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세우스
반지하의 겨울은 춥다. 바닥에서부터 올라오는 냉기는 전기장판이나 에어캡만으로는 막을 수 없다. 냉기는 살이 아니라 뼈를 타고 온몸을 흐르는데 그럴 때면 내 두개골의 형태를 눈을 감고도 그릴 수 있을 정도다. 그렇지만 더더욱 살얼음 같은 건 가족들의 대화다. 나는 온몸을 이불로 둘둘 말고는 부모님의 대화를 엿듣는다. 사실 단칸방에서 엿듣는다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 내가 필사적으로 추위의 고통에나 집중할 뿐이다.
“이혼해.”
아버지가 말했다. 어머니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버지가 집을 나간 뒤로 어머니는 단숨에 10년은 더 늙은 듯이 보였다.
“소선이는? 나는 그런 생각 한 번도 안 했을 것 같아?”
“소선이도 이걸 원할 거야.”
“그건 그냥 애가 하는 소리지. 아빠 없는 애가 어디 흔해? 당신 이거 무책임한 거야. 언제는 금방 돌아오겠다며.”
궁지에 몰린 아버지가 내 눈치를 봤다. 나는 보다못해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그만, 둘 다 그만해. 내가 아빠랑 얘기해볼게.“
“어우, 소선아, 됐어. 엄마가 얘기할게.”
“아니. 나도 소선이랑 얘기해보고 싶어.”
나는 롱패딩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머니는 당장이라도 나에게 한 마디 해주고 싶은 얼굴이었지만, 아버지 때문에 차마 그러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어머니가 아버지의 눈치를 보는 것이 이해가 되진 않았으나 잘된 일이었다. 아버지는 황급히 내 뒤를 따랐다. 그는 어색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연기력이 영 황이었다.
우리는 단란한 부녀 사이처럼 좁은 골목을 나란히 걸었다. 집 앞 골목에는 가로등조차 없어 빛이 드는 곳까지 한참을 걸어 올라가야 했다.
“야, 소선아.”
“조용히 해. 사람 들어.”
이 동네는 방음이 엉망이라 골목에서 떠드는 말이 앞집 뒷집 옆집에까지 다 들렸다. 당장 어제만 해도 옆집 애가 장난감을 제자리에 두지 않아 혼나는 소릴 들었다.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이은원은 이런 환경에서 살아본 적 없는 모양이었다. 나는 눈치 없이 구는 이은원에게 일일이 가난한 삶에 대해 일러주는 것이 피로했다.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에 만약이라도 듣는 귀가 있으면 안 됐다. 기상천외한 초현상에 관한 이야기니까 말이다.
나는 한적한 놀이터에까지 와서야 안심했다. 이곳에도 가끔 술 취한 무리가 오가고는 했지만, 다행히 오늘은 없는 모양이었다. 비좁은 놀이터에는 구색을 갖출 정도의 기구밖에는 없었다. 페인트칠이 벗겨진 철봉이나 바닥 부분에 홈이 패인 그네가 우리를 반겨주었다. 내가 구석에 있는 벤치에 앉자마자 아버지가 쪼르르 달려왔다.
아버지는, 아니, 정확히 아버지의 거죽을 쓴 그가 말했다.
“소선아. 너희 어머니 엄청 완강하신데.”
그의 말이 옳다. 계획대로 흘러가는 것이 없었다. 나는 어머니가 이혼하자는 말을 쌍수 들고 환영할 줄 알았다. 어머니가 아버지 앞에서도 내 핑계를 댈 줄은 몰랐다. 그건 정말로 핑계에 불과했다. 나는 어머니에게 수십 번도 더 넘게 이혼하라는 말을 꺼냈다. 내겐 아버지가 필요 없다고. 가족은 어머니뿐이면 족하다고. 어머니는 내가 하는 말을 여태껏 믿지 않은 것일까? 내가 고작 열여덟 살이라?
그럴 리가. 어머니도 내 진심은 알 것이다. 어머니는 단지 이혼하고 싶지 않을 뿐이다. 5년 간 따로 지내고 3년간 소식이 끊겼어도 남편이라고 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아니, 오히려 5년간 얼굴을 보지 않으면서 더 애틋해진 것 같았다. 어머니와 아버지 사이엔 내가 모르는 세월이 있다. 어머니는 어쩌면 나와 아버지 중에서도 아버지를 택할 위인이다. 나는 그 둘 사이에 낀 이물질에 불과하다.
이런 사실을 깨달을 때마다 나는 내 아버지처럼 굴어버리고 싶은 충동을 내리누른다. 나도 아버지처럼 어머니의 돈을 훔쳐다가 경마장으로 달려가고 싶다. 패악을 부리며 살림살이를 다 망쳐놓고 싶다. 그러고도 엄마가 날 버리지 않는지 확인하고 싶다. 엄마가 적어도 아버지만큼은 나를 사랑하는지 알아보고 싶다. 엄마가 아버지를 내치지 못하는 이유가 타인을 내치지 못하는 성정이라서인 건지 혹은 아버지를 나보다 사랑해서인 건지 아버지가 된 나를 어떻게 대하는지 살피면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엄마가 나를 버리지 않는다면 엄마는 아버지를 버리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것일 테니 엄마를 가엾게 여기면 된다. 엄마가 나를 버린다면 엄마의 관용은 단지 아버지 한정이었던 것일 테니 배신감에 몸부림치면 된다. 하지만 상상만으로 후환이 두려워 감히 실행할 수 없었다.
“나라고 이럴 줄 알았겠어.”
내가 크게 상심한 듯 말하자 그는 말을 아꼈다. 남의 집 가정사에 말을 얹기가 꺼려지는 모양이었다. 내 아버지의 몸에 들어가 있으면서 말이다.
“음. 너무 걱정하지 마. 네 말대로라면 어머니께서도 지금 달리 생각하고 계실 거야.”
그럼 만일 엄마가 번복하지 않는다면 내 말은 틀렸다는 건가? 나는 미간을 좁혔지만, 은원에게 짜증을 내고 싶지는 않았다. 입을 다문다. 내가 가만히 있자 그는 쩔쩔매는 것 같았다. 아버지 얼굴로 그런 표정인 것이 이상했다. 내가 어릴 때 봤던 아빠는 이런 사람이 아니었다. 내가 아빠의 말에 우물쭈물하고 있기라도 하면 버럭 소리를 높였다. “넌 등신이냐? 지 애미 닮아가지고. 똑바로 말해야 알아들을 거 아냐.” 우렁우렁한 목소리를 들으면 하려고 했던 말이 더더욱 생각나지 않았다. 나는 늘 아빠가 어려웠지만, 아빠는 단 한 번도 날 어려워한 적 없다. 그런데도 아빠가 날 찾아오지 않았던 것은 참 이상한 일이었다.
“내 입으로 남의 가족 욕하긴 좀 그런데, 너희 아버님 이혼당할 만 하시다며.”
“그래. 오늘 본 게 5년 만이었어. 3년 전부터는 살아있는지 죽어있는지도 몰랐고.“
변명하듯 뱉고 보니 그 말이 참 우스웠다. 여전히 나는 아버지의 영혼이 어디로 갔는지조차 모른다. 낙후된 골목길에는 마땅한 가로등 빛줄기 하나조차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의 영혼이 이곳에 있다면 그를 비추는 빛도 한점 없을 것이다. 동네를 둘러싼 신축 아파트의 위용은 별빛조차 흔적 없이 막아버린다. 은원은 손을 뻗은 자세로 어정쩡하게 내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내게 위로를 건네는 듯했다.
내가 은원의 상황이었다면 그렇게 하지 못했을 것이다. 호들갑을 떨며 엉엉 울거나 내 시체를 확인해보겠다며 장례식장으로 달려나갔을지도 몰랐다. 아니면 이건 꿈이라며 아버지의 몸으로 다시 트럭에 치이려고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은원은 이상할 정도로 차분한 태도였다. 평범한 고등학생이 이런 상황에서 평정을 유지할 수가 있나? 어쩌면 은원은 은원이 아니라 만화에나 나오는 악귀 따위일지도 몰랐다. 그렇지만 은원을 추궁하고 싶지 않았다. 은원의 진실을 알고 싶지도, 알아야 할 의무도 없었다. 내가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이기 때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어린 나이에 죽은 은원을 추모하거나 애도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얼굴만 아는 여자애의 인생사를 들어주기엔 내 살부殺父사건이 더 급했을 뿐이다.
“위로는 고마운데 힘 조절 좀 해라. 등 터지겠어.”
“미안. 너네 아버지 힘 좋으시네.”
그렇게까지 아픈 것도 아니었으나 괜스레 심통을 부렸다. 아빠의 투박한 손은 나로서도 낯설었다. 저 손이 빈정거리듯 내 머리를 치거나 어깨를 누를 때는 있었어도 이렇게 다정한 손길을 받은 건 처음이었다. 아버지의 거죽을 쓰고 그와 전혀 다른 언동을 해대니 적응이 되지 않았다. 노골적으로 표현하자면 생경해서 구토가 치밀었다. 그만하라고 말하고 싶은데 은원이 왜냐고 되물으면 설명할 자신이 없었다. 내가 아빠한테 애정을 받아본 적이 까마득해서 네가 이러면 울 것 같다고? 몇 시간 전에 처음 말 섞은 애한테는 도저히 불가능했다. 더불어 은원은 이런 무거운 가족사를 털어놓기에 적당한 상대도 아닌 것 같았다. 은원은 해맑으나 눈치가 없고 심성이 고우나 이해심이 없다. 왜 이런 철없는 여자애가 우리 가족에 끼어있는지 모를 일이다.
“소선아. 춥지 않아?”
내 입에서는 대답 대신에 하얀색 입김이 뿜어져 나왔다. 은원이 양쪽 입꼬리를 쭉 끌어당겨 웃었다. 또다. 또 본 적 없는 아버지의 표정이다. 울렁임을 참고 대답한다.
“우리 편의점 갈래?”
“그래, 그러자. 집에서 먼 곳이면 괜찮을 것 같아.”
둘 다 저녁을 안 먹은 채로 나왔으니 뭔갈 먹긴 해야 했다. 마침 은원에게는 아버지가 훔친 돈 봉투가 있을 터였다. 주머니에 있는 흰 봉투를 확인해보라고 일러주자 은원은 금세 꼬깃꼬깃한 종이봉투를 찾아냈다. 스마트 뱅킹과 간편 결제의 시대에 왜 현금을 이 만큼이나 들고 다니는지 의아한 표정이었다. 그는 두툼한 봉투를 내게 내밀었다.
“여기.”
“네가 들고 있어. 내가 계산하는 것보다 어른이 계산하는 게 더 자연스럽잖아.”
“너 똑똑하다.”
은원이 히죽 웃었다. 은원은 웃음과 칭찬에 후했다. 자기가 느낀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할 줄 알았다. 잠시 보았을 뿐이지만 그가 매력적인 인물상인 것쯤은 알 수 있었다.
반면에 나는 작은 칭찬에도 대처할 줄 모르는 뻣뻣한 사람이다. 은원은 내게 친한 척 무언가를 묻고 싶은 것 같았지만 나는 꼭 필요한 말이 아니면 하고 싶지 않았다. 은원의 죽음의 진위를 파악하다가 진이 빠지고 싶지도 않았고, 이후에 그것으로 상처받고 싶지도 않았다. 은원의 수많은 친구 중 하나가 되는 건 사양이었다. 이렇게 스쳐 지나간 인연이 한둘도 아니었다.
고등학교에 와서부터는 늘 관계에 방어적으로 굴었던 것 같다. 재개발 구역 근처의 중학교와 뉴타운 근처의 고등학교는 면학 분위기가 크게 달랐다. 피부로 와닿는 생활 수준의 차이라는 게 있었다. 아무리 똑같은 교복을 입어도 나와 그들 사이에는 좁힐 수 없는 격차가 존재했다. 그들의 화제로 오르내리는 아이돌 포토 카드 시세나 팬 사인회 응모 컷, 방학 때 다녀온 해외여행이나 차후 어학연수 계획, 듣고 있는 인터넷 강의 커리큘럼과 학원 커리큘럼 사이의 비교, 요즘 핫한 인스타그램 카페나 팝업스토어, 또 그곳에서 필수 아이템이라는 화장품으로 메이크업을 하고 유행하는 필터와 구도로 찍은 사진, 한창 뜨는 브랜드의 가방, 핸드폰 케이스, 스마트 워치, 하여튼 돈이 안 들어갈 수가 없는 모든 일들. 나는 그중에 단 하나도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멀다 못해 아득해서 나와 같은 세계에 사는 것 같지가 않았다.
내 결핍을 눈치채지 못한 누군가는 내게 말을 걸었다. 단지 인스타그램 계정을 물어보는 말에 없다고 답했더니 다음 대화가 이어지지 않았고, 끝나고 마라탕 먹는데 너도 올래라는 말에는 난 석식 먹어야 해서(석식이 공짜니까)라고 답했더니 또 대화가 끊겼다. 그때의 나는 그들과 한 마디라도 더 섞기 위해 나를 억지로 꾸며낼 수 있었겠으나 그러지 않았다. 그들의 세계에 들어가려 아등바등하고 싶지 않았다. 엄마한테 용돈 더 달라고 조르고 싶지도 않고, 인스타 피드에 내가 얼마나 잘 나가는 사람인지 증명하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점점 고립 되어갔고 때때로 외로웠다.
외로움이 참지 못할 정도가 되면 아무도 듣지 않을 법한 노래를 유튜브에서 찾아 듣거나 아무도 읽지 않을 것 같은 책을 도서관에서 찾아 읽거나 했다. 조회 수가 410회쯤 되는 외국 인디밴드의 노래를 다 듣고서 다시 같은 창에 들어가면 411회로 숫자가 늘어나는 게 기분 좋았다. 내가 살아있다는 게 세상에 어떠한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하지만 기분이 가라앉을 때면 그런 행위도 일절 소용이 없었다. 그저 세상에서 흔적 없이 사라지고 싶기만 했다. 멀쩡히 살다가도 기분이 가라앉을 이유는 지나치게 많았다. 사회 선생이 무심코 ‘야, 여기 부모님 신용 등급 아는 사람? 7등급 아래로는 여기 없을 텐데’로 시작하는 설명을 이어간다거나 학급 토론에서 가난한 사람을 위한 복지를 주제로 이야기할 때 누가 ‘그분들은 집에 티브이도 없을 텐데 그런 지원이 현실적으로 효과가 있을까요’ 한다거나 옆자리 앉은 애가 ‘그 드라마는 왜 그렇게 부자를 나쁘게 얘기하는지 모르겠어. 가난한 애들이 성격 더 안 좋아.’ 한다거나. 나는 그냥 사는 건데도 항상 구걸하며 사는 기분일 때, 버스를 타고 가다가 문득 평생 이렇게 가난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 그런데 그 이야기를 털어놓을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 등등 하여튼 많았다.
어디에도 이해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도서관에 책은 무척 많았지만 내 얘기를 하는 것 같은 책은 전혀 없었고 유튜브에 깔린 게 음악이었지만 나를 위한 노래는 하나도 없었다. 온전히 혼자였다. 앞으로도 영원히 혼자일 것이다.
난 군말 않고 앞장서 20분가량을 걸었다. 은원은 아버지의 보폭에 적응하기가 힘든지 빠르게 걷다가 느리게 걷기를 반복했다. 얼마 가지 않아 은원은 나와 꼭 맞는 속도로 내 옆에서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우리가 들어간 곳은 근방에서 가장 크고 넓은 편의점이었다. 재고를 세던 아르바이트생은 아버지를 힐끗 보더니 ‘어서 오세요’하고 인사했다.
“나 이 시간에 편의점 처음 와.”
은원은 들뜬 기색으로 편의점을 두리번거렸다. 나는 늙은 남자가 늦은 시간에 편의점을 처음 온다는 말이 아르바이트생에게 어떻게 들릴지 걱정했다. 다행히 아르바이트생은 손님이 뭐라고 해도 상관이 없는지 창고로 들어가 버렸다. 내가 2+1 태그가 달린 상품을 위주로 보고 있는 동안 은원은 망설임 없이 바구니에 음식을 쓸어 담다시피 담았다. 거침없는 손길이 영 불안하기만 했다. 과연 가격은 확인하고 담는지 모를 일이었다. 뭐라고 핀잔을 주고 싶었다. 하지만 편의점에서 가격을 운운하는 것만큼 창피한 일도 없겠다 싶었다. 힐끗 은원의 바구니를 살피자 거긴 불곱창에 불닭발에 불닭볶음면까지 있었다.
“야, 속 버리겠다.”
“내가 매운 걸 좋아해서……. 좀 그런가?”
“아빠가 매운 걸 못 먹어서 그래. 우리집 사람들 다 못 먹거든.”
은원은 여간 아쉬운지 입맛을 다시며 바구니에서 음식을 빼냈다. 나는 7,800원짜리 불곱창이 매대로 돌아가는 걸 보고 속으로 안심했다. 고분고분한 은원은 꼭 말 잘 듣는 어린아이 같은 모습이었다. 은원의 주변 친구들이 왜 가만히 있는 은원의 볼을 꼬집어댔는지 조금 알 것 같기도 했다. 나는 어깨를 으쓱이고는 편의점의 주류코너에 시선을 두었다. 수입 맥주를 4캔에 만 원에 묶어 판다는 문구가 눈에 띄었다. 입안이 바싹 말랐다.
“이은원, 너 술 마셔본 적 있어?”
“음, 아니. 없는데.”
“마실래?”
“그, 그래도 돼?”
“야, 목소리 좀 낮춰. 아저씨가 술 마셔도 되냐고 묻는 거, 그거 진짜 이상해.”
어머니의 소주를 한두 번 입에 댄 적은 있어도 그때마다 한 모금조차 제대로 넘기지 못했다. 엄마는 네가 아직 어려 그렇다고 했지만, 나는 성인이 되기까지 남은 고작 1년 남짓 동안 어떤 극적인 변화를 겪기에 갑자기 술이 달아지는지는 알 수 없었다. 몇 년이 지나도 술은 내 입에 쓸 것 같다. 그렇지만 눈앞에 보이는 번쩍이는 갈색 유리병은 좀 다를지도 몰랐다. 맥주는 보리를 발효시킨 음료라던데, 구수한 보리가 써봤자 얼마나 쓰겠나 싶었다. 더군다나 아버지의 머리를 박살 낸 날보다 술을 마시기에 더 적절한 날이 있을까? 내 마음은 이미 굳힌 뒤였다. 은원 또한 잠시 망설였을 뿐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나보다도 신중하게 맥주를 골랐다.
둘 다 계산대에 섰을 때는 제법 떨렸다. 나야 긴가민가하겠지만 적어도 아빠는 주민등록증 검사를 할 군번이 아니었다. 정리되지 않은 수염이나 자글자글한 눈주름은 대충 봐도 40살 아래로는 봐줄 수가 없었다. 그런데도 속에 든 것이 18살이니 하는 수 없이 몸에 힘이 들어갔다. 심지어 나는 매번 엄마 심부름 때문에 소주를 사는 데도 그랬다. 우리 둘 다 고약한 모범생 기질이 있는 게 틀림없었다.
“2만 5천 6백 원이요.”
아르바이트생은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가격을 읊었다. 나는 그 가격이 터무니없이 비싸다고 생각했으나 은원의 앞에서 태연한 척 굴었다. 아무렇지 않게 종이컵을 챙겨 편의점 내에 있는 작은 테이블과 의자로 향했다. 직원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곧 은원이 맥주를 들고 오더니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와, 진짜 떨려. 잡혀가는 줄 알았다.”
“나도.”
금기를 어겼다는 것만으로 묘한 고양감에 휩싸였다. 우리는 키득거리며 시선을 교환했다. 은원을 만나고서부터 처음으로 우리가 같은 것을 공유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으레 첫 술자리는 부모와 가진다고들 하는데, 나는 은원이기도 아버지기도 한 그와 처음으로 술을 마시는 셈이니 그 말대로였다.
더는 감상에 젖기 싫어서 얼른 맥주캔을 땄다. 탄산이 새어나가는 소리는 콜라랑 비슷했다. 눈을 딱 감고 한 입 마시자 쌉싸름한 맥주 맛이 입안을 채웠다. 뒷맛이 개운하지가 못하고 입에서 계속 맴도는 게 속이 울렁거렸다. 나는 CF에서 떠들어대던 개운하고 청량한 맛이 느껴질 줄 알았는데 사기당한 기분이었다. 그나마 위로를 해보자면 나중에 알코올 중독에 걸리거나 술독에 빠져 가세를 기울게 하는 일은 없을 듯싶었다. 이렇게 맛이 없으니 두 번은 안 먹을 거다.
맥주캔은 은원만 비웠다. 그 애는 뭐가 그렇게 맛있는지 캔에 입을 붙였다 하면 몇 모금이고 꿀꺽꿀꺽 삼켰다. 모범생인 줄 알았더니 순 양아치가 따로 없다. 아버지의 목울대가 거침없이 넘어갔다. 나는 그 광경을 무슨 서커스라도 구경하는 것처럼 멍하니 보고 있었다. 말을 하지 않을 동안의 은원은 제법 아버지를 닮았다. 그 찰나의 순간을 어떻게 견뎌야 할지 알 수 없어 은원에게 말을 건넸다.
“몸 상태는 어때?”
“뭐랄까, 몽롱해.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아. 아니면 꼭 해저에서 수영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아버지를 죽였고 은원의 영혼이 찾아왔다 한들 나는 변하지 않은 것 같았다. 나는 사람을 죽였음에도 여전히 술 한 병 사는 것에 양심이 콕콕 찔린다. 3년 만에 보는 아버지의 얼굴도 초췌해졌을지언정 이전과 다를 바 없다.
“너 정말, 정말로 네가 죽었다고 확신할 수 있어?”
“트럭에 치인 뒤로 기억이 안 나는걸. 어쩌면 지금쯤 기사가 떴을 수도 있겠다. 너 핸드폰 있어?”
내가 주머니를 뒤적여 포털 사이트에 막 접속한 차에 은원이 어, 하는 소리를 냈다. 은원이 저도 모르게 만지작거린 아버지의 낡은 패딩에서 핸드폰이 떨어졌다.
“어, 야. 이거 너희 아버지 핸드폰 같은데.”
은원이 아버지의 엄지손가락을 가져다 대자 손쉽게 잠금이 풀렸다.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이 핸드폰을 뺏어 들고는 조그만 화면에 얼굴이 박힐 듯이 들이댔다. 대체 5년간 뭘 하고 살았는지 새삼스레 궁금했던 터였다. 알림은 따로 없었고 갤러리도 텅 비어 있었다. 메시지 함에 들어가자 가장 상단에 엄마의 이름이 보였다. 나는 표정을 갈무리하지 못하고 입가가 굳는다.
“엄마랑 연락 중이었어.”
내가 중얼거렸다. 둘은 나 몰래 연락하고 있었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아버지의 실종은 내게만 해당하는 일이었다. 어렴풋이 그렇지 않을까 짐작했다. 지금껏 뭉뚱그려 있던 의심이 명확한 실체로 다가왔다. 엄마가 아버지를 적극적으로 찾는 것을 본 적 없을 때 의심했어야 했다. 무엇보다 나도 아버지가 보고 싶지 않았기에 더 깊이 파고들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그렇기에 엄마가 내게 아버지의 행방을 숨겼던 걸지도 모르겠다. 나도 자각하지 못한 사이 내 손이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엄마가 정말로 나보다 아버지를 택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었다. 엄마는 나를 사랑했지만 나를 특별히 더 사랑했는지는 알 수 없다.
나는 지금껏 엄마가 나를 버리지 않아서 좋아했다. 아버지는 쓰레기 같은 인간이라서 나를 버렸지만, 엄마는 나를 영영 버리지 않을 것 같아서 좋아했다. 그리고 감사했다. 엄마의 인생에서 나는 가장 무거운 짐이었다. 중견기업에 다니던 엄마는 나를 임신한 뒤로 경력이 단절되었고, 내가 5살이 되던 해에 중소기업 재취업을 시도했으나 모두 좌절되었다. 엄마가 일할 수 있는 곳은 단순노동이 필요한 공장이나 마트뿐이었다. 그 일자리들을 깎아내리려는 의도는 아니나, 엄마가 대학에서 공부한 것이나 결혼 전 쌓은 경력을 하나도 쓸 수 없다는 게 모두 내 책임 같았다.
적어도 엄마가 홀몸이었다면 엄마의 경제활동만으로 배곯지 않고 살 수 있었을 것이다. 내가 없었다면 엄마는 2층이나 3층 빌라에 살 수도 있었을 것이다. 가끔 친구들을 만났을 것이고 부담 없이 새로운 사람을 만났을 것이고 뜨개질이나 테니스 같은 취미를 가졌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엄마는 그럴 수 없었다. 내가 엄마의 돈으로 밥을 먹고 몸을 씻고 학교에 다니기 때문이었다. 엄마는 나 때문에 반지하에 굴러떨어져 사는 셈이었다. 엄마의 희생이 기쁘면서도 숨 가빴다. 때로 살아있는 것만으로 죄책감을 느꼈다. 엄마를 위해서 죽고 싶었고 엄마를 위해서 살고 싶었다.
엄마는 내 모든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엄마의 성품이나 인간성, 매력이나 외모를 떠나 그는 내게 있어 최고의 선물이나 마찬가지였다.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나를 버리지 않은 사람의 의미는 그랬다.
[정말이야! 이번엔 금방 갚을 수있어!]
[진짜안되..나도 돈이없서서그래 당신소선이생각도좀해]
아버지의 문자를 마지막으로 끝나있는 내역을 스크롤해서 올렸다. 몇 번이고 아버지가 돈을 요구한 흔적이 남아있었다. 엄마는 그 요구를 몇 번은 들어주었고 몇 번은 들어주지 않았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많은 횟수를 허락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버지는 자신도 지금 노력하고 있다는 호소, 당장 월세를 내기가 어렵다, 일용직을 뛰었는데 허리가 다쳐 한동안 일하기 어렵다, 병원비가 모자란다는 등의 이야기를 해댔고 끝내 어머니는 [입금햇어 이번이마지막이야]하는 문자를 보냈다. 내 생일 즈음에는 [오늘 소선이 생일이야 연락좀해]하는 어머니의 문자가 있었고 아버지는 [알겠어!]하고 대답했다. 연도를 확인했으나 아버지의 연락이 오지 않은 해였다. 더는 읽고 싶지 않아서 핸드폰을 테이블에 뒤집어놓았다. 무심코 눈물이 날 것 같기 때문이었다.
아버지가 앗아간 돈이나 오지 않은 생일 문자 때문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5년간 홀로 겪었던 고초가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어쩌면 그동안 내게 끊임없이 다가오려고 노력했을지도 모른다.
내 안에서 두 명의 내가 싸운다. 비이성적인 나와 이성적인 나다. 아니, 정확히는 버려지고 싶지 않은 나와 이미 버려진 나다. 비이성적인 나는 아버지가 3년간 한 번도 연락하지 않은 이유를 단지 당신이 내 앞에 설 자격이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며칠 뒤, 아니면 몇 년 뒤일지라도 엄마와 아빠가 우리 셋이 함께할 수 있는 집을 마련해주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는다. 두 사람이 그 사실을 밝히는 날은 어쩌면 내 생일일 수도 있고 크리스마스 즈음일 수도 있다. 상상 속의 부모는 내게 ‘이제는 셋이 함께 사는 거야’라고 말해준다. 그리고 만약 그럴 가능성을 내가 오늘 망쳐버렸다면. 나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누구를 믿고 누구를 미워해야 하는 걸까. 그게 바보 같은 가정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아버지가 이미 수많은 기대를 저버렸다는 것을 알면서도 왜 다시 믿어버리고 싶은 걸까. 내가 숨을 거칠게 내쉬자 은원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보았다.
“괜찮은 거야?”
나는 손을 테이블 아래로 내렸다. 은원을 만난 지 고작 몇 시간 지났을 뿐인데 보일 수 있는 추태는 다 보인 것 같아 수치스러웠다. 이미 버려진 나는 생각한다. 내가 하는 것은 다 바보 같은 망상이다. 나도 알고 있다. 실제로 아빠는 나를 진작 버린 지 오래일 것이다. 아빠는 경마장 가는 버릇을 고치지도 못했고 모아둔 돈도 한 푼 없다. 엄마가 알려주지 않는 이상은 내 생일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나는 매일 아빠 생각에 괴롭지만 아빠는 조금도 내 생각을 하지 않는다. 엄마와 아빠가 나를 위해서 마련한 꿈의 집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당장 내일이라도 반지하에서 쫓겨날 걱정이나 해야 하는 처지다. 몰래 연락하는 엄마랑 아빠가 나를 버리고 멀리멀리 떠나지는 않을까 걱정해야 하는 처지다. 나는 내 가난 만큼이나 내 처지를 들키고 싶지 않았다. 아니, 차라리 가난은 들켜도 괜찮았다. 내가 지금 부모 모두에게 내쳐질 위기의 여자애라는 것은 누구에게도 들키기 싫었다. 버림받은 애로는 보이고 싶지 않았다. 상대가 이미 죽은 여자애라고 한들 마찬가지였다.
“괜찮아. 별거 아니었어. 짐작 가는 게 없네. 네가 여기 얼마나 있을지도 모르겠고.”
나는 플라스틱 의자에 몸을 깊게 기댔다.
“응, 괜찮아. 그래도 내가 이 몸에 있는 동안은 서로 잘 지내보자. 네가 말한 일도 도와줄게.”
믿음직스럽게 웃는 그 애의 얼굴은 마치 이날을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것 같았다. 내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고 느꼈지만, 감정을 숨기는 일에 급급해서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었다. 할 수 있는 건 그저 아버지의 핸드폰을 부수고 싶다는 충동을 참으며 입꼬리를 올리는 것뿐이었다. 일부러 쓰디쓴 술을 목구멍으로 넘겼다. 차갑고 뜨거운 액체가 식도를 넘어가는 감각에만 집중했다. 목으로 마셨는데도 코가 아찔했다.
“알았어. 고맙다.”
나는 어른 흉내를 내듯 맥주캔을 내밀었다. 건배하자는 의미였다. 은원이 받아주지 않았으면 민망할 뻔하였으나, 다행히 그 애는 잔을 살짝 부딪쳐주었다. 우리는 몇 번의 건배를 했다. 새콤달콤한 안주와 씁쓸한 맥주를 같이 마시니 맥주만 먹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술이 물처럼 넘어간다는 말이 왜 있는지 알 것 같았다.
“이거 꼭 그거 같다. 술잔을 나눈 맹세?”
은원이 달아오른 얼굴로 복숭아 맛 젤리를 우리 사이에 세워둔다. 도원결의라도 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나도 장단을 맞춰주었다. 복숭아 맛 젤리를 위로 다섯 개쯤 쌓았다. 하나씩 하나씩 신중한 손놀림이었다. 젤리 탑을 다 만들고서는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우리에게서 술 냄새가 났다.
“좋아. 잊지 마, 부모님이 이혼하도록 돕는 거.”
나는 간절했다. 둘을 떨어뜨려 놓아야 엄마가 나를 온전히 책임질 수 있을 거 같았다. 엄마가 아버지와 나 둘 중에 나를 선택했으면 좋겠다. 엄마에게 매달린 기생충은 나 하나뿐이었으면 좋겠다. 엄마가 나만 사랑해주었으면 좋겠다. 엄마가 아버지에게 돈을 주지 않았다면 우리는 겨울 바지를 살 수도 있었고 롱패딩을 살 수도 있었을 거다. 집에 세면대를 놓을 수도 있었을 것이고 인터넷 강의를 끊을 수도 있었을 거다. 엄마와 아버지를 떨어뜨려 놓으면 엄마가 버는 돈은 우리 둘만의 몫이다. 나는 아버지를 향한 동정 대신 분노의 불씨를 다시 지폈다.
증오를 되새겨야 한다. 아버지가 저지른 몰염치한 짓을 하나둘씩 곱씹어야 한다. 아버지가 나에게 했던 폭언과 폭력을 잊어서는 안 된다. 아버지의 나쁜 점을 떠올려야 한다. 그것이 과거의 나와 미래의 나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지금 아버지와 엄마를 떼어놓지 않으면, 아버지에 의해 고통받은 과거의 나도 울부짖을 것이며 아버지에 의해 고통받을 미래의 나도 좌절에 빠질 것이다. 나는 은원의 맥주잔에 자신의 것을 부딪치며 울듯이 웃었다. 흐흑, 끄윽. 그런 기괴한 소리가 났다.
“아, 나도. 그럼 나도 도와줘.”
은원의 혀는 나보다 풀려있었다. 우리는 둘 다 술을 어떤 속도로, 무엇과 함께 먹어야 하는 줄 몰랐다.
“뭔데?”
“내가 고백할 수 있게……. 그거 도와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