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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섭 May 26. 2022

상처줄 용기가 있어야 미움받을 용기가 생기는거 아이가





“사람들이 뒷담 깔때마다 내가 호응 안 해주거든”

“뭐 어떻게 하는데"

“그냥. 어떤 어떤 쌤이 좀 그렇지 않냐라고 하면, 하핫. 저는 잘 모르겠는데요? 하면서 간다고.”

“뭔 느낌인지 알겠다. 그러면 다음부터 니한테 말 안 걸제?”     


 오랜만에 학교 교사일을 하고 있는 친구 H로부터 전화가 왔다. 요즘 꽤나 스트레스를 받고 있나 보다. 학교에서의 일을 주저리주저리 한다. 듣고 있으면 꽤나 재밌다. 물론 옛날 같았으면 팩폭으로 오지게 뚜드려 준 다음 친구의 눈물을 쏙 뺐겠지만. 지금은 사회성이 장착된 지성인이다. 적당한 공감을 섞어서 대화를 지속했다.

  

 그렇다고 공감을 억지로 한 건 아니다. 나도 이 친구와 비슷한 경향이 있었으니까. 나 같은 경우, 누군가 내 앞에서 타인의 뒷담을 하려고 하면 계속 같은 말을 반복한다. “아 그래? 그럴 수 있지!”라고 말이다. 듣다 보니 진짜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서 그런 거다.


 그러다 보면 대화가 곧 끊긴다. 그리고 그 사람은 다음부터 내 앞에서 타인의 뒷담을 하지 않는다. 다른 곳에서 내 욕을 하겠지만 신경 안 쓴다. 귀찮거든.


“어 맞다. 그래서 그런지 어떤 쌤이 사람들 다 같이 모인 곳에서, 나한테 쌤은 속 얘기 안 하시잖아요. 막 이러는 거야.”

“뭔데 꼽주노. ㅋㅋㅋㅋ 니 뒷담까고 다니는 거 아이가”


 그래. 학교 선생님도 성적순으로 뽑히지 않는가. 생계를 위한 직장일 뿐이다. 만인에게 존경받을 선생님도 있겠지만 모든 교사에게 청렴한 인간성을 기대하는 것은 욕심이다.


“뭐 그러겠지. 여기도 소문 진짜 장난 아니다. 저번에는 나보고 여우 같다고 했다가 이제는 곰 같다고 한다고.”

“각자 만나서 곰인지 여우인지 정한 다음에 소문 퍼트리라고 해라”


 바보 같은 친구의 성향을 훤히 알고 있는 내 눈에는 H가 곰으로 보인다. 왜 그렇게 생각하냐고? H는 지가 원하는 삶을 살겠다고 쓰리잡을 뛰며 땀을 뻘뻘 흘렸던 애다. 싸운 친구들을 화해시켜 주려고 혼자 끙끙대던 애다. 여우랑은 거리가 굉장히 멀다.


 그런 애한테 여우라고 하다니. 뭔가 이상한 느낌이들었다. 그래서 그 두 소리를 했던 사람이 동일인물인지 물어봤다.


“아, 설마 같은 사람은 아니제?”

“맞다.” 


 혹시나 했더니 역시였구나. 내 말에 긍정하는 친구. 




“뭔데 그 새키는” 


 친구의 대답을 듣고 급발진 해버렸다. 이건 공감을 위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입을 함부로 놀리며 헛소문 퍼트리는 것들은 내가 제일 극혐하는 부류거든. 아주 그냥 좋은 말이 나올 수가 없다.


“니 그 말 듣고 아무 말도 못했제?”

“아니거든. 나도 한마디 했거든?”


 한 마디 하기는 개뿔. 딱 봐도 눈에 선하다. 자기 딴에는 반격이라 생각했겠지만, 아무런 데미지도 없는 꿈틀거림이 전부였을 거다. 그리고 분위기를 흩트리지 않기 위해 “하핫”하고 웃었겠지. 

    

“니 그거만 딱 말해라. 웃었나 안 웃었나?”

“웃었긴 웃었는데 ….”     


 아이고 두야. 역시나 웃었단다. 분위기가 어색하니까 웃고. 빨리 그 자리에서 벗어나고 싶으니까 웃고. 뭐라 할 말이 없어서 웃었을 테지.     


“왜 웃노. 웃지 마라. 그러니까 무시당하지”

“빨리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기도 하고 …”     


 벗어나고 싶으면 파쿠르를 하든가. 지가 뭔 아이돌이냐. 온종일 웃고 있게. 아주 그냥 답답하다.     


“웃을 이유가 없는데 왜 웃노”     


 물론 나도 그딴 헛소리를 퍼트리는 인물과 마주친 경험이 있다. 그때마다 광견병 걸린 개처럼 침 질질 흘리면서 싸웠다. 하지만 그다지 도움은 되지 않았다. 앞에서는 미안하다고 하더니 뒤에서는 더 소문을 퍼트리고 다니더라고.     


 그래서 지금은 개소리를 뱉는 사람이 나타나면, 그냥 못 들은 척한다. 이게 그나마 군더더기가 없었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면서 내 일에만 집중하고 있으면, 지 혼자 뻘쭘해져서 알아서 꺼지니까.     


 뒤에서 소문을 퍼트리든가 말든가 그딴 건 신경을 쓰지 않는다. 어차피 여기에서 저쪽 욕하고 저기에서 이쪽 욕하는 것들은 어디에나 있잖아. 그냥 극장의 나무1 정도로 생각할 뿐이다.     




“아니, 안 웃을 이유도 없잖아. 괜히 상처 주기도 싫고 받기도 싫은데”

“상처 줄 용기가 있어야 미움받을 용기가 생기는 거 아이가”     


 상처 줄 용기라고 하여서 일부러 누군가를 선제타격 한다는 말이 아니다. 그저 나 자신을 공격하는 자들을 위해서는 노력을 전혀 하고 싶지 않다는 말이다. 상대방이 상처받지 않게끔 말을 이쁘게 돌려 말하거나 분위기를 전환하려는 노력 말이다.     


 그 노력을 오로지 나 자신에게 집중시킨다고나 할까. 이게 정답인지 오답인지 모르겠지만, 그냥 친구한테 한마디 하고 싶어서 이렇게 길게 풀었다.     


‘친구야 괜한 것들을 위해 상처받지 마라. 니가 더 중요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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