까지 사랑해 주신 거죠? 그렇죠?
나는 딸이니까 미웠고 손주는 아들이니까 예뻐하신 건 아니지요?
아빠와 보냈던 일상들 중 이때가 가장 사소한 일상들이 소중하게 느껴졌던 한때였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얼굴을 보고 인사하고 밥을 먹는 것. 우는 아이를 달래고 그 아이의 재롱을 보는 하루하루의 평범한 생활.
저에게는 우울증이 찾아오는 시기였었지만 아빠와는 가장 화목하게 일상을 보냈고 사소한 일들을 함께 했지요. 그래서 매 순간의 작은 일들이, 그때의 느낌들이 기억에 남네요.
아빠의 손주는 아직도 네 살 때 떠나가신 ‘하비’를 기억한답니다. 기억력이 진짜 좋은 아이예요.
저랑 제 아들의 마음속에서 아빠는 돌아가신 게 아니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남아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