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일본인 친구 #18

-교헤이 찾는다아~~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인다~~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인다~~


밤이면 기숙사는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 문을 잠갔다. 2층과 3층 창문은 철창이 있고 4층은 차마 뛰어내릴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들 사이의 숨바꼭질 규칙은 이랬다. 1. 다른 사람의 방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 2. 화장실 칸에 들어가 문을 잠가서는 안 된다. 3. 동이 틀 때까지 잡히지 않으면 내일 하루 동안 어떠한 위해도 가하지 않겠지만 아닐 경우 그가 좋아하는 물건을 하나씩 없앨 것이다. 교헤이는 두 번 진석의 청을 거절했다. 그리고 핸드폰과 노트북의 가족사진-누나와 함께 찍은 사진은 모두 지워졌다. 진석은 알고 있었다. 그가 밤이면 누나의 이름을 말하며 눈물을 흘리는 걸 잠든 척하며 지켜봤던 것이다. 진석은 교헤이의 지갑에 있던 누나와 찍은 사진을 빼앗고는 놀이를 신청했다. 교헤이는 부엌에 숨었다. 그는 식칼을 집어 들었다. 진석이 100을 세는 동안 시나리오를 생각했다. 등에 식칼을 숨긴다. 그가 자신을 발견하면 놀란 체를 한다. 진석이 웃음을 터뜨리고 뒤돌아서는 사이 그의 등을 찌른다. 바닥에는 통조림을 둘 것이다. 진석은 밤에 배가 고파 부엌을 향했다가 어떤 부주의한 놈이 바닥에 둔 통조림에 발이 미끄러져 넘어졌다. 그때 주방수납장 위에 부주의하게 둔 칼을 건드리고 그게 떨어져 등을 찔렀다 생각하게 만들 것이다. 어차피 중국 놈들은 대충 넘어갈 테니까. 이 기숙사에 CCTV라곤 없으니까.


교헤이는 진석을 기다렸다. 동이 틀 시간이 다가올수록 초조해졌다. 피로가 덕지덕지 쌓일 무렵 조금씩 해가 보였다. 그가 안도의 숨을 내쉴 때 머리 위로 조각 난 악어가 떨어졌다. 교헤이는 깜짝 놀라 비명을 지르며 일어섰다. 깔깔거리는 웃음소리를 듣고서야 바닥에 떨어진 악어고기에 눈이 갔다.


-야, 교헤이, 실망이다. 너 나 찌르려고 했냐? 나도 그럴 줄 알고 준비했지.


일본인은 악어 머리 옆에 떨어뜨린 식칼을 보고 망연자실했다. 동시에 진석이 손에 쥔 야구방망이가 그의 배를 강타했다. 교헤이는 구토를 내뱉으며 바닥에 쓰러졌다.


-뭐, 규칙은 규칙이니까 다음엔 꼭 이기라고, 알겠지?


교헤이의 라이터가 사진을 태운다. 누나와의 기억이 재가 되어 사라져간다. 멀어져가는 진석을 바라보며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배를 움켜쥐고 연기를 들이키는 일뿐이다. 눈물과 콧물과 침이 얼굴을 적신다. 왜 먼저 떠나간 거야, 누나.


*


-진짜? 학교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고?


**대학에는 부속대학으로 전문여대가 있다. 경호학과 남학생 몇 명이 이 전문여대 여학생 8명과 실랑이가 붙었고 폭행까지 갔다고 한다. 문제는 그 폭력의 강도였다. 남학생들은 다른 친구들까지 불러 여학생들을 무차별로 폭행했다. 그들이 배운 경호기술을 거는 건 물론 팔다리가 다 빠져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재미있다며 영상으로 찍었다고 한다. 여기까지만 해도 문제인데 더 큰 문제는 다음에 일어났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은 건지, 괴롭히다 보니 희열을 느껴 내면의 악마가 깨어난 건지 녀석들은 ‘꽁짜로 여자랑 할 수 있는 기회’라며 단톡방 마다 연락을 돌렸다. 8명의 여학생들은 밤새 몰아치는 남학생들에게 강간과 폭행을 번갈아 강했다. 그런 사연이 있으리라곤 진석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학과 남학생 단톡방에 누군가 공짜로 여자를 따 먹을 수 있다며 장소를 올렸고 그는 향했다. 장소는 어두웠고 적색의 조명만이 시야를 밝혀주었다. 여자들은 모포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고 남자들 중 몇 명은 모포를 밟거나 손으로 때렸다. 그들 중 한 명이 이런 가학적인 놀이를 좋아하는 년들이라고 말해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다.


-그때 주동자 중 몇 놈을 학교에서 1차로 조사했나봐. 그리고 걔들한테서 이름 나온 애들을 2차로 조사하고. 왜 중국 가기로 한 애들 중에 대부분이 갑자기 안 나타났다고 네가 그랬잖아. 그 애들이 다 2차 때 이름이 나왔던 애들이더라고.


재석은 편의점 도시락을 먹으며 말했다. 진석은 튀김우동 컵라면 면을 넘기기 힘들었다. 홀짝홀짝 국물만 마셨다.


-그래서 학교에서는 그 애들 어떻게 처리한다니?

-뭐, 알겠지만 경호학과는 신입생 안 받는 거로 결정 났어. 대부분이 가담자라 다 퇴학처리하기로 했고. 거기 교수들이 사건을 은폐시키려 했지 뭐야. 교수들도 다 해고당한거지, 뭐. 다른 학과 애들도 마찬가지야. 학장이 명문대에서 일어날 수 없는 사건이라며 화를 냈다나봐. 이거 제대로 처리 못하면 학교 위상이 떨어진다며 전원 퇴학처리 하라고 말했다고 하더라. 피해자 측에서도 다 사법처리하기로 결정했다고 하더라고. 그러니까 가담한 새끼들이 누구인지는 학교에서 조사하고 그 후에 경찰이 처리하는 거지, 오케이?


진석의 이마에서는 땀이 흘러나온다. 라면 국물에 땀이 떨어진 줄도 모른 채 휘휘 면을 저어댄다.


-사실 내가 널 부른 이유가 있거든. 애들 중 하나가 네 이름을 말했어. 누군지는 모르겠는데 그 장소에서 널 봤다는 거야. 노란머리에 뿔테안경, 누가 ‘진석이 형 오셨어요?’라고 말하는 걸 들었대. 교수님이 먼저 나한테 물어보라고 하셨어. 네가 절대 그럴 놈은 아니라고 하시더라고. 진석아, 너 맞아?


복잡한 수수께끼의 답은 풀렸다. 중국에 함께 간 일행들이 진석에게 보였던 반응, 여학생들의 기분 나쁜 표정, 진석만 떼어놓고 술을 마시러 갔던 일들. 그들 사이에는 이미 소문이 돌았던 것이다. 2차에서 이름이 나오지 않아 중국에는 올 수 있었지만 이후 누군가의 입에서 이름이 등장했고 카카오톡으로 퍼졌던 것이다. 진석 본인만 모르게. 학교의 상징인 백호상 앞에서 후회를 반복한다. 왜 그랬을까. 왜 그런 병신 같은 짓을 했을까. 난 정말 병신인가. 대체 이 대학에는 무슨 수로 온 걸까. 상황파악이 그리 안 되는 건가. 진석은 고등학교 때 친구들에게 툭하면 한 소리 들었다. 매일 근심을 달고 살아봐야 뭐하느냐. 넌 너무 근심이 많다. 그래서 우울하고 기분 나쁘다. 대학에 들어가면서 이런 모습을 바꾸기 위해 노력했다. 오늘 알게 되었다. 근심 없이 사는 사람은 없다. 다만 무게가 다를 뿐이다.


-이 씨발 새끼들아, 사람은 매일 걱정하면서 살아가는 거야. 너희 부모들도 매일 빚이나 갚으면서 신세 한탄하면서 살아간다고 개새끼들아. 그런데 지들이 어디서 지랄이야. 인간도 덜 된 것들이. 인간이면 겪을 수밖에 없는 고통과 아픔도 모르는 것들이 왜 지랄이냐고.


그는 혼잣말을 내뱉으면서 집을 향했다. 반나절을 멍한 상태로 있었다. 수업도 빼먹고 연락도 받지 않았다. 어두워진 하늘과 밝아진 가로등 아래를 걸어가며 머리를 굴리고 또 굴렸다. 그때 누군가 등을 때렸다. 그건 주먹이 아니었다. 살짝 스치긴 했지만 고통의 강도가 달랐다. 진석은 고개를 돌려 뒤를 보았다. 다시 한 번 망치가 그의 눈앞을 지나갔다. 망치를 집어던진 남자는 주머니에서 단도를 꺼내 휘둘렀다. 손으로 막는다는 게 손바닥에 크게 상처가 났다. 이번에는 가슴을 긁고 지나갔다. 뒷걸음치는 진석은 어둠으로 사라져가고 다가오는 남자는 불빛 아래 모습을 드러낸다.


-교, 교헤이........


그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일본인은 다시 칼을 내찌른다. 아슬아슬하게 끝이 배에 걸렸다. 진석은 아픔을 참고 발로 교헤이를 걷어찬다. 그리고 냅다 뛰기 시작했다.


-거기서! 거기 서라고!


진석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잠시라도 한눈을 팔았다간 그의 칼이 목을 찌를 것만 같았다. 교헤이는 느렸다. 숨은 금방 차올랐고 발걸음은 느려졌다. 진석은 자주 다니는 미용실 건물 뒤편에 몸을 숨겼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교헤이는 일본어로 뭐라 내뱉더니 사람들 사이로 사라졌다. 진석은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미용실로 뛰어들었다. 미용실 주인은 피를 흘리는 그의 모습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학생, 왜 이래? 무슨 일이야?

-빨리, 빨리 밀어줘요, 빨리.


진석은 뿔테 안경을 쓰레기통에 집어던지며 말했다.


-무슨 소리야, 밀어달라니?

-빨리 내 머리를 싹 다 밀어달라고! 어서!


*


한국으로 출국하기 전날이었다. 태형은 풋살 인원이 부족하다며 진석의 방을 찾아왔다. 평소에는 따돌렸으면서 꼭 필요할 때만 부르는 모습이 가증스러웠지만 남은 시간을 딱히 교헤이를 괴롭히는데 보내고 싶지 않아 수락하였다.


-근데 2명이 부족해서요. 형 룸메도 같이 하면 안 될까요?

-야, 교헤이! 너도 나와라.


교헤이는 진석의 말을 순순히 따랐다. 상대는 중국인들이었는데 유니폼이 제각각이었다. 그들은 조끼도 없다며 그냥 게임을 하자고 말했다. 경기가 시작되고 교헤이는 패스 미스를 남발했다. X맨처럼 상대에게 공을 주고 상대에게 패스를 했다. 중국인들은 ‘쎄쎄’를 연발하며 여유있게 리드를 가져갔다. 참다못한 진석은 그의 멱살을 쥐었다.


-야, 소심한 복수냐? 죽여 버린다, 진짜.

-잠깐 헷갈렸어. 이제, 이제 다 기억해. 제대로 할게, 진짜.

-뭐가 헷갈려? 이 새끼 축구 유니폼 더럽게 많아서 잘하는 줄 알았는데 축구 지능이 쓰레기네. 넌 아군이랑 적군도 구별 못하냐? 눈이 사시야?

-이제 유니폼을 다 기억했으니까 잘 할 수 있어, 잘 할 수 있단 말이야!


그 말뜻을 이해하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진석은 태형과 유니폼을 바꿔 입었다. 안경을 그에게 씌웠다. 둘은 머리색이 노란 색이다. 그리고 태형한테 교헤이를 때리는 척 해보라고 말했다. 교헤이는 기겁하며 입에 거품을 물고 말했다.


-알았어, 내가 미안해, 잘못했어! 잘못했다고! 제발 때리지 마. 가기 전까지 때리는 건 너무하잖아!


그때 진석은 알았다. 교헤이는 안면실인증이라는 걸. 일본 놈들은 교헤이를 위해 멋있지도 않은 축구 유니폼을 입고 다녔던 것이다. 진석은 후회를 접었다. 교헤이는 자신을 죽이고 싶어 한다. 그렇다면 그를 위해 죽어주자. 그래, 어찌되었건 ‘김진석’이 죽으면 되는 거 아닌가.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나의 일본인 친구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