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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섭 May 05. 2021

떳떳한 직장이 없으면 연락을 안 할 것 같아요



  

 2020년 6월. 대학교 동기이자 친한 동생인 L을 만났다. 그는 마지막 학기 종강 후 바로 고향에 내려갔었다. 그래서 약 6개월 만의 재회였다.     


“시험은 어땠노?”

“그냥 첫 시험이니까 경험 삼아 친 거죠. 아직 공부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그날은 L이 공무원 시험을 치고 온 날이었다. 공부한 지 6개월밖에 되지 않았던 그는 가벼운 마음으로 첫 시험을 쳤다고 한다. (‘공시생이 공부도 안 하고 여기서 뭐 하냐!’라고 할 사람도 있겠지만, 시험이 끝나고 잠깐의 휴식을 취하는 건 국룰 아닌가? 항상 놀기만 하던 그가 갑자기 공부를 시작했으니 몸이 보통 쑤신 게 아닐 테다.)


“26살 모쏠. 연애 한 번 못해보고 졸업한 느낌은 어떤 느낌이고?”

“닥쳐요. 형”     


 그렇다면 친구로서 당연히 어울려 주는 게 인지상정이지. 평소처럼 얄궂은 농담을 던지는 게 전부지만 말이다. 그렇게 농담 따먹기를 얼마간 했을까? 문득, 이런 모습은 우리의 일상이었는데 이제는 날을 잡고 따로 만나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벌써 졸업이네. 시간 빠르다.”     


 오랜만에 그를 만나니 옛 생각이 떠오르며 가슴이 뭉클해진다. ‘겨우 6개월밖에 안 지났구만 뭔 청승이냐!’라고 생각할 수 있도 있다. 하지만 그와는 군 제대 이후에 쭉 같이 살았었다. 정확히 2017년부터 2019년까지 살았다. 항상 같이 있었기에 6개월의 공백이 더 크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물론 룸메이트는 L말고 더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총 5명이 같이 살았다. 한 방에서 성인 남성 5명이 살았다는 말이지. 말하지 않아도 그림이 그려지리라. 돼지우리처럼 부대끼는 삶. 그렇다고 그렇게 나쁜 환경은 아니었다. 사람마다 청결함의 기준이 다를 수 있겠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나름 살만했다. 그러니 몇 년 동안 한 번도 안 싸우고 같이 살았던 것 아니겠는가.




 다만 말 그대로 미친 듯이 놀았다.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소주병 쌓기에만 바빴다. ‘청년은 미래’라는 말을 누가 하였을까? 그가 그때의 우리를 보게 된다면 뭐라고 말할지 참으로 궁금하다.     


“역시. 대한민국의 미래는 참으로 밝구나. 자! 너희들에게 대한민국의 미래를 맡기겠다!”라고 하지는 않을 테지.     


 하여튼 우리는 대표적인 ‘노답 인생’의 표본이었다. 미래와 진로 생각은 때려치우고 청춘을 즐기기에만 바빴다. 남들이 다 따는 ‘토익이니 한국사니’ 우리는 그런 개념도 없었다. 학점은 당연히 뒷전이었다. 그냥 하루살이처럼 하루를 살았을 뿐이다.     


 그런데 웃기게도 우리들의 종착지도 공무원이었을까? 결국에는 친구들이 하나 둘 공무원 준비를 하러 떠나기 시작했다. 같이 살았던 5명 중 3명이 공무원 준비를 했다.     


‘다음은 누구 차례일까? 내 차례일까? 나 또한 공시생의 행렬에 합류하게 될 운명일까?’     


 공무원을 절대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스스로에게 한 줌의 의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 의심이 커질수록 여러 의문들이 파생되기 시작했다.     


‘왜 다들 공무원에 목을 매는 거지? 그놈의 공무원이 뭐라고 이것밖에 답이 없다며 신성시하지? 우리가 아무리 문돌이긴 하지만 할 수 있는 일이 이것밖에 없는 건가?’     


 답이 없는 자문자답. 그 답을 친구에게 물어봤다.     


“근데 공무원을 왜 할라고 하는데?”

“공무원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 딱히 좋아하는 것도 없고요.”     


 내 질문에 L은 공무원 말고 할 게 없다고 답했다.     


“없다고?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냐? 일이야 가서 배우면 되잖아. 그리고 나는 직업을 쫓는 시대는 이미 갔고 기술의 시대가 왔다고 생각하는데, 앞으로 공무원도 짤리는 시대가 오지 않을까?"

“그냥 모르겠어요. 딱히 하고 싶은 일도 없고. 음, 뭐라고 해야 할까. 남한테 꿀리는 직업? 떳떳한 직장이 없으면 아무한테도 연락을 안 할 것 같아요. 뭔가 쪽팔린 것 같아서…”     


 K는 공무원을 통해 떳떳한 직업을 도출한 모양이다. 부정하진 않겠다. 이해가 되는 말이다. 아니. 애초에 내가 그의 선택에 대해 왈가왈부 할 자격은 없다. 그의 인생은 오로지 그의 몫이니까. 다만 스스로에게 떠오르는 의문이 해결되지 않아 조금 찝찝할 뿐이었다.




“그래 열심히 해라. 짜슥아”


 공무원을 준비하러 가는 그에게 내가 해줄 말은 이게 전부였다. 그래도 이놈은 걱정하지 않는다. 돼지우리에 살던 5인방 중에서 그나마 자기관리를 하던 놈이었기 때문이다. 자기가 했던 약속은 변태처럼 지켰던 놈이었으며 어디서 모난 행동은 하지 않던 사람이었으니까.


 그날의 만남 이후로 이 녀석과는 가끔 연락이 닿았었으나, 정확히 2020년 8월 15일에 연락이 끊겼다. 나 뿐만이 아니라 주변 모두와 연락이 되지 않는다. 아무리 카톡을 날려도 아직까지 ‘1’이 사라지지 않는다.


 아마도 ‘떳떳한 직장이 없으면 아무에게도 연락하지 않을 것 같다.’라는 말을 지키기 위함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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