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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이령 Oct 21. 2022

산타할아버지의 배송 실수

 장거리 배송은 왜 못 와요?

내가 가장 사랑하는 계절 겨울. 나는 어린 시절부터 12월을 정말 좋아했다. 코를 아리게 하는 겨울의 냄새가 좋았고,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려 퍼지는 거리가 좋았다. 그리고 가장 좋았던 건 12월에만 온다는 산타할아버지였다. 나는 무려 13살 때까지 산타할아버지의 존재를 믿었다. 순진한 초등학생 딸을 위해 산타의 진실을 함구했던 부모님은 매년 겨울이면 집에 트리를 설치했고, 크리스마스 때마다 트리 밑에 선물을 놓아두었다. 덕분에 나의 상상의 호수에서는 겨울마다 크리스마스 파티가 성대하게 열렸고, 산타할아버지가 1순위 셀럽으로 초청되고는 하였다. 그러나 동심은 영원할 수 없는 법, 13살의 겨울날 일어난 한 사건으로 인해 나는 산타할아버지와의 영원한 이별을 맞이하게 되었다. 




여느 때보다 더 추웠던 13살의 겨울날, 나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외사촌 동생을 보기 위해 부모님과 함께 천안 이모집으로 향했다. 동그란 눈을 연신 굴리며 사람들을 바라보는 아기의 모습은 너무나도 귀여웠고, 나와 동생은 아기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엄마~ 아기 보면서 이모네서 며칠 더 있으면 안 돼요?"

"안돼, 엄마랑 아빠는 내일 출근해야 해"


엄마의 매몰 찬 거절에 시무룩해진 우리 자매를 보고 이모는 웃으면서 말했다.


"얘들아 그럼 너희만이라도 이모집에서 아기랑 놀다 갈래?"

"우와~ 네, 좋아요!"


그렇게 우리 자매는 부모님 없이 이모집에서 1주일을 더 머물게 되었다. 이모집에 머무르는 동안 나는 인간 모빌을 자처하여 아기 앞에서 인형극을 해 보였고, 아기는 내가 움직이는대로 눈을 대굴대굴 굴렸다. 그리고 한 번씩 빵빵한 볼을 들어 올리며 웃어 보이기도 했는데, 그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행복감에 사로잡혔다. 

이모집에서 머무른 지 4일째 되던 날, 나의 상상의 호수에 아주 큰 돌풍이 휘몰아쳤다. '내일이 크리스마스이브인데 산타할아버지는 이모집으로 올 수 있나?' 불현듯 산타할아버지가 내가 이모집에 있는 걸 알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 시작한 것이었다. 나는 상상의 호수에 모여있던 산타할아버지에 대한 데이터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1. 산타할아버지는 전 세계에 배달을 함

2. 누가 착한 애인지 나쁜 애인지 실시간으로 모니터링을 함

3. 루돌프 썰매를 타고 초스피드로 선물 배달을 할 수 있음


검토를 끝낸 나는 산타할아버지가 실시간으로 나를 지켜보고 있을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산타할아버지가 이모집으로 선물을 가지고 오겠지? 걱정 안 해도 되겠다!' 


그리고 대망의 크리스마스이브 날 저녁. 잠자리에 들기 위해 이불을 펴고 누운 나는 두근거리는 심장을 부여잡으며 산타할아버지가 오는 상상을 하기 시작했다. '이모집 트리 밑에 선물을 두려나? 아니면 내 머리맡에 선물을 두려나?', '이번 선물은 뭘까? 내가 가지고 싶어 했던 바이올린 장난감일까?', '산타할아버지가 원래 우리 집으로 잘 못 가면 어떡하지?' 별의별 상상을 다 하던 나는 어느새 나도 모르게 까무룩 잠이 들게 되었다. 


크리스마스 당일 아침에 잠에서 깬 나는 머리맡과 트리 주변을 샅샅이 뒤졌다.


"없어.. 왜 없지?"


산타할아버지의 선물이 그 어느 곳에도 놓여있지 않았다. '혹시? 산타할아버지가 배송 실수를 한 걸까?'싶어 나는 아침밥을 먹자마자 부리나케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산타할아버지가 선물 두고 갔어요?"

"응~ 선물 집에 있어"

"잘 챙겨주세요, 집에 가서 볼게요!"


'역시! 산타할아버지가 배송 실수를 한 거였어, 선물을 안 줬을 리가 없지'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그날 저녁 나는 들어서는 안 될 이야기를 우연히 듣고야 말았다. 이모는 내가 자고 있다고 생각을 했는지 거실에서 엄마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이령이는 아직도 산타를 믿어? 6학년인데 뭐 문제 있는 거 아냐?"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크나큰 충격에 빠지게 되었다. 산타할아버지가 없다는 사실에 1차 충격, 내가 어디가 좀 모자란 아이인가 싶어 2차 충격. 충격이 컸던 나는 내가 들었던 이모의 전화통화가 혹시 꿈은 아녔을까? 하는 상상을 해보기도 했지만, 그것은 안타깝게도 꿈이 아닌 명백한 현실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나에게 엄마는 산타할아버지의 선물을 건넸다. 선물은 13살이 쓰기에는 조금 유치해 보이는 곰돌이 머리띠였다. 나는 엄마에게 산타할아버지의 진실에 대해 아는 척을 했다. 


"이거 엄마가 사준 거죠? 다 알아요. 내년에는 저도 중학생이 되니깐, 이제 선물 안 사주셔도 돼요"


나는 엄마에게 모자란 아이로 보이고 싶지 않았기에, 사실은 산타가 없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선물을 받고 싶어서 그동안 모른 척했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했다. 상상의 호수에는 폭우가 내리고 돌풍이 불고 있었지만, 나는 겉으로 태연한 척 어른스러운 척 연기를 했다.


그렇게 1년이 지나 다음 해 크리스마스 날 아침이 되었다. 나는 누구보다도 일찍 일어나 트리 앞으로 향했다.

역시나 트리 밑에는 선물이 없었다. 부모님이 더 이상 선물을 준비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내가 상상했던 대로 동생의 선물도 없었다. 나로 인해 동생까지 선물을 받지 못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상상을 했었는데, 그것이 진짜 현실이 되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14살의 나는 더 이상 상상만 하던 어린아이가 아니었다. 상상이 현실이 되었을 때를 대비해 두었던 것이었다. 나는 미리 사두었던 다이어리를 핑크색 도화지로 포장해 트리 밑에 놓아두었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침대로 돌아와 자는 척을 했다. 30분 정도 지났을까, 동생이 일어나 방 밖으로 향하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슬쩍 일어나 동생을 따라 나갔다. 


"와 선물이다!"

나는 선물을 들어 올리며 소리쳤다. 동생이 내 목소리를 듣고 눈이 휘둥그레져서 트리 밑을 살펴보았다.


"히잉.. 내 선물은 왜 없지? 언니가 들고 있는 거 내 거 아니야? 언니는 중학생이니깐 이제 어린이 아니잖아!"

"엇? 그러고 보니 여기 선물에 이름이 쓰여있네? 이거 너 꺼인가보다"


그렇다 내가 선물 포장지에 미리 동생 이름을 써두었던 것이었다. 동생은 신이 나서 선물포장을 뜯기 시작했다.


"이거 내가 가지고 싶어 했던 다이어리인데, 산타할아버지 최고다!"

"아~ 좋겠다, 진짜 부럽다. 그 선물 언니 주면 안 돼?"

"안돼, 이건 산타할아버지가 나 준거야!"


신이 난 동생은 다이어리를 들고 방방 뛰어다니기 시작했고,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왠지 가슴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컴퓨터도 인터넷도 없던 시절이었기에 산타할아버지 이야기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 질 뿐이었다. 그랬기에 나의 동심도 오래도록 지켜질 수 있었던 거겠지. 14살의 어린 산타가 지켜 준 동생의 동심은 안타깝게도 1년을 채 가지 못했다. 인터넷이 발달한 요즘은 산타의 존재를 믿는 어린이가 정말 적다고 한다. 동심을 지켜주기 어려워진 세상에 나는 왠지 모를 씁쓸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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