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간의 일상
본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 제품 및 단체는 실제와 무관한 것으로 허구임을 밝힙니다. 특정 인물, 단체, 국가에 대한 표현은 작가의 개인적인 생각이 포함되어 있으며, 받아들이기 불편하실 수 있습니다.
S의 종말
이 넓은 세상의, 지구라는 행성의, 인간이라는 종에게 마지막 일주일이 주어졌다.
너무도 평화롭고 고요한, 눈부신 늦겨울.
S에게는 어쩌면 새로운 것이 생기기도 하고, 작년과 똑같이 흘러가기도 하는 평범한 계절이었다. 연초였으나 특별한 이벤트는 굳이 바라지 않았고 새 해면 호들갑을 떨던 것도 과거인지라 다들 유유자적하게 흘러갔다.
조금 특별한 이벤트라면 예전에 심어둔 커피콩이 이제서야 싹을 틔우고 있다는 것이었다. 심고 한 달이 지나도록 잠잠했던 커피콩이 이제서야 자란 것이었다. 특이한 점이라면, 커피콩은 잎이 나는 게 아니라 심은 커피 콩 그대로 줄기가 생겨 나온다는 것이었다.
4개를 심었는데 서로 정하기라도 했는지 다 같이 주르륵 난 것도 귀여웠다. 아직 잎은 나지 않았고 콩 모양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기에 어떻게 자랄지 궁금해졌다.
곧 봄이 되기 때문인지 식물들은 각자 새로운 싹들을 피워냈다. 몬스테라는 또 돌돌 감긴 새 잎은 펼칠 준비를 하고 있었고, 죽은 줄만 알고 뽑으려고 했던 해피 트리도 새싹을 틔워내고 있었다.
이른 아침, 거실 창문으로 보이는 산에 해가 반쯤 걸쳐 있을 때 즈음, S는 눈을 떴다. 커튼의 틈새로 방 곳곳 햇빛이 들어왔다.
S는 이불을 털어서 잘 갠 뒤 베개 위에 올려두고, 베란다 문을 열었다. 늦겨울의 쌀쌀한 공기가 피부를 스쳤다. 아침의 상쾌한 공기와 늦겨울의 차가운 공기가 합쳐져 공기가 맑았다.
베란다의 세탁기를 둔 쪽의 반대편은 식물 화분으로 가득 차 있었다. 예전 이층 침대를 1층으로 만들며 뺀 사다리도 벽에 비스듬히 세워 식물들을 올려두자 인테리어 용품 같고 예뻤다. 사다리에 둔 아기자기한 식물들을 빼고도 실내에 두기에는 너무 크거나, 둘 자리가 마땅치 않거나, 햇빛을 많이 받아야 하거나, 너무 디자인이 특이한 식물들은 베란다에서 머물렀다. 그중에는 아직 분갈이를 못 한 두 번째 몬스테라나, 화분이 너무 커서 실내에 두기 애매한 제라늄이라던가, 햇빛을 많이 받아야 하는 허브 종류의 식물들이 있었다.
S는 잠깐 아침 공기를 쐬고 식물들을 바라보다가 거실로 나섰다. 어느새 산에 걸쳐있던 해가 산에서 완전히 떨어져 있었다. S는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며 믹스커피를 탔다. 드립 커피의 깊은 풍미도 좋았지만, 믹스커피의 달달함과 가벼움이 더 좋았다. S는 좋아하는 컵에 커피를 탄 뒤 조금 기울어진 나무 식탁에 자리를 잡았다.
불을 켜지 않아도 적당히 밝은 집 안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아침의 부드러운 햇빛은 식탁 맞은편 앞에서 어른거렸고, S가 앉은 자리에서는 거실의 큰 창의 예쁜 도시 풍경이 보였다. 집 안의 완벽하게 아름다운 고요함.
S는 커피를 마시며 아침 뉴스를 읽었다. 오늘도 이해하기 어려운 정치 얘기나 온갖 듣도 보도 못한 일들이 생기는 엔터 뉴스 따위가 잔뜩 보일 터였다. S는 날씨를 훑어보고 뉴스를 클릭했다.
그런 S에게 날아온 소식들은 온갖 엉킨 정치 뉴스나, 어디선가 들어본 이름들이 나온 엔터 뉴스도 아니었다. S에게 전해진 소식은 7일 뒤 종말 소식뿐이었다.
S는 잠깐 멍하게 종말 뉴스 기사의 제목을 바라보았다. 이내 S는 컵을 들어 싱크대에 가져다 두며 그 동시에 기사를 클릭했다.
S는 싱크대 앞에 비스듬히 기대서서 뉴스 기사를 읽었다. 기사를 읽으며 한쪽 손으로는 물을 미리 받아두었던 물뿌리개를 들었다. 참혹한 뉴스 기사를 읽으면서도 S는 딱히 표정 변화가 없었다. 아주 희미하게 얼굴을 찌푸리는 것, 그 정도였다.
이런 일이야 과거에도 많았다. 세상이 멸망한다니, 백두산이 폭발한다니, 지구가 사라진다느니 그런 시시한 얘기들. 이런 얘기는 몇 년 전에도 꾸준히 있었다. 2000년의 밀레니엄 버그라던가, 100년 주기로 백두산이 폭발한다거나, 같은.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런 일은 없었다. 밀레니엄 어머 버그는 아무 일도 없이 지나갔고, 100년 주기로 폭발한다던 백두산은 폭발하지 않았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터였다. 아무런 근거도 없이 인류가 7일 뒤에 종말 한다는 건 무슨 소리인지. 확실한 증거가 있다면 모를까, 아무런 근거도 없이 과학자들만의 말을 믿고 인류가 7일 뒤에 종말 한다고 생각하기는 어려웠다.
S는 기사를 다 읽고 폰을 내려놓은 뒤 물뿌리개를 들고 거실로 향했다. 식탁 앞 언저리에만 비치던 햇빛이 어느새 식탁의 절반을 덮었다. S는 거실을 가로질러 거실 창가에 놓인 선반으로 향했다. 원래 작은 책장으로 쓰이던 선반은 어느새 식물 화분들을 올려두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선반 각 층의 위쪽에 조명을 달아두어 낮보다 밤에 더 예뻤다. 하얗게 인테리어된 집에서, 유일하게 부드러운 색으로 빛나고 있기 때문일까.
고요한 집안에 느릿하게 물이 흐르는 소리가 생겨나자 집은 금세 그 소리로 가득 찼다. 맑고 청아한 소리에 마음이 편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말도 안 되는 종말 얘기로 혼잡했던 마음속이 조금 가라앉은 것 같았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임을 알았지만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아니겠지만, 혹시나 맞는다면 못 해본 게 너무 많아서 아쉽겠다는 생각 때문에. 지금이라도 급하게 하고 있어야 정상이 아닐까 싶어서.
딸깍.
맞춰둔 타이머가 제시간이 되었는지 자동으로 조명이 켜졌다. 따스한 빛의 조명이 각각의 식물들을 비췄다. 방금 물을 줘 촉촉해진 잎과 반짝이는 물방울이 퍽 예뻤다. 지금 이 상황에도 세상은 여전히 예쁘구나, 싶었다. 적당히 구름이 있는 하늘은 새파랗게 그림처럼 예뻤다. 한 폭의 그림을 하늘에 가득 채워둔 것 같았다. 언젠가 저런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지.
소파에 앉아 아름다운 하늘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적어도 130살까지는 살고 싶었는데 절반도 못 살았구나. 그래도 혼자 죽는 게 아니니 덜 억울하긴 했다. 정말, 벌써 죽긴 아쉬웠다. 아니, 종말이 올 것이라는 확신은 없었지만, 일단 만약에는 가정하에. S는 자기도 모르게 어느새 종말을 믿고 있었다.
S는 여유롭게 하늘을 바라보며 생각을 하고 싶었지만, 세상은 그런 사소한 여유를 허락해 주지 않았다. 시간이 되었는지 반려묘는 밥을 달라며 시끄럽게 울어대기 시작했다. 오늘은 일찍 일어나서 다행이지, 조금만 더 누워있었다간 저 울음소리에 잠을 깼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S는 일어나 방으로 향해 고양이들에게 밥을 주고, 화장실을 치워 준 뒤, 마지막으로 개에게 사료를 부어주었다. 방으로 들어가는 와중에도 시도 때도 없이 야옹거리던 고양이들은 사료를 부어주자마자 잠잠해졌다. S는 다시 여유를 되찾았다. 집안은 또다시 고요함을 되찾았다.
종말이 온다는 건 어떤 걸까. 이런 이야기야 수도 없이 돌았었으나 이렇게 공식적으로 뉴스에 나온 건 몇 번 없었다. 2000년 밀레니엄 버그 때와 똑같은 상황이 아닌가, 싶었다. 물론 다른 거라면 지금은 인류가 아예 종말 한다는 것이고. 하지만 밀레니엄 버그 때와 동일한 것은, 종말 한다는 '확신' 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실감이 안 나는 일을 어떻게 해야 확신이 생길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인류 종말은 뉴스 기사를 읽어도 확실하다 싶은 증거는 없었다. 갑자기 모든 과학자들이 깨달았을 뿐. 이래서 종말이라는 건가, 싶었다. 결코 평범할 리 없고, 인간이 범접할 수 없는 부분이니까.
억울하다. 그래, 확실히 억울했다. 살면서 정말 깊게 생각나는 나쁜 짓을 한 적도 없었고, 그렇다고 마냥 착하게 산 것만은 아니지만 이렇게 갑작스러운 종말을 맞이할 만큼 나쁘게 산 건 아니었다. 나름 자기 할 일은 하고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며 살아왔고, '보통'의 범주에는 늘 속해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왜, 나에게. 사람들이 누누이 말하던 운명이라는 게 이런 건가 싶기도 했다. 돈 많은 집안에 태어나 공부도 잘하고 예쁘고, 성공한 삶을 산 사람도 있는 반면 아무것도 가지지 않고 태어난 사람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행운과 불행의 갈림길이 있는 사람도 있고, 불행이라는 길밖에 없는 사람도 있는 것이었다.
그래도 S는 자신이 마냥 불행의 길에만 서있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이때까지 행운이던 길이 갑자기 불행으로 바뀐 것뿐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