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덧과 우울증(2)
"싫다고, 아무도 만나기 싫어."
심한 입덧으로 아침부터 방주에, 아니, 조각 보트에 타고 표류하는 느낌으로 살아가고 있었을 때였다. 하루는 남편이 이 동네에 사는 자신의 동료의 와이프가 내 이야기를 듣고 나를 만나 보고 싶다고 했다고 전해줬다.
'대체 내 이야기를 어디 가서 하고 다닌 거야.' 하는 생각이 들면서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그래서 그때 나의 반응은 극단적인 부르짖음이었다. 내 꼴을 아무도 보지 않았으면 했고, 누구를 만날만큼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딩동.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집의 초인종이 울렸다. 나는 방에서 후적후적 걸어 나와서 문을 열었다. 택배겠지. 그러나 문을 열자 문 앞에는 한 여자가 서 있었다. 작고 강단 있어 보이는 인상이었는데, 예쁘고 까만 눈이 반짝이고 있었다. 나는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이 수줍게 문 앞에 서 있는 모습을 보면서 '이건 또 뭐지?'라고 생각했다.
"누구세요?"
"아, 저, 제 남편이 그러는데, 신애 씨가 입덧이 심하고 우울해한다고 해서."
여기까지 들으니 머릿속에 섬광이 스쳐 지나갔다. 아하. 그녀가 누구인지 알 것 같았다. 며칠 전에 남편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내가 분명히 싫다고 했건만.
그렇지만 선해 보이는 미소를 띠고 있는 그녀를 마냥 문 앞에 세워두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다고 그냥 가라고 할 수도 없고.
나는 오래간만에 손님용 미소를 지었다.
"들어오세요."
그녀는 남편과 친한 군대 선임의 부인이었다. 나의 상황을 전해 듣고 내 대답도 전해 들었지만 많이 망설이다가 찾아오게 되었다고 설명해 주었다.
"무엇보다, 신애 씨도 신앙이 있다고 해서, 기도 많이 했어요. 그리고 가봐야지 하는 마음을 주셔서 이렇게 오게 되었어요."
나는 오랜만에 남편이 아닌 사람과 대화를 길게 하게 되었고, 대화가 진행되면서 더 이상 그렇게 불편한 마음이 아닌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녀는 나를 편하게 해 주면서 입덧 선배로서 어떻게 했으면 좋겠다고 조근조근 조언도 해주었다.
그 후 나는 그녀의 집을 방문하게 되는 경우가 잦아졌다. 종종 그녀는 나에게 전화해서 집에서 기도 모임이 있는데 와서 점심을 먹으라고 권해주고, 잠시 앉아서 차나 한잔 하라고 말해주었다. 집을 떠나서 다른 사람 집에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해주는 밥을 먹으니 울렁거림도 좀 덜 한 듯했고,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은 입덧이 좀 사그라드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나는 아이를 낳으면서 친정으로 오게 되었고 처음 의도와는 다르게 친정에 눌러앉게 되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그녀를 많이 만나지 못하게 되었다. 하지만 늘 그 느낌을 잊을 수가 없었다. 내가 까칠하게 '나를 방해하지 말라.'라고 답변을 주었음에도 용기를 내어 나에게 손을 내밀어 주었던 그 마음을. 그리고 나에게 값없이 베풀어 주었던 배려를. 그녀 덕택에 '나'만 알고 사는 이기적인 사람인 '나'도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손길을 내밀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감사해요, 은영 씨. 잊지 못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