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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든 Sep 15. 2024

어쩐지 아침부터 커피를 쏟더라니

[어쩐지 아침부터 커피를 쏟더라니]

[어쩐지 아침부터 커피를 쏟더라니]


오래간만에 외근이 있는 날이다. 유난히 날이 더웠다. 9월인데 아직도 이렇게 덥다니, 믿기지가 않는다. 올해가 남은 여름 중에 가장 시원한 여름이라고들 한다. 말도 안 돼.


나는 유난히 날씨에 기분이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이다. 화창한 날씨에 아무 이유 없이 기분이 들뜨다가도, 비가 오는 궂은 날씨에는 또 마음이 축 처지곤 한다. 지금처럼 화창하면서 더운 날과 흐리지만 시원한 날은 도무지 기분이 좋아야 할지 나빠야 할지를 선택하기 어렵다.


*


지하철 역을 나오니 프랜차이즈 커피숍이 눈에 들어온다. 그래, 아이스커피를 한잔 마셔야겠다. 오늘 같은 날 커피도 마시지 않고 바로 업무를 보는 건 나 자신에게 못할 처사다. 마침 동료가 근처에 다 왔대서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을 샀다.


그렇게 커피를 마시다가, 동료가 웃긴 말을 했는지 내가 기침을 한 건지 잘 기억은 안 나는데, 나도 모르게 커피를 뿜어 버렸다. 흰 셔츠에 사르르 커피 물이 들어가는 장면을 무기력하게 보다가, 커피를 내려놓고 급하게 휴지와 물티슈로 얼룩을 지워 본다. 커피 자국은 유심히 쳐다보지 않으면 잘 모를 정도로 지워졌지만, 오늘 하루종일 신경쓸거리가 생겼다는 생각에 얼마나 얼룩이 들었는가는 이미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


외근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서는 누군가 인사를 했다. 예전 회사에 근무할 때 업무연락을 종종 하던 사람이다. 너무 반갑게 인사하던 탓에 나도 해맑게 인사를 하고 지나갔으나 몇 년 만에 마주친 탓에 도무지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 떠오를 떠오를 떠오르지 않은 이름 덕분에 나는 약 10분을 골몰하였지만 결국 이름이 떠오르지 않았다.


아, 불편함이 하나 더 생겨났다.


 ***


오후에는 미팅을 위해 외부 손님이 오셔서 마중을 나갔다. 그런데 웬걸? 하필 주차장에서 방문하신 분의 차가 고장이 났다. 미팅에는 내가 꼭 참석하지는 않아도 되었던 탓에, 일단 급한 대로 손님을 올려 보내고, 서비스센터 직원분이 도착할 때까지 나는 더운 주차장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차를 지켰다. 차가 이렇게 갑자기 퍼지나? 비싼 차였는데...

 

저녁에는 주변에 일이 있어 들렀다는 형을 만나 김치찌개에 소주를 마시며 속 깊은 얘기를 했다. 앞치마를 쓴 덕분에 다행히 찌개국물이 튀지는 않았다. 


술이 애매하게 취해서였을까, 하루 종일 커피를 마셔서일까. 밤에 잠이 오지 않아 밤잠을 설쳤다. 뒤척거리는 중 밖에서 갑자기 빗소리가 들려온다. 소나기가 몰아치는 중이다. 옴니버스식 드라마 1 시즌을 통째로 소화해 낸 듯한 긴 하루의 클라이맥스를 기념하는 듯했다.


누군가에게는 평범했을 하루가 나에게는 특별할 것 없이 특별했다. 그렇다고 따지고 보면 엄청난 이벤트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파고가 높지 않지만 계속되는 바다의 출렁임이 어지로운 하루였을 뿐이다. 


****


화창하면서 더운 날과 흐리지만 시원한 날은 도무지 기분이 좋아야 할지 나빠야 할지를 선택하기 어렵다. 이렇게 비까지 내리게 되면 더욱 그러하다. 그래서 오늘의 좋았던 기억만 남기기로 했다. 


어쩐지 아침부터 커피를 쏟더라니, 기억에 남는 하루를 시작하기 위한 프롤로그 같은 것이었나 보다, 하며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아까 만났던 예전 회사 동료 이름이 갑자기 떠오른다. 억지로 생각하지도 않았는데 신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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