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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산 Oct 06. 2023

왜 세상은 나한테만 가혹한 것 같지

그럴 리가 없는데

살다 보면 세상이 나한테만 가혹하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지금 좀 그렇다. 난 가끔 내 불행에 취해 드라마 퀸이 되곤 한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내가 유달리 불행할 리가 없다는 것을 아는데……. 내가 뭐 캔디캔디의 주인공이 될 리가 없다는 것을 아는데도(되고 싶지도 않다)……. 내게는 내 불행만이 입체 4D 서라운드 아이맥스 돌비시네마로 보여서 그런 것 같다. 이상하다. 사람이 자기중심적으로만 생각하는 과학적인 이유를 책에서 봤던 것 같은데 굳이 찾기 귀찮다.


아무튼…… 여긴 내 브런치니까 오늘따라 너무 아픈 내 불행에 대해 말해보고자 한다.

하나. 나는 가마솥 여자다. 뭐냐 하면 남들이 1년이면 마음이 식는 것을 나는 2년이고 3년이고 10년이고 좋아해서 탈이 난다. 난…… 혼자 정말 오래도록 끓어서……. 다른 사람들이랑 같이 발을 못 맞추겠다. 난 이제야 막 사랑한다고 얘기하고 싶은데 상대는 이미 내가 안중에도 없다. 세상에 나 같은 사람 어디 더 없나. 내 친구들? 당연히 걔네는 포함인데 걔네 말고 더 없을까……. 이거 내 욕심인가? 남들은 한 명 사귀기도 어렵다는 오래된 친구들을 많이 가지고 있으면서?


둘……. 돈이 없다……. 아 너무 많이 말해서 지친다. 나는 내 결핍을 잘 아는 편인데 하나는 아버지가 없음이고 둘은 돈이 없음이다. 오늘은 엄마가 슬리퍼를 주문한 것을 보고 울 뻔했다……. 나는 얼마 전에 여행하다가 운동화에 구멍이 나서 일주일 내내 구멍 난 운동화를 신었고 그 운동화 마저 7년은 넘은 거였고 그것도 내가 사고 싶어서 산 게 아니고 엄마가 어디 세일하는 걸 사 온 거였나 그랬다…… 나는 내가 매장에 가서 신발을 고른지 최소 10년은 넘은 것 같다. 나한테는 내 신발이 없다. 나도 옷 사 입는 취미가 가지고 싶은데 일 년에 한 번 옷 하나 사는 것도 손이 떨려서 못 하겠다. 화장품도 못 사겠고 미용실도 못 가겠고 그냥 내 성격에 나도 화가 난다… 이러면서 여행은 어떻게 갔대? 이거 가짜 가난함이냐? 아니 나는 마음이 가난해서 그렇다… 가난한 것도 객관적으로 맞긴 한데(기초생활수급자는 하위 3%랬나 그랬으니까 당연함) 돈 쓰는 법을 정말 모르겠어… 그러면서 남이 돈 쓰는 거 보면 가끔 서러워서 눈물이 줄줄 난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엄마가 슬리퍼 시키는 게 왜 슬퍼? 당연히 필요하면 사야지… 이거 정신병이다…


그니까 나는 아빠가 나 10살 때 내 침대를 사주겠다는 거짓말을 했던 걸 아직도 기억하면서…… 나한테 침대가 26살 먹어서까지 없다는 사실에 슬퍼하면서 사실 침대를 살 생각이 없다. 현실적으로…… 진짜 못 살 건 아니거든? 그렇게 한이 맺혔으면 접이식 침대라도 좁은 방에 구겨 넣으면 되는데 그러질 않는다. 못 사는 핑계를 댄다. ‘여기 옥탑인데 좁은 계단에 침대를 어떻게 들고 올라와’ ‘침대 놓으면 방이 꽉 차는데 어떻게 들여‘ ‘이제 바닥에서 자는 게 더 편하다‘ 이런 식으로 정신승리를 하면서 꾸역꾸역 침대를 안 산다. 그리고 침대 살 돈이 너무너무너무 아깝다… 나도 내 마음을 모르겠다…. 나는 진짜 답이 없다…


명절 증후군이 오래가는 편이라 그런가 아직까지 멘탈 회복이 안 된다. 막… 아무리 어둠 없는 집안이 없다지만… 나는 진짜 어둠덩어리에서 태어난 게 아닌가? 인생이 너무 가혹한 거 아닌가? 하고…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되나 모르겠다… 이런 생각해봐야 좋을 게 없는데 그냥 그만하자.


그게 그니까 마음대로 되냐고??? 됐으면 내가 부처가 됐지 왜 브런치에 신세한탄 하고 있겠냐고?

추석 때 슬펐던 얘기나 해야겠다. 친할머니가 치매 셔서 같은 얘기 또 하시고 또 하시고 나는 일 년에 두 번 보는 아빠 봐야 하고 이런 건 이제 눈물거리도 안 되고(거짓말이다 맨날 운다) 이상하게 눈물이 나려고 해서 미칠 뻔했던 순간 top2……

엄마랑 아빠랑 지하철 타고 돌아가는 길에…… 아빠가 ‘장인어른 장모님은 잘 계셔?’ 하면서 ‘장인어른이 (내 본명)이 되게 예뻐했잖아’ … 할 때.

그랬더니 엄마가 ‘아빠가 예전에도 자식 중에 날 제일 좋아했어.’ ‘그래서 (내 본명)이 제일 예뻐하셨지.‘ … 했을 때.

난 그 말이 너무 창피했다…

왜 그걸 엄마아빠만 알고 있었냐고?

나한테도 알려줬어야지??

나는 그 사실을 불과 몇 년 전에야 깨달았단 말이다!!!

할아버지가 어릴 때 날 제일 예뻐하셨던 건…

내가 특별히 깜찍하거나 사랑스럽거나 예쁜 애였던 게 아니라… (어릴 때는 이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진짜 쪽팔린다)

그냥 할아버지가 울 엄마를 젤 좋아해서 나까지 덤으로 예뻐하던 거였단 것을!!! 나는 솔직히 고딩 때도 몰랐고 이십 대 초반에서야 깨달은 것 같은데!!!

그전에는 아~~무 것도 모르고 ‘흑흑 할아버지는 내가 싫어지셨나 봐 내가 얹혀살아서 그런가 봐 내가 우리 아빠 딸이라서 그런가 봐‘ 했는데…

싫어진 게 아니라 애초에 나는 그다지 관심의 대상도 아니었다…… 나는 할아버지한테 뭔가… 하나의 개체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듯……

그냥 ’내가 예뻐했던 셋째 딸이 웬 놈팡이랑 뭘 낳았는데 어릴 땐 셋째 딸 닮은 거 같아서 좀 예뻐했고 이제는 내 집에 얹혀사는 중임 빨리 나갔으면 좋겠다‘ 이 정도로 날 생각하고 계신 듯… 근데 나는 이걸 몇 년 전에 혼자 깨닫고 유레카,를 외쳤는데 이걸 나 빼고 다 알고 있었다니 너무 창피했다…

나 혼자서만 할아버지를 너무 좋아했다… 그리고 우리 아빠 대신에 할아버지를 아빠처럼 대하고 싶다고도 생각했는데…… 할아버지는 울 엄마의 아빠이기 때문에 내 아빠가 될 수는 없다. 그게 새삼 슬프다……. 그럼 이 세상에 내 아버지 역할을 해줄 사람은 어디 있는 거지… 없겠지…… 없는 게 당연한데 그게 왜 매번 너무 아프지……


그리고 또 두 번째로 눈물 날 뻔했던 건…… 뭐였더라. 친할머니가 아빠한테 효도하라 했을 때?

아빠가 날 버렸는데 어떻게 효도하나 싶다……

난 할 생각 만만이었는데…… 한 열다섯 살 때까지 인생 목표: 효도 이게 끝이었던 거 같은데…… 아닌가…… 이젠 그때가 잘 기억도 안 난다.

아니 근데 이거 말고 진짜 울 뻔했던 거 있었는데.

아빠가 나한테 또 공수표 뿌렸나?

뭐…… 차 사겠다고 했었나?

아빠……

침대부터 사줘……

아빠 나 10살 때부터 침대 사준다고 했잖아… 겨울엔 스키장 데려다준다고 했고, 해외여행 보내다 준다고 했고(근데 이미 내가 혼자 다녀왔다), 원하면 유학도 보내준다고 했고, 호텔 뷔페 데려다준다고 했고, 나 코수술도 시켜준다고 했잖아???

하지만 아빠는 지금 엄마랑 내 앞으로도 나오는 주거지원비까지 혼자 다 받고 있잖아???

아빠 일 년에 두 번 보는 나를 딸로 생각하긴 해? 내 생각을 하긴 해? 내 번호는 있어? 내가 몇 살인지는 알아? 밖에서 나 보면 알아볼 수는 있어?

나는 진짜 아빠 노릇해줄 아빠가 필요하다고~~~

설에 친할머니댁에서 잠깐 보는 아빠 말고~~! 나 집에 늦게 들어갈 때 마중 나오고 같이 저녁 먹고 남친 있냐고 물어보고 가끔 치킨도 사 오고 전등도 갈아주고 같이 야구도 보러 가고…… 하아…… 말할수록 비참하지 왜……

난 정상성이란 정상성은 다 깨부수고 싶어 하지만 사실 거기에 누구보다 집착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난 잘못 흑화 하면 남자랑 애 둘 낳고 사는 게 진짜 행복인 줄 알고 살 것 같다… 그러다 내 남편도 도박에 미쳐서 나 버리고 가고 난 엄마 집에서 애 둘 키우면서 살게 될지도… 끔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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