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방의 마음을 얻는다는 건.
너의 장미꽃이 그토록 소중한 것은
그 꽃을 위해 네가 공들인 그 시간들 때문이야.
여기 보이는 건 껍데기에 지나지 않아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뭔지 아니?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사람이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란다.
-‘어린 왕자’ 중 여우의 말
"자, 엄마는 여행을 다녀올 테니, 아빠를 부탁한다. 식사 좀 잘 챙겨드리고."
엄마는 이 말을 하고는 미국으로 떠나셨다.
집에는 아빠와 나만 남았다.
아빠는 엄마를 혼자 어디를 가게 잘 놓아두시지 않았고 보통 아빠가 가시는 곳에는 어디든지 함께 가시려고 하는 경향이 있으셨다. 아름답게 표현하면 ‘사랑’, 그리고 그냥 있는 그대로 표현하면 ‘집착’. 엄마는 어디도 혼자 다닐 수 없었다.
그런 아빠가 엄마가 미국으로 놀러 가는 것을 허락하신 때가 있었다.
엄마는 아빠와는 달리 친구가 참 많았는데 그중의 한 명인 미국에 사는 친구가 초대를 했던 것이다. 더욱 대단한 것은 엄마가 주식으로 딱 여행 갈 만큼만 벌어서 따로 통장에 넣어두시고는 “나는 친구들과 이 여행을 가야겠어.”라고 딱 잘라 선언했다고 한다. 아마 평소에는 그런 말을 잘하지 않는 엄마이기에 확실히 의가가 전달되었던 것 같다. 우리 엄마지만 멋지다. 어떤 이유인지는 몰라도 아빠는 엄마의 여행을 허가하셨고 엄마는 처음으로 가족을 떠나 2주간의 여행을 떠났다.
아빠와 나는 단 둘이 남아 본 일이 거의 없었다. 그 작은 집에서도 서로 의사소통이 필요하면 엄마에게 전달을 맡겼던 우리 둘은, 정말 어색함의 극치를 경험할 수 있었다. 평일은 출근을 해야 해서 집에 없으니 그나마 괜찮았다. 주말에는 우리는 매우 어색한 두 사람만의 시간을 가져야 했다. 식사를 챙겨드리기 위해 “뭐 드시겠어요?”라고 여쭤보면 “알아서 먹을게.”라고 대답하셨던 아빠 셨기에 나는 그날도 그러려니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 토요일에는 아빠의 답변은 달랐다.
그날은 어색한 표정으로 아빠가 나더러 나오라고 하시더니 차에 태우셨다. 밥을 먹으러 간다고 했다. 차에 타면서 순간 아빠 옆자리에 앉아도 되는지 망설여야 했다. 어색했다. 무언가를 얘기해야 하는지 아니면 입을 다물고 조용히 가야 하는지 선택하기도 힘들었다. 모르는 사람 차를 타도 이렇지는 않은데.
지금 어디로 가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나는 멋쩍은 음성으로 우물쭈물 몇 마디 했을 뿐이었다. 도착한 곳은 교대역 부근에 위치 한 어느 ‘보리밥집’이었다. 아빠는 주문할 때 뭐를 먹고 싶냐고 내게 묻지도 않았다. 뭐든 잘 먹었던 나는 그냥 조용히 시켜주는 보리밥을 먹었다. 기억나는 것은 먹는 동안도 감돌던 그 침묵과 어색함 그리고 혀에 거슬거리던 보리밥의 감촉과 고소한 맛이다.
나중에 엄마가 말씀하신 바로는 아빠는 엄마와 함께 그 보리밥집에 가신 적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맛있는 것에 꽂히면 365일도 같은 메뉴로 드실 수 있는 우리 아빠는 엄마와 함께 그 집에 종종 가서 보리밥을 드셨었다고 한다.
다 커서는 두 분을 쫒아서 식사자리에 나가기 힘들 만큼 바빴던 나는 알 리 없는 사실이었다.
엄마가 나중에 여행에서 돌아오셔서 우리가 그곳에 갔었다는 이야기를 들으시고는 피식 웃으시며, “맛있어서 너를 사주고 싶다더니, 결국 데리고 갔네.”라고 말씀하셨다.
자식이란 마음에 들지 않아도 맛있는 것을 보면 먹이고 싶은 대상인가 보다.
(아빠와의 화해)
우리, 서로 말없이 밥을 먹었어도 그때는 어색함 속에서도 정을 느꼈었지요.
좀 더 함께 많이 밥을 먹을 수도 있었고,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도 있었는데 우리는 아쉽게도 많은 시간을 그냥 흘려버렸네요. 시간과 노력을 좀 더 기울였으면 우리는 서로 길들일 수 있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