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은 아기 때부터 운동신경이 남들보다 좀 떨어졌다. 그런데 언어발달은 또 엄청나게 빨라서 입으로 모든 일들을 해결하곤 했다. 그렇지만 남자아이들의 세상에서는 아무래도 운동에서의 세계가 존재하는 법, 그것을 무시할 수가 없어서 우리 부부는 아이에게 열심히 이 운동 저 운동을 배울 기회를 주었다.
남편이 농구를 좋아해서 언젠가 자기와 하자며 아이를 설득해서 토요 오전 농구부에 보냈는데, 처음에는 재미있어하더니 어느 날 갑자기 와서 울상을 하고는 농구부의 한 형이 자기에게 자꾸 뭐라고 한다는 것이었다. 아마 승부욕이 강한 학생이 있는데, 이 아이가 못하니까 뭐라고 했나 보다 생각을 하고는,
“형이 못한다고 뭐라고 했어?”라고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아이는 뭐라고 투덜투덜했는데, 잘 설명은 안 해주고 기분이 나쁜지 계속 웅얼거렸다.
“나는 처음이니까 당연히 못하잖아. 자꾸 나한테 뭐라고 하는데 무슨 얘기인지 모르겠단 말이야.”
내가 당한 일이 아니라서 아들의 기분이 좀 진정될 때까지 기다려야겠다고 생각한 나는 아이에게 더 이상 그 이야기를 시키지 않았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어느 날 밤에 잠자리에 누워서 아이와 큐티를 하고 이야기를 나눈 후 자라고 했을 때였다.
아이가 갑자기 골똘히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조용히 읊조리 듯이 말했다.
“건담마크...건담마크...”
나는 로봇 이야기를 하는 줄 알고,
“새로 나온 건담이야? 무슨 얘기야?”
라고 물었는데, 아이는 약간 초점이 나간 눈을 하고 똑같은 말을 하는 것이었다.
아들이 이런 경우가 거의 없어서 나는 좀 걱정스러워서 물었다.
“무슨 얘기야?”
그랬더니 갑자기 퍼뜩 현실로 돌아온 얼굴을 하고는 아들이 말했다.
“형이 나한테 건담마크를 하라쟎아. 그게 뭘까?”
처음에는 당황했는데, 다음 순간 나는 안 웃으려고 입술을 깨물며 물었다.
“혹시....전담마크 하라고했어?”
아이는 나를 얼빠진 얼굴로 쳐다보더니 읊조렸다.
“건담마크...전담마크....그런데 그게 무슨 얘기야?”
나는 아직도 안 웃으려고 근육을 잡은 채로 말했다.
“응, 한 사람만 정해서 방어하라는 얘기야.”
그러자 아이는 갑자기 계시를 받은 사람처럼 소리쳤다.
“아!!!”
그리하여 농구부의 형이 외쳤다던 ‘건담마크’의 비밀이 풀렸다. 아이는 어디에 있는 건담을 어쩌라는 건지 몰랐다며.
지금 아들은 그 형과 잘 지내며 즐거운 농구부 생활을 하고 있다. 한 단어의 비밀은 큰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