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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운 Mar 08. 2021

도시락파와 급식이파

우주의 기운을 모두 끌어 쓰며 만드는 도시락 & 급식

# 도시락 세대

  이른 아침, 식탁 위는 빈 도시락통에 의해 이미 점거된 상태였다.
바리케이드 없는 농성장은 그러나 일사불란한 엄마의 밥과 반찬 투척으로 뚜껑이 닫히며 정리가 되었고 이내 조용해졌다. 대화와 타협 없는 시위의 진압은 적게는 1개, 많게는 8개의 도시락과의 전쟁을 15년간 치러온 내공의 소유자가 아니라면 감히 엄두도 못 낼 신공이다.
아침마다 벌어지는 지난한 전투.

  형제들은 각자의 일정대로 일어나 이열 종대로 늘어선 도시락을 하나 혹은 두 개씩 가방에 넣고 등교를 했다. 형제들이 우르르 현관문을 빠져나간 후, 쌓여있는 설거지 거리를 망연자실 바라보며 엄마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을까? 안도의 쓴웃음을 삼키셨을까?


  나는 도시락 두 개에 마음이 든든해졌었다.

밤 10시 야간 자율학습이 끝날 때까지 하루를 책임져줄 전투식량이었다. 엄마의 아침잠과 손끝의 정성이 녹아있는 도시락은 언제 어떻게 먹어도, 식어도 달고 맛있었다.


  도시락에는 십중팔구 유리병에 담긴 김치(혹은 볶은 김치), 멸치볶음, 어묵조림, 콩자반, 분홍 소시지, 계란 프라이 중 무엇인가 들었을 것이다. 운 좋게 불고기나 장조림, 돈가스, 봉지 김이 반찬이라면 도시락 뚜껑을 열자마자 무차별적인 젓가락 공격을 받아 초토화될 것이다. 사실 도시락은 열기도 전에 뒤죽박죽이 돼 있을 때가 많았다. 콩나물시루 버스에서 이리저리 뒤채였을 것이고 지각을 면키 위해 교문까지 전력질주를 했다면 십중팔구 비빔밥이 돼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제발 김치 국물이 교과서를 물들이는 일만은 일어나지 않기를 바랐다.

계란 프라이 위에 밥을 덮은 위장술만은 항상 유효해서 밥과 함께 계란까지 떠먹으면 아무도 건드리지 못했다.


  교실로 들어서 책상에 가방을 내려놓고 의자에 털썩 앉자마자 밀려오는 공복감.

 “아침밥 먹고 왔니?”

 “아니, 10분만 더 자자 했다가 늦었지 뭐, 못 먹었어, 너도?”

 “응, 못 먹었지. 배고파”

우리는 항상 아침부터 배가 고팠고 먹고 뒤돌아서도 배가 고팠고 체육시간 끝나면 배가 고팠고 야간자습시간에는 정말 배가 고팠다.


  1교시 끝나고 쉬는 시간은 으레 도시락 까먹는 시간이었다. 정말 배가 고픈 친구들은 아침 조례 끝나자마자 후다닥 까먹기도 했다. 꽉 닫힌 창문 덕에 교실은 시큼한 김치 냄새와 진한 양념 냄새로 채워졌다. 풍기는 냄새 때문에 한 친구가 먹기 시작하면 도시락 까먹기는 삽시간에 교실에 전염이 되었다.

도시락 뚜껑을 열지 않고는 배겨낼 수 없었다.


 “야, 도시락 먹고 창문은 열어야지. 창문 열어~ㅅ”

 정도면 양반이다. 훌륭선생님 되시겠다.

 “언 놈이야, 도시락 까먹은 쉐키 나와!”

참을성이 부족하신 분이다. 전날 부부싸움을 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아침을 안 먹고 출근했다에 묻고 더블로!

욱~ 하신 선생님 덕에 도시락 들고 10분간 복도에서 손들고 많이도 서 있었다. 도시락 들고 서 있던 그 순간에도 분홍 소시지를 꺼내 먹으며 얼마나 키들댔었던지...


첫째 5살 때, 유치원 가지고 다니던 도시락통을 꺼내 아침 식사를 챙겨놓고 출근을 했다. 정신이 없어 젓가락도 짝이 틀리다^^



# 급식 세대


  우리 아이들은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다닐 때, 빈 도시락통을 가지고 다녔다. 유치원에서 도시락통에 음식을 담아 먹고 집에서 씻어 빈 통을 다음날 보내는 시스템이었다.

도시락 쌀 일이 없어 바쁠 것 하나 없는데도 지난밤 도시락통을 씻지 않아 부랴부랴 아침에 씻을 때도 있었다. 엄마 세대들이 보셨다면,

 “이런 정신머리 없는 것을 봤나!” 하며 혀를 차셨을 거다.


  초등학교 때부터는 그마저도 가지고 다니지 않았다. 차가운 식판에 밥과 반찬을 배식받는 소위 급식 세대였기 때문이다. 나를 비롯, 엄마들은 아주 살판이 났다. 도시락을 싸지 않는다면 돈을 내고도 급식을 먹일 판에 재작년부터는 고등학교까지 무상급식이다.


왼쪽은 ‘중3 급식이’가 먹을 아침, 오른쪽은 남편의 도시락

 # 우리 집 도시락파, 급식이파


  그렇게 한동안 도시락의 ‘도’자도 꺼낼 일 없이 편했었는데 작년부터 슬슬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다.

우리 집에 도시락파와 급식이파가 생긴 것이다. 한 지역 내 조폭 양대 산맥도 아니고 두 계파의 형성과 성장은 나를 심하게 위협하고 있었다.


  코로나 단계가 격상되면서 남편 회사에서는 삼삼오오 몰려나가 점심 먹는 것을 삼가라고 하는 모양이었다. 식당에서 혼밥 먹는 것에 익숙지 않은 남편은 도시락을 싸가야겠다고 했다.


  온라인 수업을 하는 아이들은 학교 가는 날과 수업하는 시간이 달라 함께 식사하기 불편해지자 각자의 식판을 각자의 방으로 들여주는 배달을 원했다.

배달의 민족, 후예 맞다. 그 피가 흐르고 있다.

 

보리굴비와 소고기 고추장볶음이 인상적인 남편 도시락(위), 참치마요와 소고기볶음이 엄청 들어간 아이들 급식, 폭탄주먹밥(아래)

  

  나는 도시락 싸기와 식판 배달의 사명을 띠고 꽤나 진심을 다했었다.

남편의 social position과 체면을 고려하여 다른 직원들이 보기에 초라하지 않아야 했고, 고3 딸의 건강을 책임져야 했고, 중3의 심기를 건드려서도 안되었다.


디저트로 준비한 카프레제의 재료는 마와 토마토, 그 위에 꿀과 발사믹 소스를 뿌렸다(왼쪽), 초밥 위 다양한 토핑의 도시락과 급식(오른쪽)


# 도시락이라는 말


  그런 낱말들이 있다.

입으로 말을 꺼내거나 머릿속에 떠올리기만 해도 흩어져 있던 자음과 모음, 낱말과 어휘가 섞이고 절과 구가 덧붙여져 수많은 문장이 만들어지는 낱말.


  ‘도시락’이라는 낱말이 그렇다.

많은 이야기와 추억이 깃들어 있다.

내가 다니던 학교마다 난로 하나 없어 도시락을 구워 먹어보지는 못했지만 도시락을 가운데 두고 책상과 의자를 붙여 빙~ 둘러앉아 서로 나눠먹던 친구들 얼굴과 이름은 선명하고도 뜨겁다.

서로의 꿈을 응원하며 의기투합했던 전우였기에 더욱 뜨겁다. 그립다.


# 나의 도시락

 

  나는 오늘도 우주의 기운을 모두 끌어 쓸 심산으로 도시락과 급식을 준비한다. 엄마와 아내의 마음이다. 나의 뜨거운 마음까지 녹였으니 ‘약이다’ 생각하고 푹푹 떠먹어 드시라, 식어도 쓱쓱 비벼 드시고, 쌀 한 톨까지 남김없이 드시라.


  그것이 도시락과 엄마에 대한 깔끔한 존경과 예의이다.


  두 급식이들, 일어나라~ 둘 다 학교 가는 주다.

진짜 급식 먹고 와라~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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