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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산 Oct 10. 2024

아버지 죽이기 (3)

오디세우스

3. 오디세우스


우리는 몹시 취한 채로 편의점을 나왔다. 나는 은원을 데리고 사우나에 가기로 했다. 취한 채로 집에 돌아갈 수도 없었고, 은원이(그러니까, 우리 아빠의 몸이) 못 봐줄 만큼 더러웠기 때문이다. 코가 빨개진 채 냄새를 풍기는 그는 SNS에서나 화제가 될 법한 진상 취객 같았다. 나는 창피를 당하기 전에 그를 이끌었다. 어쩌면 엄마가 이혼하지 않은 이유는 아빠가 차마 놔두고 가기 힘든 모양새여서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일말의 양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우리 아빠를 보고 지나치지는 못할 것이다.


외박을 허락받기 위해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고 엄마는 내키지 않는 기색으로 동의했다. 양심이 콕콕 찔렸다. 사우나까지 걸어가는 길에선 황급히 찬 바람으로 얼굴을 식혔다. 취한 게 티가 나면 사우나에 들어갈 수 없었으니까 말이다. 사우나 직원은 내가 은원을 '아빠'라고 부르는 것을 듣더니 의심 없이 키와 사우나 복을 내주었다. 돈은 편의점에서와 마찬가지로 봉투에 있는 것을 썼다. 돈을 쓸 때마다 가슴이 뜯겨나가는 것 같았다.


"30분 뒤에 사우나에서 보자."

"나, 나 좀 무서운데."


은원은 홀로 남탕에 들어가는 것에 많은 회의감이 드는 모양이었으나 어쩔 수 없었다. 나는 그에게 실눈을 뜨고 다니라고 충고했다. 다 늙은 아저씨가 남탕에서 부끄럼을 타는 건 어딘가 추접스러워 보일 것 같았다.


나는 정확히 30분 뒤에 소금방 앞에서 매트를 펼쳤다. 시계는 어느덧 1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렇게 늦은 시각에 오는 건 처음이었지만, 사우나라는 공간 자체는 익숙했다. 반지하의 화장실이 매우 열악했기 때문이었다. 약한 수압 탓에 반지하에서 계단 두 칸 만큼 위에 있는 화장실은 집이 싫은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다. 방음이 안 돼서 볼일 보는 소리가 방까지 다 들렸고 더군다나 냄새나 습기도 잘 안 빠졌다. 그 탓인지 방에는 곰팡이가 사라질 날이 없었고 온갖 벌레의 온상지가 된 원흉이 되었다. 또 방이 비좁아 버릴 물건이나 보관할 물건이 생기면 무조건 화장실행이었는데 그렇게 되면 샤워할 공간이 남지 않아서 씻을 수가 없었다. 겨울에 수도가 어는 건 다반사였다. 청결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목욕탕에 자주 와야만 했다.


은원은 곧이어 왔다. 남탕에서 무슨 친화력을 발휘했는지 손에는 펜과 이면지 몇 개를 든 채였다. 우는 소리를 낸 것 치고는 멀쩡해 보였다. 우리는 종이를 매트 가운데에 놓고 끄적끄적 글씨를 써넣었다. 난 내가 아는 아버지에 대해 몇 가지를 알려주었다. 그가 혹시 아버지를 아는 사람을 만났을 때 실수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아버지의 나이와 키, 이전에 가졌던 직업 등을 읊고서는 사소한 것들까지 떠들었다.


"아빠는 잡곡밥보다는 쌀밥을 좋아해. 그리고 키가 커서 소형차는 못 타. 아, 버스에 타는 것도 불편해해. 설거지할 때도 싱크대가 낮아서 허리가 아프다고 하고. 흠, 롤러코스터도 못 타더라. 너도 조심해. 아까 보니까 몸이랑 정신을 못 따라가는 게 느껴지더라.“

”갑자기 커져서 그래. 한 30cm는 커진 것 같아. 눈높이부터 달라. 공기도 다르고.“

”공기도?“

”그렇다니까.“


얘도 아닌 척 오버가 좀 있네. 종이를 힐끗 내려다보니 은원의 정갈한 글씨가 빼곡했다. 그 애의 글씨체는 아버지의 것이나 내 것과는 정반대였다.


"이 정도면 다 말한 것 같은데. 여기서 더 궁금한 거 있어?"

"이것도 많아서 전부 기억 못 할지도."

"너 공부 잘 하지 않아?"

"공부 잘하는 거랑 기억력이 좋은 거랑은 살짝 달라서……."

"공부를 잘하긴 잘한다는 거구나."


은원은 부정하지 않았다. 민망해하긴 해도 본인 성적에 자부심이 있는 모양이다. 은원이 이면지를 하나 더 꺼내 들었다.


"그, 내 고백에 대한 것 말인데……."


이제 은원의 부탁을 들어줄 차례인 모양이었다. 은원은 다짜고짜 고백을 도와달라고 했을 뿐, 그게 누구에게 하는 어떤 고백인지에 대해서는 설명해주지 않았다. 나는 대체 죽어서까지 전해야 하는 고백이 무엇인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정황을 보아서는 단순히 죄에 대한 고백이 아니라 사랑 고백이라도 되는 것처럼 들렸지만, 그것이라면 더 문제였다. 내가 사랑에 관해 일자무식이라서 그랬다.


나는 유독 연애라면 관심이 없었다. 아이돌이나 캐릭터를 좋아하는 사랑에서부터 인스타에서 파도 타다가 본 옆 학교 잘생긴 남자애까지 아무런 관심이 가지 않았다. 이 세상에서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사랑은 엄마를 향한 나의 사랑과 나를 향한 엄마의 사랑뿐이었다. 이 사랑은 적어도 공정하고 신뢰가 갔다. 내가 내 모든 것을 바쳐서 엄마를 사랑하면, 엄마 역시 나를 버리지 않고 돌보아준다. 드라마에 나오는 모녀 관계처럼 내가 엄마에게 투정을 부리거나 대판 싸우고 집을 나서는 건 도저히 상상이 가지 않는다. 이 세상에서 나를 버리지 않은 것이 엄마뿐이므로 나는 엄마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 엄마가 아니라면 평생 누구도 사랑할 수 없을 것만 같다. 대체 나와 전혀 다른 환경에서 자란, 나를 전혀 알지 못하는 누군가를 어떻게 사랑할 수 있단 말인가?


한편으로 나는 종종 언젠가 내 비위에 딱 맞는 누군가가 나타나는 것을 상상했다. 나의 상처와 약점을 모두 알고 있으면서도 곁을 떠나지 않는 누군가를 만나는 것이다. 그런 사람이 나타난다면 있는 힘껏 사랑하고 싶다.

하지만 나는 그런 누군가가 나타날 리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의 상처를 사랑하는 사람일지라도 그 상처가 생긴 맥락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또 나의 약점을 사랑하는 사람일지라도 그 약점이 생긴 상황을 알고 있지 못하다면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없다. 그리고 나는 모든 속내를 미주알고주알 털어놓다가 누군가를 떠나보내고 싶지 않았다. 그건 내 겉모습만을 본 사람이 떠나는 일보다 수십 배는 수치스럽고 고통스러울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바라는 동시에 바라지 않고 있다.


그건 어쩌면 내가 아무런 꿈도 갖지 못한 이유와 같을 것이다. 나를 가난하다고 말하는 까닭은 환경보다도 마음이다. 나는 가난하고 나의 마음은 더욱 가난하다. 눈앞에 닥친 일을 모면하는 데에 급급해지면 마음이 계속해서 가난해진다. 나는 내가 안전한 집에 살고 안정적인 직장을 다니며 평안한 가정을 이루는 모습을 상상할 수 없다. 그것보다는 당장에 우리 집에 세면대가 생겼으면 좋겠고, 천장이 10cm만 높아졌으면 좋겠고, 커다란 바퀴벌레들과 다시는 눈이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눈앞에 닥친 불행이 거대한 나머지 그럴듯한 희망을 품는 건 꿈도 꾸지 못했다. 피라미드 꼭대기에 뭐가 있는지 모르는 노예처럼.


그래서 나는 은원과 내가 근본적으로 다른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은원은 나와 전혀 다른 삶을 살았을 테다. 은원은 어린 시절에 비행기를 타고 가족 여행을 떠난 적이 있을 것이다. 여름에는 바다를 갈 수 있었을 것이고 겨울에는 스키장에 갈 수 있었을 것이다. 음식이나 향, 가구에 대한 취향이 뚜렷할 것이다. 그러니까 스키장에서 스노보드가 더 좋은지 스키가 더 좋은지 선택할 수 있고, 샴푸 매대 앞에서 라벤더 향이 더 좋은지 라일락 향이 더 좋은지 선택할 수 있고, 이사 갈 때 역에서 가까운 게 더 좋은지 마트에서 가까운 게 더 좋은지 선택할 수 있는 삶 말이다. 은원이 선택지가 무한한 삶에서 살았다면 나는 최악의 선택지가 나를 끈질기게 쫓아오다가 끝내 집어삼키는 인생을 살았다.


즉, 은원은 마지막 고백을 전달하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게끔 살아온 것이다. 나라면 은원처럼 감히 고백을 전달하겠다고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왜냐면 내가 고백해봤자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니까. 그게 당연하니까.


은원이 부럽기도 했고 밉기도 했다. 나는 은원이 어쩌다 그런 결론에 도달했을지 짐작이 가서 괴로웠다. 내가 갖지 못한 은원의 삶에 질투가 났다. 은원처럼 살고 싶었다. 설령 18살에 비극적인 사고로 죽더라도. 단 하루라도 좋으니 은원처럼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것도 걱정하지 않고 살아보고 싶다.


나는 능숙하게 감정을 숨기고 은원을 대한다. 깊게 생각할 필요 없다. 단지 은원이 내 부탁을 들어주니 나도 은원의 부탁을 들어줘야 하는 것뿐이다. 우리는 고작 이 정도의 사이다. 은원의 고백에 대해 아무런 추측도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열여덟 정도면 첫사랑쯤이야 경험해볼 애들은 다 해봤을 것이다. 은원에게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도 놀랄 일은 아니다.


"그래. 어떻게 도와주면 되는 건데? 말을 전달해주면 돼?"

"음, 작전을 짜야 할 것 같아."

"어떤 작전? 그냥 내가 폰 빌려주면 안 되는 거야? 고백하는 사람 번호 몰라?"

“아니, 번호는 알지. ……우리 반 애야.”


의외였다. 하마터면 조금 전의 다짐이 무색하게 누구냐고 물어볼 뻔했다. 은원의 짝사랑 상대는 옆집 오빠나 엄마 친구 아들 같은 흔한 상대가 아니라 같은 반 여자애였다. 나도 모르게 내가 아는 면면들이 몇 떠올랐으나 애써 무시했다. 그건 그동안 은원이 같은 반 여자애를 좋아하면서 겪었을 모든 감정에 대해 고개를 돌린다는 뜻과도 같았다. 나는 은원에게 그렇게나 감정을 소모하고 싶지 않은 거였다.


“그렇구나.”

“안 놀라?”

“놀랄 것까지야…….”


나는 은원과 달리 연기에 재능이 있는 것 같았다. 의연한 척 시선을 위로 올렸다.


“어쨌든 안 돼. 넌 나랑 친하지도 않은데 갑자기 네가 내 고백을 대신 전해주면 걔가 어떻게 믿겠어. 널 미쳤다고 생각할걸.”


그 의견에는 동의했다. 아마 내가 귀신이라도 씐 줄 알 거다. 나로서는 도통 마땅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단순하게 디엠이나 카톡으로 보내는 것도 생각해봤지만 죽은 사람한테 온 연락이라면 질 나쁜 장난 취급을 받을 것 같았다. 은원이 말했다.


“고백은 편지로 하려고. 직접 건네주는 게 아니고 걔가 볼 만한 데에 두고 와야지. 죽기 전에 두고 간 것으로 꾸미고선 말이야.”


구닥다리 방식이었지만 적절했다. 언제 보냈는지 알 수도 없을뿐더러 퍽 낭만적이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좋아. 그렇게 하자. 편지는 썼어?”

“아니, 그럴 시간이 어딨어. 고백도 방금 결심했는데. 이제 써야지.”

“걔 어디 사는지 알아? 거기 넣어주고 오면 되나?”

“아니, 몰라서…… 사물함에 넣어주고 와야 할 것 같은데.”

“주말에도 자습실은 열려 있으니까 거기 넣으면 되겠네.”


나는 편지를 사물함에 몰래 넣어주는 것에 동의했다. 마침 오늘은 금요일이었으니, 걔가 월요일에 학교에서 편지를 확인하기까지는 이틀이나 시간이 비었다.


"근데, 내가 좋아하는 애가 세종반이어서."


잠시 침묵했다. 우리 학교는 전교 30등 안에 드는 아이들에게 사물함을 따로 마련해주었다. 사물함뿐만 아니라 야자실도, 방과 후 활동도, 아마 생활기록부까지도 별도의 관리를 받고 있을 터였다. 노골적인 차별이었지만, 아무도 불만을 품지 않았다. 애초에 대부분이 세종반에 들어오고 싶어서 이 학교에 진학한 것일 테니 말이다. 우리 학교는 입결 좋기로 소문난 인문계 여고였고, 특히 세종반에만 들어가면 인서울 상위권은 보장된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세종반의 몇몇은 모르려 해도 모를 수가 없었다. 매 학기 성적이 나올 때마다 인원 변동이 있었지만, 어지간해서는 거기서 거기였기 때문이다. 그중 하나가 이은원이었다. 그런 이은원이 같은 세종반 애를 좋아하는 게 의외로웠다. 예쁘거나 인기 있는 애를 좋아할 줄 알았다.


새삼스럽게도 나는 이은원을 몰랐다. 기껏해야 얼굴 몇 번 스친 적 있는 애의 죽음은 도통 와닿지 않았다. 내 옆에서 멀쩡히 대화까지 하고 있으니 실감이 나지도 않았다. 인생의 끝자락에서 가족에게 할 말을 남기는 것도 아니고 또래의 여자애에게 마음을 전하고 싶다는 절절함을 이해할 수도 없었다. 난 누구도 그렇게 좋아해 본 적 없었다. 내가 지금 당장 죽는다면 엄마에게나 몇 마디 전하고 싶지 않을까.


"난 세종반 근처도 들어가 본 적 없어. 알잖아."

"몰래 들어가면 되지. 편지만 주고 나오면 돼."

"대책이 없구나."

"그렇다고 다른 방법이 생각나는 것도 아니잖아."


뻔뻔하게 구는 은원이 황당하기만 했다. 하지만 은원의 말대로 대안이 있는 건 아니었다. 결국엔 새벽이 되도록 편지를 전해줄 작전을 짰다. 나중에는 쉴 새 없이 떠드는 게 재밌기까지 했다. 타인과 이렇게 대화하며 웃어본 지가 까마득히 오래되어서였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친구가 없었으니까. 그리고 은원은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하고 있었으니까. 중간에 옆에서 주무시는 아주머니께서 "부녀가 사이좋은 건 알겠는데, 조용히 좀 합시다"라고 했을 때는 얼굴이 화끈해졌다. 나는 친구를 얻은 것인지 아버지를 얻은 것인지 헷갈렸지만, 둘 다 사실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상황이 기이했다. 은원도 죽었고 아버지도 죽었는데, 은원도 살고 아버지도 살아있는 것만 같았다. 은원은 내가 깊이 잠든 이후에도 혼자 남아 누군가에게 전해줄 편지를 썼다. 펜과 종이가 닿아서 나는 사각대는 소리가 한참이고 수면실을 울렸다. 편지의 내용은 묻지 않았다.


날이 밝고선 함께 학교로 갔다. 학교 앞에 기자 몇 명이 드나드는 것이 보였다. 처음에는 학교에 무슨 사고라도 터진 걸까. 그리 가볍게 생각하던 나는 나중에서야 은원의 죽음이 그 ‘사고’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기자들은 은원을 아는 이들에게 인터뷰를 받고 싶었나 본데, 주말이라서인지 애들이 입을 다물어서인지 허탕만 친 모양이었다. 짜증과 피로가 가득했던 얼굴이 나와 은원을 보자마자 번뜩이는 것을 보면 그랬다. 정문을 향해 걷자 기자들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었다.


“혹시 2학년 3반에 이은원 학생 알고 있나요?”


나는 은원의 눈치를 봤다. 단순히 얼굴과 이름을 모르느냐 아느냐의 기로를 놓고 봤을 때는 ‘안다' 쪽이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는 아무것도 몰랐다. 그 애의 가장 큰 비밀은 알고 있지만, 그 외로는 매운 음식을 좋아한다거나 부유한 집에서 자랐다거나 하는 것뿐이었다. 내가 감히 은원에 대해 왈가왈부할 자격이 있을까. 나는 은원을 돌아본다. 은원은 입을 꾹 다문 채로 운동장만 바라보고 있었다. 은원의 표정을 읽고 싶었지만 그가 어떤 기분인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은원이 아니라 아버지의 기분이었다면 알아차릴 수 있었을까.


“잘 몰라요. 다른 반이어서.”


결국 인터뷰 요청을 거절했다. 은원의 앞에서 생전의 은원이 어떤 애였는지 말할 수 없었다. '내 아버지의 거죽을 뒤집어쓰고 내 옆에 있잖아요'라고 대답할 수는 더더욱 없었다. 기자는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우리를 보내주었다. 우리는 정문을 통과했다. 나도 은원도 기자에 대해서 따로 더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 경비원에게는 아버지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자 금방 들어갈 수 있었다.


교실 문을 열기 위해서는 교무실에서 열쇠를 가지고 가야 했다. 우리는 교무실로 들어갔다. "아버님은 어쩐 일로 오셨나요?" "제가 두고 온 게 있는데, 같이 학교 구경도 하고 싶으시대서." "네, 그러세요." 대화가 싱겁게 끝났다. 우리 학교는 교무실 구석에 모든 열쇠를 늘어놓고 있었다. 나는 우리 반 열쇠를 가져오는 척하며 세종실의 열쇠까지 꺼내 들었다. 입 밖으로 심장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맹세코 도둑질을 한 건 처음이었다. 가난하긴 했어도 누군가의 물건에 손댄 적은 없었다. 남들은 웃으면서 어린 시절 부모님 지갑에서 몇천 원을 꺼낸 일을 털어놓는다지만 내게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오히려 가난했기 때문에 더 손댈 수 없었다. 가난하지 않은 누군가가 물건을 훔친다면 그것은 한때의 일탈이나 반항으로 취급될 것이다. 하지만 가난한 내가 물건을 훔친다면 그건 내가 미래에 도둑이 될 것이란 증거로 쓰일 것이다. 나는 '가난해서 물건을 훔치지 않으면 안 되는 애' 꼬리표가 붙을 테다. 그게 두려워서 평생 남의 물건은 쳐다도 보지 않았거늘. 남의 러브레터 하나 전하려고 이 고생이라니.


반대로 아버지는 나의 돈을 훔친 적 있었다. 아버지는 내가 어릴 때부터 모은 세뱃돈과 용돈을 전부 가져갔다. 한 푼 두 푼 아껴서 저금통에 넣어놓은 돈은 어느 날 사라졌다. 나는 텅 빈 저금통을 보며 아무래도 집에 도둑이 든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엄마한테 가서 사실을 전하면 엄마가 아버지를 붙들고 호소했다. "여보, 소선이 거 훔쳤어?" "그거 뭐 얼마나 한다고 그래." "그게 뭐 얼마나 한다고 애 걸 훔쳐!" 나는 그제야 그 돈을 아버지가 가져갔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놀란 표정을 하자 아버지는 재밌어하며 실실 웃었다. "우리 소선이, 속상했어? 아빠가 다음부터 안 그럴게." 그런 식으로 나를 달래주기도 했다. 나는 바보처럼 "알았어. 다음부터는 그러지 마."하고 넘어갔다.


하지만 나이를 먹어서도 사정은 바뀌지 않았다. 아버지는 번번이 내 돈을 훔쳤다. 그럼 나는 아버지에게 빼앗기지 않기 위해 돈을 숨겼다. 책 사이사이나 책장 뒤에 만원이나 이만 원씩을 꽂아두었고, 마찬가지로 아버지는 기어코 찾아내서 가져갔다. 자물쇠가 달린 저금통도 사용해보고 아빠한테 애교도 부려봤지만, 무엇도 소용없었다. 아버지는 이 문제를 가볍게 생각했다. 네가 무슨 돈이 필요하냐고, 필요한 게 있으면 부모에게 말하면 되지 않느냐는 거였다. 하지만 아버지는 내가 필요한 물건을 절대 대번에 사주지는 않았다. 게다가 내가 모은 돈으로 먹고 싶은 것을 사고 갖고 싶은 것을 갖는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모르는 것 같았다. 뒤통수에 머리카락이 한 움큼은 빠질 정도로 큰 스트레스를 받았다. 나는 그 행동에 매번 상처받았고, 아버지를 점점 신뢰할 수 없게 되었지만, 아버지는 그걸 몰랐다. 아버지는 내가 분해하고 속상해하는 걸 즐겼다. 날 놀리기 좋은 딸로 생각하고 있던 것 같다. 뭐가 잘못됐는지 모르니 바뀌는 것도 없었다. 내가 숨긴 용돈을 훔쳐서 경마하는 데에 쓰고, 집에 돌아와서는 내가 우는 걸 웃으며 넘기고, 그것을 지겹게도 반복했다.


하루는 제발 좀 훔치지 말라며 소리를 지르고 짜증을 부렸으나 통하지 않았다. 아버지한테 그렇게 큰 소리를 내본 건 처음이었다. "나중에 갚을게." "나중에 갚겠다는 얘기 좀 하지 마! 왜 내 돈을 훔쳐 가! 왜! 이걸 내가 어떻게 모은 건데!" "넌 왜 부모한테 그러냐. 이게 곧 내 돈이고 내 돈이 곧 네 돈 아니냐. 나 죽으면 어차피 내 돈 다 네가 갖는데." "제발 그만해! 나 진짜 너무 힘들어. 내 친구 중에 이런 아빠 가졌다는 애 한 명도 없어. 다들 부모님께서 직접 통장 만들어주셔. 걔넨 어릴 때부터 모은 세뱃돈도 다 가지고 있어. 나는 아무것도 없어. 나만 아무것도 없단 말이야. 제발 내 돈 좀 가져가지 마. 내가 매번 숨기는데, 그리고 매번 다른 데에 숨기는데, 왜 매번 가져가는데. 나 학교 갔을 때 왜 내 방 계속 뒤지는데. 나 없을 때 방 들어오지 마." 그 대화가 어떻게 끝났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아버지는 화를 냈던 것 같다. "더러워서 이제 안 훔치지. 너 그렇게 굴어서 사회생활은 어떻게 할래? 이 년은 누굴 닮아서 이래?"


대체 왜 그랬을까? 내가 뭘 잘못했을까? 어쩌면 돈에 집착하는 내 태도가 문제였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집에다가 돈을 숨기는 건 멍청한 일이었다. 심지어 그때마저도 이 정도까지 했으니 이젠 아버지가 다신 돈을 훔치지 않을 줄 알았다. 그런 생각을 하기 무섭게 아버지는 다시 돈을 훔쳤고 나는 그제야 완전히 포기했다. 나는 왜 매번 아버지에게 속고 말았을까. 그리고 왜 아버지를 계속 기다렸을까. 나는 아버지처럼 되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는 누구보다도 아버지의 얼굴을 닮아가고 있었다. 난 이렇게 살 바에 집을 나가고 싶었고, 집을 불태우고 싶었고, 아버지를 죽이고 나도 죽고 싶었다.


결국 아버지는 훔치고 훔치다가 어젯밤 내 손에 소주병까지 맞지 않았던가. 지금은 아이러니하게도 덩치가 큰 아버지의 몸이 내가 열쇠를 훔치는 순간을 가려주었다. 선생들의 눈치를 살폈지만, 그들 중 누구도 우릴 보고 있지 않았다.


야자실에는 토요일에도 나와서 공부하는 애들이 수십 명은 있었다. 다행히 주말에는 관리비 문제로 인해 세종실이 닫히고, 세종실 아이들도 야자실을 사용했다. 세종실은 완전히 텅 빈 셈이었다. 우리는 몰래 문을 열고 들어가기만 하면 됐다. 하지만 나는 용기가 도무지 나지 않았다.


"도둑질하는 줄 알 거야."

"도둑질 아니잖아."

"그래도 그렇게 보일 거라고.“

“아무튼 우린 떳떳해.”

“우리가 떳떳한 건 아무 소용 없어. 중요한 건 남들이 어떻게 보느냐지.”


우린 계단을 오르며 소모적으로 티격태격했다.


"그래서 누구 사물함에 넣으면 되는데? 내가 두고 올게."


그건 내가 일부러 피했던 주제였다. 하지만 세종반에 가까이 가면 갈수록 그 문제를 피할 수 없었다. 세종반에 들어가는 건 나 혼자여야 했으니까. 둘이 들어갔을 경우, 나중에 들켰을 때 더 귀찮아질 것이 뻔했다. 아버지와 딸이 함께 작당하고 도둑질을 한다니. 무슨 그런 막장 집안이 다 있단 말인가. 우리 집은 그러기 전에도 막장 콩가루였으니 이런 데에서까지 악명을 높일 필요가 없었다.


은원이 망설이듯 입을 떼려는 순간. 건너편의 복도에서 누군가의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게 야자실에 있던 아이 중 하나가 화장실에 가는 소리일 것이라고 지레짐작했다. 누군가 나와 우리를 목격한다면 수상하게 여길 것이 뻔했다. 교실도 아니고 야자실 복도에 부녀가 함께 출몰할 이유가 어디 있다는 말인가. 우리는 찰나에 시선을 교환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화장실로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화장실 칸 하나에 함께 들어가 문을 닫았다. 유치원 다닐 때 이후로 누구랑 같은 화장실 칸에 들어온 건 처음이다. 심지어 아빠의 몸이랑 같이 들어올 줄은 몰랐다.


우리는 숨을 죽이고 발소리가 지나가길 기다렸다. 그러나 별안간 은원이 심각한 표정을 짓고 내 어깨를 두드리는 통에 나도 은원을 바라보았다.


“야, 저거 봐.”


은원이 입모양으로 말했다. 은원의 손끝은 천장의 조명을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그게 뭐 어쨌다는 건데, 라고 말하려다가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우리 또래의 여자애들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전조였다. 천장에 있는 조명의 쇠 부분에 아이폰의 전자레인지 같은 렌즈가 비쳤다. 은원이 아버지에 몸에 없었다면 발견하지 못했을 테지만, 아버지 안에 든 것이 아버지였어도 알아채지 못했을 것이다. 조명에 비친 검은 물체를 가지고 핸드폰이 아닐까 의심하는 건 아버지가 할 수 없는 일이고, 높은 눈높이로 카메라를 쉽게 찾아내는 건 키가 큰 아버지가 아니고서는 늦을 뻔한 일이었다.


나는 눈을 커다랗게 뜨고 은원을 응시했다. 은원도 나를 같은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우리는 이게 무슨 의미인지 알고 있었다. 여고에서는 매년 "변태", 즉 성범죄자 화젯거리가 끊이지 않았다. 여고 화장실에 종종 바바리맨이 숨어들어온다는 이야기는 선생들이 매번 꺼내는 이야기였다. 우리는 늘 이런 종류의 위협을 받았고, 늘 이런 종류의 위협에 대한 경고를 받았다. 우리는 서글플 정도로 잘 알았다. 이건 바바리맨이 아니라 카메라맨이지만 말이다. 어찌되었든 둘 다 범죄자였다.


나는 옆의 칸에서 인기척을 느꼈다. 그는 카메라를 확인한 것일까, 우리가 둘이 있다는 것을 안 것일까. 갑자기 우당탕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옆 칸 문이 열렸다. 나는 그 자식을 놓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가 여자애들뿐인 야자실로 달려갈 수도 있고, 이대로 얼굴을 보지도 못하고 놓친다면 또다시 우리 학교로 침입할지도 몰랐다. 무엇보다 아버지와 내가 같은 화장실 칸에 들어온 별 이상한 광경을 얼른 지워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메모리를 도저히 카메라에 남겨둘 수는 없었다. 경찰들이 그것에 관해 묻는다면 나는 아무 말도 못하다가 내가 아버지의 머리를 소주병으로 깨버렸다고 자백해버릴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의 괴이쩍은 몸은 실험실에 넘겨지겠지. 그건 은원도 나도 바라는 처사가 아니었다.


벌컥 문을 열었다. 밖으로 도망치려는 그 자식의 뒤통수가 보였다. "야!" 그것은 나를 천천히 돌아봤다. 아버지에게 봉투를 던졌을 때처럼은 먹히지 않았다. 나는 손에 들고 있는 것도 없었고, 그저 겁없이 범죄자를 불러세운 것이었다. 나는 공포로 다리가 얼어붙었다. 어떡하지. 어떻게든 해야 하는데. 나는 폭력이 다가오는 순간을 몇몇 기억하고 있었다. 성인 남성이 가하는 폭력이 여자애한테 얼마나 위협적인지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아버지에게 폭력을 휘둘렀을 때 누구보다도 내가 놀란 것일 테다.


내가 굳어있는 동안에도 시간은 흘렀다. 그러자 의외의 일이 벌어졌다. 아버지가 그를 향해 대걸레를 휘둘렀다. 아버지가 그를 완전히 제압한 것이었다. 아니, 아버지라는 표현은 틀렸다. 은원이었다. 은원이 날 지켜줬다. 타격음이 경쾌하게 울렸다.


"괜찮아?"


어딘가 앳된 말투. 역시 아버지가 아니다.

은원이 그를 완전히 제압한 것이었다. 그 자식은 아버지의 몸 아래에 납작하게 깔려서 박제된 개구리처럼 꿈틀거렸다. 자세히 보니 그 변태는 키가 아버지보다 20cm는 작았고, 못 본 사이 왜소해진 아버지보다도 비쩍 마른 놈이었다. 하지만 내가 혼자 있었다면 그를 온전히 제압할 수 있었을지 알 수 없었다. 내가 은원을 올려다보았다. 은원은 가쁘게 숨을 내쉬고 있었고, 무척 혼란스러운 표정이었지만, 온몸으로 나를 걱정하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그저 은원의 품에 가만히 안겨 있고 싶었다. 그래서 그렇게 했다. 나는 여고생의 것으로는 느껴지지 않는 두꺼운 허리를 양팔로 끌어안았다. 내가 안고 있는 이가 우리 아버지인지 은원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이러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을 뿐이다. 쿰쿰한 냄새가 나는 외투에 얼굴을 파묻고 이대로 시간이 멈추었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은원은 서투른 손길로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머리통을 감싸고도 남는 커다란 손이 나의 거친 머릿결을 쓸고 지나갔다. 이제 나는 은원의 앞에서 내 버석버석한 머릿결이 부끄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다음부터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모든 것은 은원이 알아서 했다. 우리는 선생님과 경찰들의 질문을 받았다. 나는 은원과 말을 맞추고 "내가 야자실에 두고 간 물건을 찾기 전에 화장실에 갔는데, 내 비명을 들은 아버지가 나를 구했다"라고 말하기로 했다. 그걸 실제로 입 밖에 내는 순간이 매우 어색했다.


“아빠가… 구해줬어요.”


그 말이 생경했기 때문이다. 아빠는 날 죽이려 들었지 구해준 적은 없었다. 날 물리적으로 때려죽이든 정신적으로 말려 죽이든 언젠가 나나 엄마가 죽는다면 그건 아빠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아빠의 이름이 등장하는 유서를 몇 번씩이나 작성했던 적 있었다. 그건 어느 날은 원망이 가득했고, 어느 날은 의문이 가득했고, 또 어느 날은 미련이 가득했다.


“제가 도와달라고 해서 바로 와주셨어요.”


그 자리에 있는 게 은원이 아니라 아빠였다고 해도 나를 구해줬을까? 은원이 아니라 아빠였으면 더 좋았을까? 나는 진술을 하던 도중 눈물을 터뜨렸다.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이 당황했다. 선생은 내게 크리넥스를 몇 장 뽑아주었다. "많이 놀랐구나, 소선아. 큰일이 없어서 다행이다. 아버지가 계셔서 든든하겠구나." 그런 말은 나를 더 울릴 뿐이었다.


"소선아, 울지 마. 아, 아빠가…… 옆에 있잖아."


어색하지만 다정한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건 아버지가 아니다. 내가 아는 아버지는 내게 이런 식으로 말하지 않는다. "김소선, 질질 짜지 마." "지 애미를 닮아서 저렇게 우나." "왜 이렇게 마음이 여려? 커서 뭐가 되려고 이래?" 나는 수없이 많은 순간을 내 탓으로 돌려야 했다. 아버지가 언제나 나의 문제점을 지적했기 때문에, 나는 언제나 내 안에서 문제를 찾고는 했다. 나는 덜떨어지고 멍청하고 싹수가 없는 년이라 아버지가 나에게 화를 내는 것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고치면 된다고 생각했다. 내가 바뀌자. 그러면 아버지도 바뀔 수 있다.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이 은원이 아니라 아버지였다면 내게 어떤 말을 했을까? 왜 그 화장실을 이용했냐고? 왜 옆 칸에 누가 있는지 살펴보지 않았느냐고? 적어도 이런 식으로 위로를 건네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아버지에게 늘 기대해왔지만, 한편으로 체념하고 있기도 했다. 아버지는 애초부터 그런 사람이다. 아버지는 변하지 않는다. 그는 영원히 나의 단점을 부풀리고 나의 상처를 파헤칠 것이다.


은원은 당황한 표정으로 내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나는 이 따뜻한 음성이 진실이라고 믿고 싶었다. 그러니까, 나는 그때 정말로 비이성적인 생각을 했는데, 그건 아마 은원이 아버지의 얼굴로 너무나 따뜻한 목소리를 냈기 때문일 것이다. 그건 은원이 내 아버지였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은원이 내 아버지였다면. 이 애는 세뱃돈을 빼앗아가거나 사소한 일에 화를 내지 않았겠지. 우는 나를 보면 언제나 다정한 목소리로 달래주었겠지. 나는 내가 그것을 진심으로 원하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이 진실이 아니라서 화가 났다. 은원이 내 아버지인 삶을 살 수 없어서 화가 났다. 그건 존재하지 않는 허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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