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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썸머크리스마스

좋은 사람들이 한 껏 모여서

by euuna








잘릴지도 모른다며, 되는 데까지만이라도 최선을 다해보자고 마음먹은 날도 며칠 지나갔다. 그래도 픽킹 성적 리스트에는 늘 빨간색, 오렌지색 언저리에 있었다. 그럼에도 잘리지 않을 수 있었던 건, 믿을 수 없는 일이 생겼기 때문이다. 리오에게 나와 시호를 포함해, 몇몇 워커를 정리하라던 매니저가 다른 곳으로 가게 돼, 새로운 매니저가 왔다. 새로운 매니저가 오게 됨으로써 정리되는 상황과 거리가 멀어진 거다. 이렇게 좋은 기회가 없었다. 서둘러 속도를 올릴 기회!


그런데 어젯밤, 내 이름이 초록색에 적혀 있었다. 이런 기적 같은 일이 생기다니! 어느 하루 아침에 말이다.






정말 그날은 어떻게 일을 마쳤는지 모르겠다. 몸이 뜨거웠고, 머리가 깨질 듯 아팠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기절하듯 소파에 쓰러져 내내 잠에 빠져 있었다. 일을 마치고 돌아온 히로는 불러도 대답 없는 나를 보다, 시호에게 물었다.


“왜 이래? 어디 아파?”

“아니, 오자마자 너무 힘들었는지 잠들었어.”

“저렇게 잔다고?”


히로는 내가 죽은 사람인 줄 알았다고 했다. 장난스러운 말이었지만, 처음 겪는 일이었다. 세상이 노랗게 보였다. 히로는 곧장 부엌으로 가, 소금을 한 움큼 집어 들고 왔다. 그러고서 내 입을 벌려 욱여넣었다. 갑자기 느껴지는 짠맛에 인상이 찌푸려졌다. 히로와 시호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이거 뭐야. 퉤.”

“야! 먹어! 먹어야 해.”


건네준 물을 받아 소금과 함께 삼켰다. 히로는 사뭇 진지한 얼굴로 계속해서 물을 더 마시라며 권했다. 침이 줄줄 새어 나왔다. 어찌 되었든, 히로의 직관적인 응급처치 덕에 한숨 돌려 앉아 저녁을 먹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리오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는 고생했다는 말과 함께 앞으로 이대로만 유지하면 좋겠다고 축하와 격려의 말을 해 주었다. 아무튼 해냈다!


그날 이후로 속도는 많이 올랐다. 손에 익는 건 정말 시간문제인 듯했다. 팔에는 점점 울퉁불퉁한 근육들이 생겨났다. 한국에 있는 친구들에게, 가족들에게 알통을 자랑해 보이기도 했다. 트롤리에 딸기 퍼넷이 가득 채워진 트레이를 25개를 올렸다. 덜덜 떨리는 팔과 뻐근한 손목은 딸기 농장에서 탈출해야만 낫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요령이 생겼다. 손목의 힘으로만 밀었던 트롤리를, 어깨의 힘으로 밀게 되었고 그러다, 등 근육을 사용해서, 뱃심과 허벅다리의 힘까지 합세해 밀었다. 어느덧 배에도 희미하지만 생전 처음 보는 복근도 생겼다.


‘이러다 나 몸짱이 되는 거 아니야?’





밥도 엄청나게 먹었다. 한국에서 나는 입이 짧기로 유명했다. 제하기도 잘해, 밥을 몇 공기씩이나 먹은 작은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다. 여기서는 배가 자주 고파졌다. 어떤 날은 두세 그릇씩 먹기도 했다. 매일 건강한 음식을 해 먹으려 하고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니까 몸이 좋아져 간다는 게 느껴졌다. 히로와 시호도 마찬가지였다. 규칙적인 생활과 하루의 패턴이 점차 익숙해졌다. 무리라며 울었던 시호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다. 시호에게도 고비의 순간이 지나, 여유가 생겼고 웃음이 늘었다.


프리미엄 딸기도 어렵지 않은 일이 됐다. 프리미엄 딸기는 날마다 제출해야 하는 개수가 달랐다. 조회 때, 얼마큼 만들어야 하는지 듣고 나면, 무조건 한두 시간 내로 완성 시키고자 노력했다. 그렇게 프리미엄을 제출하고 나면, 일반 딸기를 따는 게 너무나도 쉽게 느껴져서, 마음가짐에 큰 득이 됐다.


어느 정도 요령이 생기고 나니, 일상이 갖춰져 나갔다. 농장은 이틀 일하고 나면, 하루는 꼭 쉬어야만 했다. 딸기가 자랄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불안하던 때에는 휴일을 받아도 쉬는 기분이 들지 않았다. 제대로 잘하지도 못하는 데, 꼭 쉬어야 하는 휴일이 오히려 더 부담되곤 했다.


불안정한 시기가 지나갔다. 시호와 나는 본격적으로 타즈매니아를 즐기기 시작했다. 처음 가보는 동네들을 돌아다니며, 좋은 카페와 장소들을 찾아냈다. 도장 깨기를 하듯 지도에 저장해둔 곳들을 다녀오면서, 다음 휴일을 기약하곤 했다. 그사이 우리는 더 가까워졌다.


서로의 언어를 가르쳐주고 문화적 차이에 관한 이야기도 마음껏 펼쳐 나갔다. 한국과 일본의 역사나 관계에 관한 토론도 과감하게 넘나들면서, 유년 시절에 대해, 어느 추억에 대해, 어떤 단어에 대해 이야기장을 무궁무진하게 넓혔다.



- 시호와 다닌 호바트의 좋은 곳들



익숙하지만서도 흔치 않은 날들도 생겼다. 어느새 우리 하우스에는 5명이 지내게 되었다. 새로 맞이한 워커들과도 가까워졌다. 휴일이 맞는 날이면 시원한 맥주도 함께 하며 비자를 받고 나서 이어질 여정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 집에서, 앞 옆집 셰어하우스 사람들과도, 매일 태워주는 픽업 차 안 워커들도, 컨트랙터 리오와 리오의 친구들과도 친해졌다. 타즈매니아의 인연들이 점차 늘어나고 소중해져서 또 다시 떠나게 될 날이 벌써 걱정됐다. 하지만, 이렇게 만나는 인연이라, 짧은 순간임을 알기에 더 소중한 것도 있었다.


리오의 친구는 호바트에서 가장 유명한 곳, 마운트 웰링턴에 데려갔다. 구불구불한 길을 끝없이 달렸고, 산의 정상에 올라 호바트를 내려다보았다. 시원한 바람과 호주에서 처음으로 간 산의 전경은 정말 멋있었다.



- Wellington Mountain



얼마 남지 않은 크리스마스. 올해는 처음으로 해외에서, 그것도 썸머 크리스마스를 보낸다. 멜버른에서 보내겠지 싶었는데, 타즈매니아라니. 시호와 히로 그리고 나는 호바트 시내에 있는 커다란 K마트로 가, 30불씩 모아 트리를 샀다. 남은 돈으로 전구와 장식품도 샀다. 그 무렵 엄마가 한국에서 보낸 택배도 도착했다. 트리를 장식해 꾸며두고 택배를 정리한 후 소파에 앉아 게임했다.


나는 8월이면 캐럴을 들었다. 겨울보다 여름에 캐럴을 더 많이 들은 거 같다. 뜨거운 여름이면 겨울이 그리워졌다. 기다려지는 날이 있다는 게 좋았고, 착각이겠지만, 캐럴을 듣고 있으면 시원해지는 기분도 있었다. 여기서는 안성맞춤이었다. 썸머 크리스마스니까. 더울 때 듣기 좋은 노래 캐럴과 딱 맞는 분위기였다.



- 타즈매니아에서의 크리스마스



페이슬립을 다 채우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1~2주면 세컨드 비자 신청을 위한 페이슬립이 완성된다. 마지막이란 생각을 하면, 뿌듯하고 참 개운하고 후련하다. 그렇지만, 어딘가 모르게 섭섭한 마음도 있다. 그리고 시호가 걱정스럽기도 했다. 농장에 늦게 합류한 시호는 우리가 떠나고 나서도 한 달 하고도 조금 더 있어야 했다. 그래도 밝은 시호를 챙겨줄 다른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생각이 들지만, 종종 시호와 대화할 때면 불안한 마음은 숨길 수없는 듯했다.


“너희 가면, 나는 이제 어떡해.”라고 장난스럽게 말하는 시호였다.

“너도 딱 한 달만 하면 끝나고, 이제 딸기도 잘 따게 됐으니까 조금만 참으면 돼!”하면서도 외로움을 많이 타는 시호가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말하고 또 말하는 거지만, 이별은 참 쉽지가 않다.


일본에 있는 친구들에게 크리스마스 편지를 보내고 싶다는 시호를 따라, 편지지 가게에 갔다. 어떤 카드가 예쁘냐며 비교해달라는 시호를 보고 문득 나도 쓰고 싶었다. 보고 싶은 친구들. 호주에 가겠다고 결심 후 오랜 친구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며, 고마운 마음들을 끝도 없이 받았다. 한 치 앞도 모르는, 어쩌면 무모한 여행은 무조건적인 응원에 힘입어 시작했다. 시호와 함께 편지지를 사고 돌아와 거실 테이블에 앉아 한참 동안 편지를 썼다.


- 한국 친구들에게


- 시호에게



호주에서 맞이하는 연말은 보고 싶은 가족들과 친구들 때문에 울적해지기도 했고 새롭게 만난 친구들 덕에 외롭지 않았다. 이별이 슬프고 아쉬운 건 여전한 일이지만, 기약 없는 약속일 뿐이라도, 언젠가 어디선가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란 믿음으로 다음을 향해 발을 내디뎠다. 그다음에는 다른 이들이 또 기다리고 있었다. 반복되는, 이 세상의 이치가 내 세상을 키워갔다. 떠날 때 행복을 빌어주고 싶은, 빌어줄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 무렵, 같이 지내던 하우스 메이트들이 떠났다. 농장에서 잘리게 되면서 더 이상 있을 수 없게 됐다. 정말 아쉬웠다. 좋은 언니들을 이렇게나 한꺼번에 다 떠나보낸다니. 그 뒤로도 몇몇 친구들이 왔고, 우리와 같은 농장에 배정받지 않아,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머지않아 다 잘려서 떠나게 됐다. 한 달도 안 되는 시간 동안 너무 많은 사람을 만나고 보냈다. 환영회 끝으로 송별회가 계속해서 찾아왔다. 이별 편지도 몇 번이나 주고받았다. 이곳을 나가 다음을 맞이할 그들이 행복하길 빌었다.






시호는 연말 여행이 계획되어 있어, 딸기 농장에 휴일을 냈다. 나는 그동안 혼자 출근했다. 다행히 친해진 워커들도 많아져 무료하지만은 않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리고 새로 온 일본인 친구들과도 친해졌다. 오키나와에서 온 하나와 아야미라는 친구였다. 하나는 한국어로 인사를 할 줄 알았다. 시호가 없는 동안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지금은 여행 중인데, 내 친구도 일본인이야. 여행에서 돌아오면 소개해 줄게.” 시호가 돌아오면 무척 기뻐할 거 같았다.

“와! 좋아!” 하나와 아야미도 기대되는 듯했다.


농장에 있던 몇몇 일본인 친구들이 떠났고 그 사이 시호는 조금 더 울적해졌다. 함께 지낸 하우스메이트들도 계속해서 떠났고, 시호와 방을 함께 쓰는 사람들이 몇 번이나 바뀌었다. 시호는 새로운 사람이 오면 마음으로 그 사람이 제발 잘리지 않길 바라고 또 바랐다고 한다.


사교성이 좋은 시호가 하나와 아야미와 친해지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을 거란 걸 알고 있었다. 어서 빨리 돌아와, 친해지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시호가 없는 동안, 하나와 아야미랑 시간을 보냈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혼자 앞서 나가는 생각일지도 모르겠지만 하나와 아야미가 있다면 시호가 덜 외로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끝까지 잘 버텨내는 힘이 생기길 바랐다. 이제 더는 네거티브 포테이토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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