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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든 Sep 22. 2024

위로연습 1 : 기꺼이 위로받을 용기

[위로연습 1]

당신을 위로해 보려 합니다. 다만 미리 고백하자면 저는 위로에 서툽니다. 


고등학교 때 저녁을 먹고 산책을 함께 하던 친한 친구가 본인의 고민을 한참 동안 털어놓던 장면이 떠오릅니다. 나는 어쭙잖은 해결책을 몇 차례 제안하다가, 오히려 친구의 반발을 샀다가, 결국 듣는 둥 마는 둥 딴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한참 시간이 흐른 지금도 그 장면이 떠오르는 이유는 아마도, 내가 위로와 공감에 서툰 사람임을 처음 자각한 날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날은 선선하고 밤하늘이 맑아 쾌청하였습니다. 우리는 학교 운동장에 있는 벤치에 앉아 이야기를 시작했고 운동장을 한 바퀴 빙 돌아 농구 코트에서 대화를 이어나갔지요. 


너무나도 미안한 것은 그때 친구의 고민이 무엇이었는지가 도통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


맞습니다. 장황한 제 이야기로 당신의 위로를 시작하려는 것만으로도 제가 위로에 서툰 사람이라는 사실을 금방 눈치채셨을 것입니다. 저는 나이를 한참 먹은 지금도 여전히 잘 위로하는 법을 모릅니다. 시도를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나 승률이 낮다고 할까요. 아니, 최선을 다 해보지 못한 저의 부덕 때문으로 하겠습니다.


그럼에도 오늘 다시 한번 당신께 위로를 시도해 보려 합니다.


사실 마음 한편에는 우리의 걱정들이 조금은 맞닿아 있을 것이라는, 오만한 기대감도 있습니다. 마치 우리가 가위바위보를 하면 처음에는 무조건 같은 것을 낼 것만 같달까요.


괜찮을 겁니다. 당신은 그럴만한 자격이 있습니다. 다 잘될 겁니다.


**


당신에게 꼭 위로가 필요한 상황인가 하면 그것은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단지 아무도 듣지 않을지도 모를 이 단어들로, 혼자 위로연습을 볼 뿐입니다. 


저는 지금 저의 언어를 '위로'라는 단어로 그럴듯하게 홍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감사'와 '용서', '공감'과 '격려'와 같이 다채롭고 명료한, 또는 당신에게 지금 꼭 필요할 행위들이 제 위로를 언제든 대체할 수 있다는 것을 압니다.


 당신의 위로이기에, 당신의 단어가 가장 중요함을 알면서도 위로를 위로라고 평범하게 정의해 버리는 저의 한계를 부디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


그런 와중에도,

바스락거리던 당신의 마음이 제 어설픈 위로를 통해 촉촉하고 윤기를 머금을 수 있다면 얼마나 안도할만한 일일까요. 어설픈 위로도 언젠가는 진정한 격려의 줄기가 되어 당신의 마음을 휘감고 순식간에 꽃을 만개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위로에는 자신이 없습니다. 이제는 그저 당신이 위로받을 용기를 가질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고속도로에서 차가 쌩쌩 달리는 도로 배수관에 꿋꿋이 살아남고 있는 잡초를 본 적이 있나요? 삶을 갈구하는 그들에게는 지나가는 차의 소음조차 살아가는 위로가 되고 있을지 모릅니다. 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너무 쉽게 어려움을 어려움으로만 수용하고자 합니다. 삶에서 마주하는 여러 신호들의 의미를 최종적으로 정의하는 것은 그것을 마주하는 사람의 몫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기꺼이 위로받을 용기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니, 어설픈 위로의 말을 건네는 주제에 염치없으나, 나의 단어들이 부디 위로로 정의되어 오늘은 당신에게 편안한 하루와 저녁과 밤이 다가오길 바랍니다. 잠시 걷는 산책길이, 또는 문득 바라본 하늘이, 아니면 잠시 숨을 돌릴 수 있는 휴식이 우리의 삶들을 채워가는 붓 한끝 한끝이 되어 수채화를 그려가는 과정이라 생각해 보아도 좋겠습니다. 


****


흘러가는 대로 두세요. 괜찮을 겁니다. 바꿀 수 없는 과거와 미래에 지레 압도당할 필요 없어요. 그저 오늘을 새로운 색깔로 채워나가는 것에만 집중하세요.


맞아요. 많이 채울 필요도 없습니다. 좋아하는 색깔로 점 하나만 찍어요. 좋아요. 잘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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