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소운 Jul 20. 2021

여름엔 열무김치, 열무김치 하면 콩국수지!

   '구름 갈 제 비 간다’는 말이 있다. 요즘 날씨가 이렇다. 솜사탕 같은 구름이 하늘 가득 피었다 지평선 쪽으로 내려갈 때면 소나기가 신고식을 하듯 한차례 퍼붓고 지나가니 하는 말이다. 오늘도 구름이 모였다 흩어질 무렵 비가 내렸다. 게다가 비 내린 자리에는 선물처럼 커다란 무지개가 놓였었다. 하늘의 반을 가르는 돔형 쌍무지개였다. 여기저기서 무지개 사진을 보내줘 우리 동네에는 뜨지도 않은 무지개를 원 없이 구경했다. 덥고 습한 여름 한낮에 펼쳐진 깜짝 이벤트였다.


@초이스 작가님이 보내준 서울하늘에 뜬 돔형 쌍무지개


  이 속담은 ‘구름이 가면 비가 뒤따른다’는 뜻으로 ‘바늘 가는데 실 가고 바람 가는 데 구름 간다’는 속담과 같은 뜻으로 쓰인다. 서로 아주 가까운 관계가 있는 것끼리는 쉽게 떨어지지 않고 언제든지 꼭 따르게 된다는 말이다. 하나일 때보다 하나가 더해짐으로써 어떤 일이나 현상이 비로소 완벽해진다는 의미이다. 네가 있음으로 내가 있다(I am because you are)는, 모든 것이 얽혀 하나로 되어 있다는 ‘인과의 법칙’을 관통한다.


  바늘과 실은 서로 다른 재료, 다른 쓰임새를 갖고 있지만 바느질이라는 일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성을 갖고 있다. 짝꿍처럼 커플처럼 꼭 붙어 있어야 되는 단어들이다. 이런 짝꿍 단어들은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볼트와 너트, 연필과 지우개, 젓가락과 숟가락, 책상과 의자 등등. 하나가 빠지면 나머지 하나로는 전혀 쓸모가 없어지거나 기능성이 반감되기도 한다.


  음식에도 이런 환상의 커플들이 있다. 둘이 함께 딱 붙어서 죽고 못 산다고 앙탈을 부려줘야 음식 맛이 살아나기에 여름철 땀띠 나도록 붙어있어야 하는 것들이다. 하나가 빠지면 섭섭하다 못해 대성통곡, 울고 갈 일이다.


  복국에 미나리가 빠지면 앙꼬 없는 찐빵과 같다. 닭백숙에 대추와 마늘이 빠진 격이다. 쇠고기 육회에 단백질 분해 효소가 함유된 배가 빠지면 야들야들한 식감과 깔끔한 맛은 포기해야 한다. 마른오징어는 땅콩에 돌돌 말아 잘근잘근 씹어야 제맛인데 땅콩이 빠지면 콜레스테롤 수치에 신경을 써야 한다. 오이소박이에 부추를 슴덩슴덩 썰어 넣어야 찬 성질과 더운 성질의 음양이 조화롭다.


완성된 열무얼갈이김치(위) 찹쌀풀, 간 홍고추가 들어간 열무김치 양념 베이스(아래 좌) 부추와 함께 버무린 오이소박이(아래 우)


  이렇듯 여름철 밥상에도 하나가 빠지면 서운한 것이 있다. 바늘에 실 가듯 여름 밥상에 따라붙어야 하는 필수템인데, 바로 열무김치 되시겠다. 열무김치가 여름 밥상에  없어서는 안 되는 이유는 찰떡궁합을 자랑하는 ‘짝꿍’이 많기 때문이다.


  꽁보리밥에 당연한 열무김치, 비빔국수엔 열무 고명, 비빔밥에도 의당 열무, 포슬포슬 삶은 감자 위에도 진심 열무김치, 슴슴하고 수수하고 고담한 콩국수에도 두말하면 잔소리, 세말 하면 숨 가쁜 열무김치!


  그리하여, 이 더위에도 불구하고 열무김치를 담기로  한 것이다. 열무김치를 담글 때는 열무로만 김치를 하는 것보다 얼갈이와 1:1 비율이나 2:1 비율로 담그면 시원하고 맛이 좋기에 열무 한 단, 얼갈이 한 단을 사 왔다. 양념 베이스에는 홍고추 7개를 갈아 넣고 찹쌀풀도 첨가했다.(밀가루풀도 가능하다) 이왕 김치하는 김에 열무김치만 하기 섭섭해 오이소박이도 함께 담갔는데 날이 더워 하루를 밖에 놔두었더니 신냄새 진동하도록 제대로 익어버렸다. 내가 좋아하는 신김치다.


  콤콤하게 신 열무김치를 보니 열무김치의 짝꿍, 콩국수가 또 생각이 났다. 끝말잇기라도 할 참이다.

‘여름엔 열무김치, 열무김치엔 콩국수지!’


  콩국수를 위한 콩국은 동네 ‘대박집’에서 한 통에 3 천 원 하는 것을 3통이나 샀다. 여름 한 철 파는 이 집 콩국은 맛이 좋기로 소문이 나서 아침 9시에 들여오면 12시가 안돼 다 팔리고 만다. 단골이란 이름으로 손바닥을 비벼가며 전날, 미리 값을 치르고 빼 달라 부탁을 하여 확보하였다. 세상에 쉬운 일이 하나 없다. 한여름엔 콩국수 먹기도 이렇게 쉽지 않다.


콩국 한 통은 시어머님께 드리고 왔는데, 보내온 콩국수 사진이 내 콩국수랑 똑같이 열무김치가 올려져 있다. 왼쪽이 내가 만든 콩국수.


  세 통 중 한 통은 시어머니께 드리고 두 통을 집으로 가지고 와서 한 통은 아이스커피처럼 하루 종일 세 번에 나눠마시고 한 통으로는 콩국수를 말아먹었다. 올여름 들어 첫 콩국수다.

 ‘아이고, 콩국수야, 너 본 지 오래다!’

콩국수 위로 열무 얼갈이김치와 오이소박이 한쪽을 잘라 고명으로 썼다. 뽀얀 콩국에 금세 시뻘건 김치 물이 스며든다. 고소한 냄새와 신 냄새가 훅~ 끼쳐온다. 시원하고도 칼칼한 자유를 쭈욱 들이켰다.

 ‘와~아, 좋다!’

감탄사 이외에 다른 말들은 존재 가치를 잃었다. 그래, 여름엔 콩국수 한 사발이 진리인 게다.


  그런데, ‘콩국수가 너무 맛있구나!’ 보내온 시어머니 콩국수 사진과 내가 해먹은 콩국수 비주얼이 똑같다. 삶은 계란 반쪽에 열무김치 고명, 무심한 듯 깨소금 솔솔. 이렇게 해 먹자고 서로 입을 맞추었다고 해도 믿을 만큼 닮은꼴이다. 한 지붕 아래 같이 살지는 않았지만 함께 음식을 나눠먹고 얘기하며 지낸 세월이 20년이니 식성도 알게 모르게 비슷해지는 것이리라. 콩국수가 열무김치를 부른 때문이기도 하지만...


껍질째 씻어 삶은 폭폭한 감자 위에도 진심 열무김치지!


  콩국수를 시원하게 먹고 난 후, 입가심은 껍질째 폭폭하게 삶은 감자였다. 강원도 감자바우는 앉으나 서나, 오며 가며 삶은 감자 하나씩은 물고 다니기 마련이다.

 ‘여름엔 열무김치, 열무국수엔 콩국수, 콩국수 먹은 후엔 삶은 감자지!’

끝말잇기에 또 하나의 짝꿍 단어가 추가되었다.


  힘과 공을 들여 열무김치와 오이소박이를 담가 놨으니 당분간은 반찬 걱정 없이 보낼 수 있겠다. 아이들은 돼지고기 수육을 먹을 때도 돈가스를 먹을 때도 라면을 먹을 때도 찬밥을 먹을 때도 열무김치를 짝꿍 삼으니 반찬 걱정을 덜 수 있다는 얘기다.


  푹푹 찌는 여름, 폭폭 익은 열무김치에, 시원한 콩국수 한 그릇이면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이제부터는 푹푹 쪄댈 한 여름 무더위만 남았으니, 점심으로는 고민하지 말고, 걱정하지 말고, 묻고 따지지 말고 ‘열무김치 얹은 고소한 콩국수’로 정하시길 바란다.







<열무김치 효능>

열무김치는 비타민A, C와 사포닌 성분이 풍부해 항산화 작용 및 면역력 강화에 도움을 준다. 베타카로틴과 사포닌 성분은 혈중 콜레스테롤 감소에 도움을 주어 혈액순환 및 각종 혈관질환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 특히 식이섬유가 풍부해 다이어트에 좋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