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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요술 봉이 있다면, 내겐 돌멩이가 있어

돌멩이가 요술봉이 되었던 나의 어린 시절

by gamyong

너에게 요술봉이 있다면,

내겐 돌멩이가 있어.


내 나이 5살,

유치원에 갓 입성해 사회라는 것을 경험하고 있었다.


새로운 관계,

새로운 말들..

많은 새로운 것들이 내 머릿속을 소용돌이쳤다.


그중 나를 가장 벙찌게 만든 사실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여자애들은 요술봉과 공주 세트가 1개씩은 꼭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렇다. 한글도 갓 뗀 나에게 가장 큰 충격을 안겨준 것은

'요술봉'이었다.


기껏해야

레고 몇 조각, 인형 몇 개 있는 나로서는

엄청난 충격이었다.


그리고 지난날, 언니랑 술래잡기하거나 흙을 헤치며 놀았으니 요술봉의 존재를 몰랐었다.


요술봉을 보니, 친구들의 분홍색 머리핀과 방울 머리끈이 보였고,

반짝반짝 빛나는 책가방, 장난감 반지가 보였다.


난 작고 앙증맞은 아이템 1도 없다는 사실에 좌절했다.


그때부터 나의 목표는 요술봉을 손에 넣는 것이었다.


딸만 셋 있는, 고정된 장난감은 사주지 않겠다는 신념을 가진 엄마는

내가 아무리 졸라대도 요술봉과 공주 세트를 사주지 않으셨다.


나는 요술 봉을 포기해야 했다.


하지만, 마음속에선 언젠가 요술봉을 손에 넣겠다는 욕심을 품고 있었다.


역시 간절함은 기적을 낳는 것일까?


어린이집 바자회에 요술 봉이 나왔다.


엄마에게 요술봉을 졸라대던 모습을 안쓰럽게 보시던 할머니는

주머니에서 2천 원을 꺼내며요술 봉을 사라고 하셨고,

난 쾌재를 부르며, 뛰어가 호기롭게 ‘요술 봉 얼마예요?!’를 외쳤다.


그때의 설렘과 호기로움을 넘어서는 순간을 만난적이 없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3천 원’이었고,

나의 작은 희망은 수포로 돌아갔다.


한 반나절, 시무룩해 아무것도 못했던 게 어렴풋이 기억난다.


그 이후로도 난 요술 봉을 가져본 적이 없다.


겉으로 요술봉 따윈 필요없다고 했지만, 마음 속으론 아니었다.


그때 당시, 요술 봉을 가지면 모든 할 수 있을 거 같았으니깐.

나만 없다고 생각했으니깐.


공주 세트까진 바라지도 않았다.


괜히 요술 봉 때문에 우리 반 예쁜 여자애와 나를 비교하기도 했다.


지금은 그때의 ‘나의 시기심’이 너무 귀엽게 보인다.


엄마, 아빠가 들으시면 ‘그냥 사줄 걸 그랬나..’하며 후회하시겠지만, 그러지 않으셔도 된다.


유치원에선 요술 봉 유행은 지나가고 유희왕 카드가 바로 유행했으니깐.


어쨌든, 지금 돌이켜 보면, 그때 요술 봉을 갖지 않았던 게 아쉽진 않다.


나는 요술 봉이 없었기에 나뭇가지로 요술 봉을 만들었다.


이걸로 이상한 주문을 외우며 놀았고,

가끔 낚시 대로, 피리로 변했다.


공주 세트가 없었기에 풀을 뜯고 돌멩이를 주어 요리 놀이를 했고, 가끔 신기한 돌멩이를 찾는 모험 놀이도 했다. 매일 언니, 동생, 동네 친구들과 뛰어다녔고, 그들과 같이할 새로운 놀이를 고민 했다.


가끔 술래잡기, 보물찾기, 괴물 무찌르기가 합쳐진, 신기한 놀이를 만들기도 했다.


나는 어린 시절 흙을 만지면서 컸고, 작은 물체보단, 큰 세상을 누비며 상상력 있는 아이로 자랐다.


가끔 신기한 생각을 하며 웃는 ‘나’도,

새로운 세상을 도전하고 재밌는 스토리를 상상하는 '나’도 그때 만들어진 게 아닐까? 라고 생각한다.


핸드폰이라는 작은 요술 봉을 갖고 있는 지금, 나뭇가지가 요술 봉이 되던,

돌멩이 하나로도 재밌었던 그때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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