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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신애 Jul 20. 2022

지혜롭게 욕하기

-뜻을 알고 써봅시다.

"지랄하네."

내가 조용히 입속으로 웅얼거리며 말했다.

우리 엄마는 조용조용하고 화를 잘 내지 않는 분이었다. 그러나 그날 나는 먼지 나게 맞았더랬다.      

내가 욕을 엄마 앞에서 대놓고 사용한 날은 그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역시 맞아야 정신 차린 다고 충격요법이 먹혔던 것이다.      


요즘 고학년이 된 아이가 거친 말들을 쓰기 시작했다. 친구들끼리 쓰기도 하겠지만 유튜브에서 배우고 있는 듯했다. 무조건 못하게 막아봤자 더 거센 반발이 있을 듯해서 나는 이 문제와 정면 승부하기로 했다.    

  

우선, 들리는 욕들을 모아보기 시작했다. 가볍게  '개새끼'부터 지랄하네, 존나, 씨발, 뻑큐.      

우선 가벼운 욕부터 하나씩 짚어보기로 했다. 

나와 윤군은 노래를 흥얼거려가며 ‘개새끼’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윤군이 ‘개새끼’를 배운 것은 내 탓도 크다. 운전할 때 나오는 나의 격한 인격이 있는데, 그 인격이 할 줄 아는 욕이 ‘미친놈’이랑 ‘개새끼’이기 때문이다. 

나는 일단 윤군에게 사과를 하며 시작했다.

“미안, 윤군. 아무래도 이건 내가 썼던 욕인 거 같다. 엄마도 운전할 때 워워~할 테니까 윤군도 이 욕을 자제해 보도록 해.”

개새끼는 사전에도 개의 새끼를 지칭하는 말로 나온다. 여러 가지 가설에 의하여 가짜라는 말에서 파생되어서 ‘사생아’라는 뉘앙스도 있다는데 그것은 근거도 미약하니 넘어가고.

“우선, 나는 이건 개 전체를 모욕하는 말이니까 자제해야겠다.”

나의 결론은 이상한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개들이 얼마나 착하고 예뻐. 인간보다 나은 축생들도 있더구먼.”

동물을 사랑하는 윤군은 고개를 주억거린다.

“나쁜 사람들한테 ‘개새끼’라고 하면 개들이 서운할지도 몰라.”

나 뭐 하는 걸까.

“그리고 욕을 하려면 그 사람만 욕해야지 가족을 끌어들이면 안 돼. 엄마도 엄마만 욕먹는 건 참을 수 있어도 우리 부모님을 욕하면 화가 나더라. 개새끼라고 하면 그 사람만이 아니라 그 사람 부모님도 개라는 얘기쟎아.”

갑자기 윤군의 얼굴이 새하얘진다.

“아, 그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나는 속으로 혀를 찼다. 누구한테 써본 거니.


다음, ‘지랄하네.’ 아, 이거 내가 사용했던 말이네.

국립국어원 표준 대사전을 사용해 보니, ‘1. 마구 법석을 떨며 분별없이 하는 행동을 속되게 이르는 말. 2.‘간질’(癇疾)을 속되게 이르는 말. =지랄병.’이라고 표기되어 있었다. 우선 간질, 혹은 뇌전증이라고 불리는 이 병에 대해서 찾아보고 입에서 거품이 나오거나 눈을 뒤집고 넘어지기도 한다고 설명하면서 이건 병인데 심각한 병이니까 신중하게 써야 하는 욕이라고 알려주었다.     


이제는 ‘성’에 관련된 욕들이다. ‘존나’는 남자의 성기인 ‘좆’이 나오게라는 뜻으로 남성이 ‘발기할 정도로’라고 강조할 때 쓰이는 말이었다. 아직, 발기가 뭔지 설명을 따로 해야 하는데, 힘드네. ‘씨발’은 ‘씹할’에서 나왔다고 하는데 성행위를 뜻한다. ‘뻑큐“는 성적인 행위를 뜻하는 영어 욕이다. 와, 설명하기 힘든 것들이 몰려나왔네.     

“윤군아, 모든 욕들이 다 상대에게 모욕을 주기 위해 하는 말이지만, 굳이 질 낮은 욕을 하면서 그 사람을 모욕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 그것도 유튜버들이 습관적으로 내뱉는 말들을 멋있어 보여서 따라 해도 안될 것 같고.”     


나는 윤군에게 내가 본 예쁜 누나 이야기도 해주었다.     

“지난번에 엄마가 지하철에 탔는데, 엄마 앞에 정말 예쁜 누나가 서더라고. 우와, 진짜 예쁘더라. 피부도 하얗고 눈도 예쁘고. 연예인 같았어. 엄마는 속으로 ‘우와, 부럽다. 진짜 저 여자애처럼 생겨보면 좋겠네’라고 생각했지. 그런데, 다음 순간이었어. 전화벨이 울리고 그 누나가 전화를 받았는데, 환상이 완전히 깨지더라고. 누나는 첫마디부터 욕을 시작했거든. ‘아, 씨발, 왜 이렇게 늦게 전화해. 존나 짜증 나게.’”

내 이야기를 듣자 윤군은 폭소했다.

“봐봐. 그 말들도 문제지만 그 욕을 쓸 때 그 누나 표정이 변하더라고. 더 이상 예뻐 보일 수가 없는 표정이었어. 이게 어쩔 수가 없나 봐. 말을 할 때는 감정이입이 필요하잖아.”          

 

우리는 나의 아름다운 모습을 위해 언어생활을 정화하기로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며 마무리를 지었다. 지켜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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