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질 짜지 말고!

-아빠가 해준 마지막 말

by 김신애

아버지 / 이도윤

모든 아버지는 살아 있다

푸르게 살아있다

복숭아 뼈가 아프시다고

진통제로 연명하신 아버지 곁에 앉아

나는 자꾸 죽음을 위로해 드렸다

아버지 돌아가셔도

내가 살아 있으니

아버지는 결코 죽은 것이 아니라고

그 말씀드릴 때마다

죽음을 베고 누운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셨다

- 이도윤,『산을 옮기다』


아빠가 나에게 정신이 또렷하실 때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질질 짜지 말고.”라는 말이었다.


그날은 내가 아이를 데리고 어딘가 외출을 했었다. 아이와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갑자기 전화가 와서 받았더니 엄마가 말씀하셨다.

“신애야, 우리... 구급차를 불렀어. 천안에 있는 오빠 병원으로 가려고 해.”

나는 아이를 거의 집어 들고 차에 태웠다. 그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집으로 돌아왔다. 나의 마음은 불안했다. 우리는 살고 있던 빌라의 복도 계단에서 만날 수 있었다. 아빠는 엄마의 손을 붙들고 힘겹게 계단을 내려오시고 계셨다. 우리 빌라는 들것이 들어올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구급차를 불러도 부축해서 내려가야만 했다. 아빠를 보자마자 나는 왠지 모를 슬픔이 벅차올랐다. 눈물이 흘러내렸다. 내 눈물을 보자 아빠는 날카롭고 짜증스럽게 낮은 목소리로 내뱉으셨다.

“질질 짜지 말고!”

그 짜증스러운 일갈에 나의 줄줄 흐르는 눈물은 멈추었다. 하지만 마음이 불안하고 슬픈 것은 멈출 수가 없었다. 나는 왠지 모르게 마지막 같은 느낌에 가장 사랑받았던 손주를 아빠에게 강아지를 내밀 듯 쑥 밀었다. 아이는 아무것도 모르게 할아버지를 향해 천진스럽게 웃었다.

“가시기 전에 뽀뽀도 해주고 인사를 해주고 가셔야 줘.”

목소리가 떨리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했는데도 입술을 깨물어야 흐느낌이 나오지 않았다.


아빠는 나는 째려보셨지만 웃고 있는 손주의 볼에는 뽀뽀를 해주셨다. 그것이 마지막 인사인 줄 아셨을까. 좀 더 다정하게 좀 더 좋은 말들로 이별할 수도 있었을까. 아빠가 내려가시고 나는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들어왔다. 눈물이 쉴 새 없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아빠는 구급차를 타고 천안의 오빠 병원으로 가셨다. 그곳에서 아프신 것이 좀 멈추고 안정을 찾으셨다고 엄마가 전화로 이야기해 주었다. 의사인 오빠도 전화로 나에게 사람은 그렇게 쉽게 죽지 않는다며 길게 생각하라며 이 상태로 얼마나 길어질지 모른다고 했다.

며칠 후 나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엄마가 병원에서 필요할 만한 짐을 챙겨서 고속버스를 탔다. 이제 병원에서 지낼 물품들을 챙기는 것은 나에게 너무나 익숙한 일이었다. 고속버스에 올라탔는데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버스가 출발함과 동시에 눈물이 계속 흘러나왔다. 멈출 수가 없었다. 버스가 출발해서 목적지에 도착하는 동안 나는 계속해서 눈물을 흘렸다. 가서도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아마 옆자리의 사람은 내가 실연이라도 당한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병원에 도착해보니 ‘질질 짜지 말라.’고 일갈했던 날카로운 우리 아빠의 모습은 찾을 수가 없었다. 늘 화를 낼까 봐 무서웠던 우리 아빠는 이제 이야기해도 내 말이 잘 들리는지 아닌지도 알 수가 없는 상태였다. 어이가 없었다. 어떻게 이렇게 금방 상태가 변한다는 걸까. 엄마 말로는 어제까지만 해도 괜찮았는데 오늘 아침부터 이러신다는 거다. 아빠는 숨을 쌕쌕 소리가 나게 쉬시며 누워계셨다. 숨소리가 너무 커서 상대방의 말이 들리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엄마는 잠시 간호사분들과 이야기를 나누시느라고 잠시 자리를 비우셨고 나는 나 혼자 아빠 옆에서 아빠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아빠는 지금 내 말을 들을 수 있을까?’ 나는 의심스러우면서도 아빠 옆에 다가앉았다. 그리고 수십 번도 더 연습했던 말을 떨리는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꺼냈다.


“아빠, 사랑해요. 그렇지만 하나님은 아빠를 더 사랑하신대요. 그리고 천국에 가면 아픈 것도 없대요.”

여기까지 이야기를 했는데 아직 할 말이 많이 남았는데 미친 듯이 눈물이 나왔다. 그 눈물 탓에 나는 목에 있는 그 무엇인가가 같이 올라오는 것 같이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정확하게 이야기해야 해. 내가 똑바로 이야기하고 있는 걸까. 밖에 있는 엄마한테 내가 우는 걸 들키고 싶지 않아서 입술을 깨물었다. 엄마가 더 힘들 테니까. 그리고 아빠는 ‘질질 짜는 걸’ 싫어하니까. 그래도 의지와는 다르게 눈물은 마치 수도꼭지를 틀어놓은 듯이 넘쳐 나왔다. 왜 멀쩡하게 아빠가 들으실 수 있었을 때는 이런 얘기를 하지 못했을까.

나는 아빠가 화내시는 게 무서웠다. 그래서 아빠가 대꾸를 하거나 화를 내시지 못하는 이런 상태로 누워계신 이때가 되어서야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이었다. 정말 다시없이 비겁하고 못나게 느껴졌다. 몇 마디 못하고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고 있었는데 엄마가 돌아오셨고 나는 더 이상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그날이 마지막인 줄 알았더라면, 그랬더라면 내가 무언가 더 말을 했을까? 무엇인가가 바뀌었을까?

다음날에도 병원에 가려고 했지만 다들 병원생활이 길어질 것이니 좀 쉬어가며 하라고 했다. 월요일에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면 또 병원에 가보면 되겠지. 긴 싸움이 될 거라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기에 나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는 평일에 고속버스를 타고 적어도 일주일에 세 번은 병원에 가려고 마음먹고 있었다. 운전을 하기는 겁이 났다. 눈물이 너무 나서 매우 위험할 것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의 계획은 하나도 실현되지 못했다. 나는 그날 아침에 전화를 받고 알았다. 이제는 다 틀렸다는 것을.


(아빠와의 화해)

아빠, 나랑 아빠랑은 왜 더 나은 말로 서로를 위해주지 못했을까요? 왜 더 서로 상냥하지 못했을까요?


이제 아빠는 곁에 안 계시고 더 이상은 아무 말도 해드릴 수도 들을 수도 없어요. 만약 더 대화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고 해도 우리는 그저 그렇게밖에 못했을까요?

‘사랑한다.’고 용기를 조금만 더 내서 말했으면 어땠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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