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로부터 도망치다.
2. 뒤돌아 뛰다.
두려움 때문에 사랑하는 걸 포기하지 마.
-영화 ‘씽’ 중에서
“아빠는 선장님이에요.”
우리 아빠는 외항선을 타시는 선장님이셨다. 누가 물으면 나는 자부심이 가득한 목소리로 이렇게 대답했다. ‘선장님’이란 아주 큰 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이라고 했다. 배에 탄 모든 사람들은 아빠의 말을 듣고 따라야 한다고 했다. 어린 나의 마음에 전 세계를 돌아다니는 큰 배의 선장님이라고 하는 우리 아빠는 내 마음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아빠는 편지도 자주 보내고 나에게 선물도 보내주시곤 했다. 아빠가 보내주시는 선물은 해외에서 보내지는 것이어서 다른 사람들의 눈에도 귀한 것들이었다. 조그만 자동차 모형도 있었고 그때는 귀했던 양배추 인형도 보내져 왔다. 나는 여자 인형을 원했었는데, 남자 인형밖에 없어서 남자 인형으로 보내셨다고 했다. 우리 아빠는 내게 마치 전설로만 전해져 오는 ‘좋은 사람’이었다. 아빠는 내 상상 속에만 있었다. 엄마가 늘 읽어 주는 편지 안에, 그리고 같이 들어 있던 사진들 속에. 그 안에서 아빠는 늘 당당하고 멋져 보였다.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두 글자로만 대답해봐.”
버스의 안내양 언니는 어린 나에게 둘 중 한 명만 택하라고 강요하며 즐거워했다. 나는 망설이다가 “아빠요.”라고 대답했었다. 엄마는 나에게 정말 좋은 엄마이고 친구였지만 함께 살았기에 나에게 야단도 치고 잔소리도 했다. 하지만 아빠는 곁에 없었기에 잔소리도 하지 않았고 게다가 편지에서는 나를 보고 싶다고 하곤 했다. 게다가 늘 좋은 선물을 보내왔기 때문이었다. 엄마는 그 대답을 듣고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셨고 조용히, “진짜로?”라고 물으셨다.
아빠가 선장님이어서 나쁜 점은 단지 아빠가 우리 곁에 없다는 것이었다. 한 번 배를 타고 나가시면 2년이고 3년이고 들어오시지를 못했다. 그래서 유치원 재롱 잔치나 다른 많은 행사에도 아빠가 나와 함께 한 적은 한 번도 없었고, 다른 아이들이 아빠랑 차를 타고 여행을 가거나 대공원에 놀러 갈 때에도 나는 엄마와 가까운 곳에 가거나 집에서 책을 보았다. 하지만 특별히 나쁜 것은 없었다. 나는 엄마와 집에 있는 시간을 좋아했으며 책을 읽거나 공상하는 시간도 좋아했기 때문에 특별히 다른 가족을 부러워해 본 기억이 없었다. 그리고 엄마는 상상을 좋아하고 글쓰기를 좋아하는 나에게 많은 영화와 뮤지컬 연극을 보여주셨기 때문에 나는 어린 시절을 책과 연극 영화를 보며 즐겁게 상상하며 보낼 수 있었다. 사실 그래서 아빠가 그렇게까지 필요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나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가지고 나를 지켜주는 아빠를 상상하곤 했었다. 나의 상상 속의 아빠는 다정했고 강했고 나의 편이었고 나를 이해해주었다. 나는 완벽한 아빠를 꿈꿔왔던 것이다. 하지만 이 상상은 계속되지 않았다. 진짜 현실의 아빠가 돌아오셨기 때문이다.
그날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오래도록 기다리던 아빠가 돌아오시는 날이었다. 그때 나는 초등학생이었다. 지금은 아이를 낳은 40대 아줌마가 되었는데도 아직도 그날의 그 기분이 생생하다. 엄마는 매우 설레 했으며 나에게도 기쁨을 표현하시며 나를 준비시키셨다.
“아빠가 얼마나 네가 보고 싶겠니. 이렇게 많이 컸는데. 외국에서 힘들게 일하면서 신애를 생각하면서 참았다고 하시더라.”
엄마는 계속 아빠가 나를 얼마나 좋아할지 강조했다. 나도 조금은 흥분되었다. 하지만 그렇게 들뜨지는 않았다. 아빠가 돌아온다. 내 상상 속의 아빠가 돌아오시는 것이지만 아빠와 같이 산다는 것은 도저히 상상으로는 만들어 볼 수가 없었다.
나는 그냥 아빠를 한 번 만나보러 가는 기분이었다.
처음 가보는 공항은 아빠만큼이나 낯설었다. 그 '낯선' 공항에서 나는 '낯선' 아빠를 기다렸다. 그리고 드디어 아빠가 공항 문을 통해 등장했다. 나는 사진 속의 남자를 기억했다. 하지만 사진에서 튀어나온 그 남자는 현실로 만나보니 훨씬 낯설었다. 아빠는 어린 내 눈에는 덩치가 엄청나게 커 보였다. 그리고 얼굴은 햇볕을 받아서 검게 그을려 있었다. 무서웠다.
아빠는 엄마를 알아보고는 우리를 향해 팔을 벌렸다. 팔을 벌리자 아빠는 더 커 보였다. 엄마는 튕겨 나는 것처럼 자리에서 일어나서 아빠한테 뛰어갔다. 나도 뛰어가야 할 차례였다. 그러나 나는 너무나 무서워졌다. 아빠는 내가 상상하던 '그 사람'이 아니었다. 너무 크고 검었다. 나는 아빠의 얼굴이나 표정은 자세히 보지도 못했지만 강한 공포에 사로잡혔다. 가장 믿고 있었던 엄마마저도 나를 버리고 저쪽으로 뛰어가지 않았는가. 나는 그들의 반대편에 버려져 있었다. 엄마는 당연히 나도 기뻐할 것이고 아빠한테 뛰어갈 줄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돌아서서 반대편으로 뛰었다. 도망을 쳤던 것이다.
“신애야!”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지만 개의치 않았다. 도망갔다. 숨이차게 뛰었다.
너무 당황해서 뛰면서 보였던 길 그리고 벽들만 기억이 난다. 다시 돌아가려면 길을 알아야 한다는 것도 중요하지 않았고 이렇게 뛰다가는 미아가 된다는 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나는 무조건 뛰었다. 심지어 기둥을 돌아서 모르는 길로 뛰어갔다. 나는 도망쳐야만 했다.
내가 어떻게 엄마한테 잡혔는지 그래서 내가 아빠한테 제대로 인사는 했었는지 그 후의 일은 도저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잡혔기에 무사히 집으로 왔고 우리는 세 가족이 모여 완전체가 되었다. 드디어 엄마가 말하던 이상적인 ‘가족’이 된 것이었다. 그런데 그 일은 나에게 상상만큼 좋지는 않았다. 아빠가 돌아오신 첫날 하나뿐인 화장실에서 아빠가 씻으실 때 나는 문밖에서 오줌을 참으면서 깨달았다. 이제 우리 집에도 ‘남자’가 생겼으며 그 일이 그렇게 좋지만은 않은 거라고. 엄마랑만 있을 때는 언제든 화장실을 쓸 수 있었지만 아빠가 온 후로는 그렇지 않았다. 나랑만 있어 주었던 우리 엄마도 이제는 나만의 엄마가 아니었다. 아빠의 아내이기도 했다. 나랑 보내는 시간이 줄어든 것이다. 한 마디로 아빠가 집에 있는 것은 ‘불편’했다.
<아빠와의 화해>
아빠, 아빠가 살아계실 때 이 말은 꼭 했었어야 하는데. 그날 그렇게 도망가서 미안했다고. 아빠는 집이 그립고 가족이 그리웠을 텐데, 내가 처음부터 가족이 되어주지 못해서 미안했어요. 이기적으로 엄마를 아빠한테 빼앗긴 것이 싫다고 생각했어요. 아빠가 집에 있는 것이 불편하다고 느끼고 대놓고 그렇개 보이게 행동한 것, 정말로 미안해요. 어려서 변화가 무서워서 그랬어요. 아빠랑 함께 살아 본 적이 없어서 어색해서 그랬어요. 다시 돌아갈 수만 있다면 그 자리에서 아빠를 꼭 안아줄게요.
그리고 정말로 보고 싶었고 내가 얼마나 아빠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지 말해 줄게요. 아빠랑 하고 싶은 일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말하고 아빠는 얼마나 내가 보고 싶었는지 물어볼게요. 하지만 다시 돌아갈 수는 없으니 이렇게 써 봅니다. ‘아빠, 그날, 제가 너무 미안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