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애 悲哀

문학소년-06

by 령욱

비애 悲哀


<제 6장>


"상심한 사랑이 노래하고, 앎의 슬픔이 얘기하고, 욕망의 우울함이 속삭이고, 가난의 고뇌가 흐느껴 운다. 그러나 사랑보다 더 깊고, 앎보다 더 숭고하고, 욕망보다 더 강하고, 가난보다 더 쓰라린 슬픔이 존재한다. 그것은 벙어리여서 목소리가 없고, 눈은 별처럼 빛난다."



왜,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슬픔은 기쁨의 또 다른 형태라고.

이처럼 비애는 행복과 더불어, 우리의 일상을 채우는 중요한 감정이다.


이번 글은,

단순하게 그저 쓰라리게 슬픈.

그런 한 사람의 비애悲哀의 세계가 있다.


이 아이는 그저 온전한 슬픔 그 자체여서,

읽고 넘기기엔 조금 거북할 수 있음을 미리 알린다.


그래서 공감을 바라진 않는다.

누가 봐도 이는 비 이성적일 테니 말이다.


그러니.

그저 이런 감정도 있구나 하며 바라봐주길 바란다.

그게 내가 바라는, 더는 비난의 시대에서 벗어나 하나의 무언갈 온전히 바라보길 원하는.

문학소년의 의의 中,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니 말이다.




"또,

피하고 싶다.


도피처가 필요하다."






<1> 당신의 조울은, 어떤가요?


도피처 逃避處


또,

피하고 싶다.


도피처가 필요하다.


어디론가 도망가고서

아무도 모르는 곳에 혼자 남아.


그렇게 영영,

사라지고 싶다.


나의 조울이 만들어낸

이 생각의 굴레에서


망상과 허무의 굴레로 가득 찬

이 끊임없는 지옥을 탈출할 수 없다면


현실에서 그만.

도망가고서 멀리 피하고 싶다.


그게 나의 부적절한 안식이다.


그게, 나의 비애悲哀이다.




<2> 마음이 빈곤해진 당신, 자책을 가장한 비난을 하진 않으신가요.


마음의 빈곤


살아갈 가치가 있을까


과연 내가 이 세상에 함께 어울려도 되는 존재일까

덧없는 삶이라 치부해 버리고서

언제나 나를 배척해 버린 사회라고 생각돼서

그들에게 어울리고자 항상 노력했는데

돌아오는 건 얼음덩어리보다 차가운 반응들인데

어쩌면 좋을까.


나를 사랑하기란 이리 어려운 건가..?

내가 이런 생각을 할 만큼의 가치가 있을까.

어쩌면, 내가 너무 비관적인걸지도 몰라.

아니야! 그렇지만 난 용서받고 싶은걸,

용서? 무슨 용서를 바라지?

어쩌면 난 지금 하는 생각조차 무엇을 의미하는 건지 모를지도 몰라..


아.


아아.


아아아아아아아..


결국 끝나지 않는구나.

내 생각의 굴레는.

나의 조울은.

나의 비애는


아,

끝끝내 불면이구나.


내게

마음의 빈곤이 찾아온거구나.




<3> 나의 슬픔은 스스로를 통찰한다, 세상이 힘들 땐 우리가 죽기 위해 산다는 것을 잊지 말자고.



죽기 위해 산다는 것.


슬퍼하는 마음으로

스스로를 대하는 이들에게 전하고자 한다.


당신의 비애는 어떠한가?


참으로 슬프기만 한가,

아니라면 그저 서글픈가.


다양한 슬픔을 채워 살아가지만.


하지만, 그럼에도

끝끝내 위로받지 못하는 당신에게 전하자면.



현실을 받아들이고,



다 괜찮다 자위질은 사실 세상 부질없는 순간의 마약이며,

스스로부터 가꾸어야 결국은 나의 주변 상황이 변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전혀 잠시뿐이 아니다. 나의 감정이고 나의 인생이다.



멀리서 바라본다면 개미 손톱만 한 찰나의 순간이지만,

그 찰나의 순간 때문에 혹은 덕분에 나의 죽음의 방향성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모든 건 내가 통제하지 않았더라 해도,

나의 선택이 가미되어 있다는 것을 끝끝내 알길 바란다.



그리고 눈을 돌려 천천히 다시 성찰을 하고 고뇌를 끝내, 성장하면 된다.



0부터 다시 끌어올릴 수는 없는 게 우리 인간인지라,

우리가 신생아의 기준점이기엔 각각의 세월을 흘려보낸지라.


완벽이란 건 불가하지만,

그 이전에 선택보단 나은 선택을 앞으로 해 나아가 더 단단해질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그렇기에 시간이 해결해 준단 그 말이다.



그렇기에 인간이 죽기 위해 산다는 것이다.




<4> 잠에 들기 전, 울적하다면. 어릴 적 그 순수했던 마음으로 야광별을 떠올려보는 건 어떠한가. 어릴 적 그 이상을 생각하며 말이다.


야광별


하늘에 떠 있는 야광별이 끈적하기만 하지는 않았다.


수 없이 바라보며 잠에 들었을,


나 말고 다른 이들을 생각해 보니


끈적하다는 생각은 잊혔다.


어쩌다, 이 야광별이 내 하루의 마지막 평안일까.


어째서, 나를 잊고서 살아가는 게 일상이 되어버린 걸까.


그런, 그런 생각에.


불면을 제쳐두고서, 순수한 마음으로 잠을 청해 본다.


마치, 밝게 빛나는 야광별이 되기를 바라며 말이다.





<5> 악어의 눈물을 가졌다. 그러니 나의 새끼에겐 보듬어줄 사람으로 거듭나겠다.

슬픔과 부정(父情)


나는 살아감에 있어,

타고나기를 타인을 부정(不正)하는 태도를 가졌다.


악어의 눈물을 본적 있는가?

어느 동물 다큐멘터리에서나 볼법한 악어의 눈물.


나의 유소년 시절은 그랬다.

실제 생물학적으로,

서글프게 울어도 눈물이 나오지 않아.

부모에게 거짓 울음이라 무시당했고


나의 슬픔은 이리저리 받은 억울함을 더해

그렇게 쌓여 결국 부정不正 을 가졌다.


그래서 그런가,

부모가 자식을 사랑한다는 마음을 잘 알지 못한다

물론,

나를 진정 사랑한다는,

그 마음 자체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만.

그들이 준 사랑의 방식이 나와 맞지 않았을 뿐이라.


나의 不正에서 나오는 말이다.


그렇기에 다짐하는 것이다.


나는 결코 내 자식이 악어일지라도,

악어에게 맞는 사랑을 주고 싶다고.


미래의 나의 아이에겐,

아이가 원하는 사랑을 주리라고.


그렇게 다짐한다.


올바른 부정父情 을 가지자고.





<6> 말할 수 없는 슬픔에, 끝내 목소리를 잃은 사람들에게 바친다.


벙어리


나, 온전한 내 선택으로

입을 닫으며 산다.


말하기가 두려워서

점차 말수를 줄이다,

끝내 벙어리가 되고 말았다.


이를 상기하고자 만 해도

마음에 크나큰 칼을 다시 찌르는 것 같아서.


혹여나 내게 힘든 일이 있냐며 물어봐도.


나의 칼이 그들에게 상처를 입힐까,

누구에게 기대기조차 미안해진다.


그래서 결국,

말하는 법을 잊었다.


그것에 관해선

벙어리가 되었다.


말하고자,

기대고자.


도움받고자 하면.


울대에서 솟아오르는 핏물이

나의 목소리를 가두고서


결국 또.

끝끝내 벙어리가 되고 만다.




<7> 순수한 슬픔이 마음을 채우는 그런 날이 있습니다. 운명이 트이는 날, 그런 날 말이죠.


느티나무


꽃이 피었다.

있을 거라곤 생각지도 못한, 500년이 넘은 나무에서.


장마가 끝나서, 그만큼의 빗물이 모여서

그래서 그런 걸 수도 있다고.


옆집 이 씨 아저씨는 그렇게 내게 일러줬다.


그리곤, 아저씨는 그랬다.

나무가 꽃이 펴서 운명이 튼 거라고.

느티나무의 꽃말이 운명이니, 아마 좋은 곳으로 갔을 거라며 말이다.


당시 다섯 살이던 내겐 아무짝에 쓸모도 없었지만 말이다.


내겐 마치

지지대 하나가 부서진 느낌도 아닌,

홀연히 사라진 느낌이었다.


어린 나무에게

지지대는.


언제나 옆에 있었고

그게 당연했기 때문에.


매번 보고 싶어 다가가면,

반기던 그 목소리, 몸짓, 얼굴.


그래서 그런가.

아직까지도 생생했다.


아직도, 그날을 잊지 못한다.


그날은 유독 바람이 선선히 불어

느티나무 밑에서 여느 때와 다름없이

매번 반기던 그 목소리를 만나고자 약속했던 시간에 나와,

홀로 쉬이 있었다.


아빠가 그랬다.

할아버지를 보려면 조금 기다려야 한다고

할아버지가, 어디 잠깐 다녀오신다고.


그렇게 하염없이, 쉬이 기다렸다.

내가 사랑한 어른을

매번 보던 그 장소에서

그렇게 바라보고 싶었다.


그래서 그날은 어지간히 오랫동안 기다렸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기다린 이유가

이상하리 만치 아빠는, 그간 할아버지를 반기러 고향으로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저 낡고 허름해 보이는

백색의 방에서, 할아버지가 계셨기에 난, 방문을 하지도 못했고.

그렇기에 그 사랑스러운 허허하며 나를 반기던 너털웃음도 볼 수 없었고

할아버지에 관해선 들려오는 말이 없었다.


그러다 어느 기회가 돼서

또 할아버지에게 달라붙으며

이것저것 물으며

병상의 위가 아닌, 무릎에 앉고자 하는 고집을 부리며

할아버지와, 약속을 하고야 말았다.


매번 할머니댁에 있는 느티나무에서 건강히 보자고, 꼭 그러자고.

약속을 하고야 말았다.


그래서 약속된 날짜까지 기다렸다.


약속된 날자가 되자,


그토록 아빠가 가지 않던

할머니 집으로 가게 됐다.


또 할아버지를 만날 생각에 너무 즐겁고 기뻤다.

아빠는 오랜만에 가는 거라 검은 양복까지 차리고 간단다.

할아버지랑 어디 간다던가.


사촌 형은 오늘을 위한 옷도 준비했고.

큰아버지는, 짐을 실을 옛날 물건들도 챙겼단다.


그렇게 정해진 시간에,

멋들어진 삼배를 입고, 가마를 지고 올라가는 사촌형을 붙잡아 물어본다.


"형아 할아버지는?

할아버지도 이런 옷 입었어??"


그러자 형이 답했다.


"응.

아주 멋지게, 정말 멋지셔

근데 령욱아.


아마 할아버지가 먼저 가셔서,

아마 그래서 못 볼 거야

당분간.


아주 멀리멀리.

그렇게 먼저 가셨어.


형은 그냥, 따라가는 거라서..

큰아버지가 그러신 거라 아마

그럴 거야."


그제야

나는,


검은 양복을 입은 아빠,

멋들어진 삼배 옷과 큼지막한 상여를 진 큰아버지와 어른들.

할아버지 사진을 들고 가던 사촌 형.


그 모든 게


내가 기다린 시간이 아니라.

그저 약속을 못 지킨.


나의 지지대가

홀연히 사라졌음을 눈치채버렸다.


그렇게

나는,


펑펑 울고야 말았다.

눈물이 가득 차서


온통 무지갯빛으로 세상이 뒤덮여서


결국,


태어나서 처음으로.

꺼이꺼이 곡소리를 내보았다.


그렇게 느티나무 밑에서

5살의 어린 나무는


떠나가 없어진 소중한 지지대를,

약속을 지키지 못한 할아버지를 원망하며 그리워했다.






4bef19d4ba19ad70a28e74372dd4607b.jpg 슬프기도 하지만, 일어나야 하겠죠. 텅 비었지만, 실체 할 테니







첫 문장.

-칼릴 지브란 명언록 中


"상심한 사랑이 노래하고, 앎의 슬픔이 얘기하고, 욕망의 우울함이 속삭이고, 가난의 고뇌가 흐느껴 운다. 그러나 사랑보다 더 깊고, 앎보다 더 숭고하고, 욕망보다 더 강하고, 가난보다 더 쓰라린 슬픔이 존재한다. 그것은 벙어리여서 목소리가 없고, 눈은 별처럼 빛난다."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