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산 Mar 07. 2022

20살에 대학을 자퇴한 이유

19살은 진로를 선택하기에 너무 어리다

20살이 되던 첫날이 기억난다. 친구들과 함께 1월 1일 0시가 되자마자 편의점에서 술을 샀다. 편의점에서 주민등록증을 자랑스레 내밀었던 순간이 아직도 기억난다. 사든 술들을 봉지에 담아 친구네 집으로 갔다. 우리는 사 온 술들을 다 비우지도 못하고 새벽 내내 카드 게임을 했다. 날밤을 새고선 새벽에는 해돋이를 보러 근처 언덕을 올랐다. 그렇게 설레는 일만 가득할 줄 알고 시작했던 그 한 해가 내게는 꽤나 녹록지 않았다. 


여느 10대들이 그렇듯 나도 20살이 되면 인생이 급변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인생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고달파졌다. 


19살의 나는 어쭙잖은 4년제 대학에 가는 것보다는 괜찮은 2년제 대학을 들어가 빨리 취직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집의 사정을 고려한 선택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중학생 때부터 할아버지께는 자주 '대학 졸업하고 취직해서 돈을 벌어야지'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건 아마 돌려서 표현하시는 최대한의 축객령이었을 것이다. 내가 적어도 22살에는 어머니를 모시고 집을 나갈 줄 할아버지께는 죄송한 일이지만 나는 지금까지도 외조부님 댁에 신세를 지고 있다. (그리고 그 소리는 지금도 듣는다.) 


꿈꾸던 대학 생활이 시작됐다. OT도 가고 MT도 갔다. 처음에는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는 것이 꽤 즐겁기도 했다. 다 같이 함께하는 술자리도 나름 재밌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지쳤다. 


문제는 여러 가지였다. 우선 학사 과정이었다. 내 마음대로 시간표를 짤 수 있는 건 4년제의 특권이다. 전문대학에서는 고등학교와 마찬가지로 월요일서부터 금요일까지, 아침 9시부터 오후 5시까지의 시간표가 그대로 짜여 나온다. 게다가 매일 똑같은 친구들을 봐야 하니 정말로 고등학교와 다를 바가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전공이 나의 적성과는 정반대였다. 반복 작업을 제일 싫어하고, 철두철미하기보다는 임기응변에 강하고, 안정성보다는 변화를 추구하는 내게 '세무회계'는 너무나 고된 작업이었다. 가만히 앉아서 계산기를 두드리는 시간이 많았고 좀이 쑤셔 견딜 수가 없었다. 


그다음은 교통이었다. 출퇴근 시간대의 만원 전철(2호선, 3호선)을 타고 2시간을 가야 학교에 도착할 수 있었다. 같은 서울에 있는데도 이동 시간이 그만큼이나 소요됐고, 그걸 주 5일간 해야 했다. 


학교 친구들과도 성향이 맞지 않았다. 불화가 있던 것도 아니고 나름 함께 다니던 무리도 있었는데 대화를 오래 하다 보면 피곤하게 느껴질 때가 많았다. 학교에서 매 시간 함께 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 이상으로 친해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친구들의 잘못은 없다지만 지금은 그들의 이름도 기억하지 못하고, 그들에게 바꾼 번호를 알려주지도 않았다. 


어쩌면 이게 다 핑계일지도 모르겠다. 가장 큰 문제는 여러 가지 요소로 무너진 내 정신 상태였다. 나는 5월에 학교 갈 마음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중간고사 이후였다. 전공 공부를 더는 하고 싶지도 않았고 그냥 딱 죽고 싶었다. 그래서 가족들에게는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겠다고 말해놓고선 학교를 나가지 않았다.


돌이켜 보면 내가 그때 필요했던 것은 휴식이었던 것 같다. 나는 고등학교 3년 내내 지나치게 피로해져 있었고 수능이 끝나자마자서부터 입학 전까지는 레스토랑 아르바이트를 했다. 당장 돈을 벌어서 집을 나가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렸지만 사실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나는 아주 어릴 적부터 꿈이 없었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했다. 그래서 우선은 '공무원 시험'이라는 가장 쉬운 도피처로 도피한 것이다. 


지금이야 내가 가만히 앉아서 하는 반복 작업에 흥미가 없는 것을 알지만(한 마디로 공무원에는 소질도 재능도 없다는 것을 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는지조차 몰랐다. 가족들의 반대에 부딪혔지만 나 스스로는 '이번에 떨어지면 그냥 자살해줄게%%' 하는 심정으로 외친 거였다. 실제로 그때 일기를 보면 그냥 죽겠다는 소리밖에 없다. 내가 보기에 나는 공부할 마음보다는 죽겠다는 마음이 더 컸다. 


그래도 노력을 안 할 수는 없어서 나름 인터넷 강의도 듣고 한 달 간은 실강도 들어봤다. 그때 내 아르바이트 비용을 다 까먹었다. 공무원 준비는 한 3~4달 했던 것 같다. 당연히 그만뒀다. 내가 공무원이 되고 싶지 않았는데 공부가 됐을 리가. 그때가 한 9월~10월쯤 됐던 것 같다.


이후로 21살의 5월까지는 기억에 별로 없다. 집에 가만히 있기에 눈치가 보여서 컴퓨터 활용 능력 검정 시험 2급을 땄던 것 같긴 하다. 책도 많이 읽었고…… 하여튼 이것저것 해보겠다고 설쳤는데 제대로 한 건 없을 거다. 


그러다가는 21살의 6월이었나 7월에는 서울시 대학생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건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출퇴근하는 아르바이트였다. 주민센터 작은 도서관에서 책 정리를 하고 어르신들께 전화 돌리고, 동아리 활동받고 하는 잡일을 맡아서 했다. 그리고 그때 돌연 대학에 다시 가겠다고 마음을 먹는다. 그러면서 정신과도 다니기 시작하는데, 이건 다음 글에서 쓰는 게 좋겠다. 


이전 02화 3년간 매일 일기 쓴 후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