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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비 Jun 12. 2021

당신이 불행한 이유

 

“언니, 아무래도 난 전생에 나라를 팔았나 봐”

아끼는 후배의 뜬금없는 넋두리에 적잖이 당황했다. 

전생까지 들먹이며 자신은 되는 일도 없단다. 세상 사람 죄다 행복해 보이는데 왜 이리 불행한 거냐고 한탄했다. 세상에서 나만 불행한 것 같은 생각은 누구나 한 번쯤은 아니 자주 느끼는 감정이다.

‘왜 나만 불행한 것일까?’     


사실 내가 의아했던 건 누가 봐도 후배는 딱히 부족해 보이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나운서 출신의 스피치 강사였으며 아카데미를 차려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출산 때문에 잠시 일을 쉰 적은 있었지만, 만삭 때도 강의를 다닐 정도로 열정이 있었고 외모도 출중해 오히려 그녀를 부러워하는 사람도 많았다.  그런 후배를 불행의 늪으로 빠지게 한 장본인은 다름 아닌 SNS였다.

SNS 속 친구들은 넓은 아파트에 새로 산 화려한 가구들로 꾸며놓고 살고 있다면서 그걸 보니 자신의 집이 그렇게 초라해 보일 수가 없단다. 어떻게 한 세트에 수 백 만원하는 티포트를 한 달에 한 번꼴로 사는지. ( 그렇게 비싼 찻잔이 있는 줄도 몰랐던 내가 놀랍다.) 자동차는 또 얼마나 자주 바꾸는지. 명품백을 전시해 놓은 드레스룸을 보니 눈이 뒤집힐 지경이었다고 했다.  

   

“너 당분간 SNS 안 하는 게 좋겠어.”

가능할 일일지 모르겠지만 일단 해보겠노라고. 맥 빠진 목소리로 전화를 끊었다.

전과 다르게 활기가 없고 어두운 터널에서 빛을 쫓느라 멍해진 눈을 하고 한숨만 쉬었던 이유를 그제야 알 수 있었다. 후배는 양손에 불행을 조장하는 기계를 움켜쥐고 스스로 상처를 주고 있었다.  

    

 SNS엔 절망이 없다. 아니 있어서도 안 된다. 그곳은 자신의 행복한 한때의 일상(때론 연출된)을 대놓고 타인에게 보여주는 곳이기에 절망이 있을 수 없다. 절망은 타인의 행복에 비해 초라하게 느껴지는 자신에게 있을 뿐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다른 사람보다 돋보이길 바란다. 더 나은 존재가 되고 싶다. 랜선 너머 다른 세상에서 사는 듯한 사람들의 환상적인 모습에 주눅 드는 건 비단 후배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예뻐 보이고 멋져 보이고 더 있어 보여야 ‘좋아요’ 한 번이라도 더 받을 수 있다고 믿고, 부러움 가득한 댓글이 자신에 대한 인정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당신만 불행한 이유는 안에 있는 행복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밖에서 찾아 헤매느라 쓸데없는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디에 존재하는지 모르니 기약 없는 여행을 다니느라 정신이 없다. 세상은 넓고 나보다 행복한 사람들로 넘쳐나니 매번 상처받는다. 당신은 지금 티켓을 움켜쥐고 다른 세상을 꿈꾸지만,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르고 스스로 불행 열차에 올라타고야 만다.  

    

 자신의 행복과 불행을 결정짓는 잣대를 이미 타인에게 쥐여 준 사람이 행복할 리 없다.

누군가와 비교하며 나의 가치를 잃어가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일까? 내가 그 사람보다 못할 이유가 없으니 조금이라도 앞지르고 싶어 부족한 자신을 채찍질하는 것은 타인의 시선에 갇혀 결국 자신의 가치를 깎아내고 있는 것일 뿐이다. 더 나은 미래를 꿈꾼다지만 결국 나의 행복을 타인에게 저당 잡히고 마음은 늘 질투심에 불타오른다.     


 누군가의 행복이 나의 불행이 되어서는 안 된다. 타인의 시선에 맞추느라 자신에게 상처를 주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이다. 꽃길만 걷고 싶지만 온통 가시밭길만 나오는 현실에 때론 힘들어질 수도 있다. 세상은 나를 방해하는 장애물로 가득하고 불행의 여신은 빚쟁이처럼 나만 따라다니는 것 같다.  

   

 애니메이션 영화 [쿵푸팬더]의 주인공 포는 용의 전사가 누가 될지 궁금해 제이드 궁전으로 향한다. 마음속으로는 쿵푸를 좋아하고 무림의 고수를 꿈꾸지만, 포는 팬더다. 곰이 쿵푸를 한다는 발상 자체가 어이없었을까. 자신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라는 생각에 그저 보는 것에 열광할 뿐이다. 

 포가 용의 전사가 뽑히는 장면을 보기 위해 제이드 궁전으로 가는 길엔 많은 장애물이 도사리고 있었다. 국수 수레를 맡긴 아버지, 끝없는 계단, 뚱뚱하고 약한 체력, 닫혀 버린 문.......

수많은 시도 끝에 다 꺼진 줄 알았던 폭죽이 살아나면서 포는 하늘로 솟았다가 궁전 안으로 떨어진다. 그 순간이 용의 전사를 뽑는 시간과 맞물리며 포는 그야말로 얼떨결에 용의 전사가 된다. 그것을 용납할 리 없는 시푸 사부는 뭔가 잘못되었다며 우그웨이 사부에게 ‘우연의 일치’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저 소 뒷걸음질 치다 쥐 잡는 격이 아니면 설명이 안 되는 상황을 인정하지 않았다.     


 세상에 우연은 없다네.”

포가 용의 전사가 되도록 만들었던 건 궁전으로 가기 전에 만났던 수많은 장애물이었다. 만약 그 장애물들이 방해하지 않았다면 과연 포가 용의 전사가 될 수 있었을까? 

내 삶을 방해하는 수많은 장애물은 훗날 인생에 없어서는 안 될 디딤돌이 될 수도 있다. 알다가도 모를 세상은 가방끈이 짧아 어린 나이에 일을 시작했던 사람을 유명한 CEO로 만들기도 하고 지하 단칸방에서 시작한 소박한 신혼이 캐리어를 끌며 세계 일주를 하는 노년을 보내게도 한다.      


 가고자 하는 방향과 다르고 지금 발밑에 돌부리만 가득하다고 해서 인생 전체가 불행한 것은 아니다. 꽃길이 아니면 그 길에 씨를 뿌리고 꽃길로 가꿀 수 있다. 누군가의 꽃길을 쫓는 것보다 자신만의 꽃길이 더 아름다울 수 있다. 


지금 우리를 불행하게 하는 것, 상처 주는 것들은 대부분 타인이 아닌 내 안에서 나온다. 끝없는 비교와 절망으로 자신을 가둔 것은 바로 ‘나’다. 마찬가지로 상처와 불행을 딛고 일어설 힘을 주는 것 역시 자신이다. 아무도 자기 방 열쇠를 함부로 남에게 맡기지 않는다. 하물며 내 행복과 불행을 결정짓는 일을 타인에게 맡길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누구에게나 인생의 장애물은 있기 마련이지만 자신을 의심하는 순간 극복할 수 있는 장애물도 넘을 수 없는 마음의 성벽이 되어 더 험난한 가시밭길로 보낼 수도 있다. 불행은 언제든 행복으로 바뀔 수 있고 상처는 치유될 수 있다는 믿음을 놓아서는 안 되는 이유다.      


불행의 가장 큰 원인은 다른 사람의 행복을 과대평가하는 데 있다

                                                      -마거릿 토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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