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이란
최근 외할아버지께서 신우암 3기 진단을 받으셨다. 한쪽 방광을 완전히 제거하는 수술을 받고 항암치료를 시작했다. 지금도 병원에 입원 중이시다. 의사는 금요일에 중요한 이야기를 전해야 한다며 보호자를 호출했다. (여기서부터 불길하다. 외할아버지나 외할머니께 직접 못할 말이 대체 뭐지?) 엄마네 형제는 2남 2녀다. 그중에서 첫째 아들의 아내이자 현재 무직이신 외숙모께서 찾아가 듣기로 정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지. 의사가 직계 가족이 왔으면 한다며 외숙모를 돌려보낸 거다. (이게 정말로 불길하다.) 따라서 셋째 딸인 우리 엄마가 조금 전인 오후 11시에 외숙모로부터 온 전화를 받았다. 아무래도 아가씨가 같이 가봐야 할 것 같다면서.
덕분에 우리 엄마가 아주 울상이다. 우리 엄마는 셋째 딸이라 평생 이런 중대 사안을 책임질 일이 없었을 텐데……. 비록 우리 엄마가 유일하게 외조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이긴 하지만. 솔직히 말이 모시고 사는 거지 엄마랑 내가 외조부님 댁에 얹혀사는 거라.
엄마는 왜 하필 이걸 내가 들어야 하냐고 한참 한탄했다. 자기는 분명 듣자마자 울어버릴 거란다. 내 말이. 그럴 것 같다. 다들 우리 엄마 성격 모르나? 이걸 우리 엄마한테 맡겨도 된다고 생각하나? 우리 엄마를 걱정하는 건 나뿐인가? 아닌 밤중에 우리 엄마한테 이런 심란한 소식을 전하면 우리 엄마가 어떻게 반응할지 모르는 건가? 우리 엄마 울고 불고 난리거든? 우리 엄마를 좀 신경 쓰면 안 되나?! 마음 같아서는 나도 따라가고 싶은데 단칼에 거절당했다. 내가 이런 데에 간섭하기엔 아직 어린 모양이다. 공교롭게도 그날 아르바이트 첫 출근이기도 하다. (집 근처 대형학원에 주 5일 25시간 일하게 됐다.)
엄마가 요즘 계속 풀 죽어 있다. 너무. 너무. 슬프다. 외할아버지께서 아프신 것도 슬프지만. 그건 왠지 실감이 잘 나지 않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건강하셨는데. 평소 같으시다고 생각했는데. 근데 엄마 어깨는 계속 축 쳐져있다. 엄마의 슬픔을 내가 덜어줄 수가 없다. 엄마의 슬픔을 온전히 이해할 수도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냥 애가 탄다.
아니 솔직히 나는 그렇게 괴롭거나 슬픈 것 같지도 않다. 일상생활을 못할 정도도 아니고 웃긴 거 보면 웃고 화나는 거 보면 화낸다. 밥도 잘 먹는다. 거기에 죄책감을 느낀다. 가족이 아픈데 이렇게 가만히 있어도 되나? 나는 병원비를 보태지도 않았고 간병을 하는 것도 아니고 제대로 슬퍼하지도 않는다. 종종 엄마가 슬퍼하는 것을 보면서 나도 아빠가 있었으면 아빠가 아팠을 때 이렇게 슬펐을까 생각한다. 할아버지가 아프다는 건 실감 나지도 않는 주제에 내가 형편없는 사람처럼 느껴지는 일이 괴롭다.
나는 지금 아주 아주 건강하고 딱히 죽고 싶지도 않고 되도록 오래오래 살고 싶지만 그래도 나보다는 할아버지 같은 분이 더 사는 게 좋아 보인다. 날 사랑하는 사람은 엄마밖에 없는데 할아버지를 사랑하는 사람은 너무너무 많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엄마밖에 없는데 할아버지가 사랑하는 사람은 너무너무 많다. 내가 죽으면 엄마가 슬퍼하겠지만 엄마는 나 말고도 사랑하는 사람이 많으니까 이겨낼 수 있을 거다. 그럼 역시 나보다는 할아버지가 살아계신 게 더 낫지 않나……. 딱히 누구도 이런 거래를 하자고 한 적은 없지만……. 이게 다 부질없는 생각이지만……. 아무튼 할아버지께서 오래 사셨으면 좋겠다고.
금요일에 분명 엄청나게 안 좋은 소식을 들을 것 같은데 어떡하지. 난 어쩌면 좋지? 출근도 하기 싫고 안 좋은 소식도 듣기 싫다. 하지만 어차피 들어야 하는 거라면 그냥 빨리 듣고 싶다. 의사가 왜 이렇게 질질 끄는지도 모르겠고 왜 직계가족만 되는 건지도 모르겠고 왜 거기 엄마가 가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다 마음에 안 든다.
최악의 상상: 시한부입니다.. 연명치료를 계속하거나 아니면 집에서 평소처럼 생활하시거나 해야 합니다..
최고의 상상: 암이 완치되었습니다 100세까지 거뜬하시겠네요 내일 퇴원하세요(겠냐?)
이거 뭘 어떻게 생각해도 최악의 상상만 계속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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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썼는데 울엄마 지금 깨서 티비 본다;; 미치겠다 별들아 우리 엄마 못 잔다 낼 출근해야 되는데 어떡하냐 누가 좀 책임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