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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의식에 집착은 금물

학교 문학교육의 잘못된 점 중 하나를 뽑자면 지나치게 주제의식에 집착한다는 점이다. 교과서에 실리는 글이다 보니 학생들에게 교훈을 줄 수 있는 주제가 담긴 글을 선정하고 이를 가르친다. 이런 분석에 익숙한 이는 예술작품을 접할 때 의미를 찾는다. 학부시절 친구 중 한 명은 소설이나 시를 읽지 않고 논문만 봤다. 문학은 남는 게 없다는 게 이유였다. 이런 교육의 문제는 영화를 볼 때도 발생한다.     


모든 영화가 의미 있는 주제의식을 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코미디 영화에서 교훈을 찾으려 하고, 스릴러 영화에서 주인공의 행동에 의미를 부여한다. <덤 앤 더머>를 보면서 웃음을 빵빵 터뜨리는 코미디를 느껴야 하는데 친구의 우정에 더 중점을 두고 감동을 말하는 노릇이다. 그러다 보니 다소 불손한 의도를 지닌 영화는 올바르지 못하다는 이유로 반감을 산다.     


<킬러 인사이드 미>는 사이코패스인 주인공이 어떻게 범죄를 저지르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디테일하게 그 내면을 묘사한다. 그런데 범죄자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진행되다 보니 다소 불쾌한 느낌을 준다. 결말이 권선징악도 아니고 범죄에 대한 두려움이나 공포를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다. 영화를 본다는 건 사람을 만나는 것과 같다. 당신이 만나는 사람은 모두 신사에 근사함을 지닌 명작은 아니다.     


때로는 불쾌한 사람도 만나고, 소모적인 대화만 유도하는 사람도 만난다. 어떨 때는 두려운 사람과 마주해야 할 때도 있다. 그럴 때 우리는 일부러 예의를 차린답시고 그 사람의 좋은 점을 발견하려고 노력하거나 거짓으로 그 사람을 포장하기도 한다. 주제의식에 대한 집착은 이런 거짓과 같다. 본질이 무엇인지 마음으로 빤히 느꼈음에도 머리로 다른 이야기를 내뱉는다.     


앞서 언급했던 <성스러운 것>이란 영화를 볼 때 그랬다. 미소녀 판타지라는 걸 빤히 보여주고 있음에도 교훈이 있을 것이라 여겼고 영화에 대한 열정과 꿈이 아닐까 싶었다. 마음은 본질을 봤는데 머리는 교육의 잔재로 확고한 주제의식을 찾으려 들었던 것이다. 영화의 주인공은 사람이다. 동물이 주인공인 영화도 의인화를 시킨다. 그래서 다양한 삶의 모습을 그려낸다. 때로는 교훈이 없는 삶도 있다.     


우리가 친구를 만나 나누는 대화를 생각해 보면 내 인생에 있어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은 많지 않다. 사소하고 의미 없는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친구를 만나는 건 마음에 쌓인 스트레스를 풀고 공감을 느끼기 위해서다. 하루 종일 방에 틀어박혀 책만 읽으면 의미 있는 나날을 보내겠지만, 우리의 몸은 그렇게 설계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달달함을 느끼기 위해 로맨틱 코미디 장르를 택하고, 긴장감을 얻으려고 스릴러 장르를 찾는다.  

   

주제의식을 찾으려는 생각은 거창한 글을 쓰고자 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교훈과 깨달음, 사회적인 메시지가 담긴 글은 남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줄 것만 같다. 인상적인 글은 그 영화의 본질을 솔직하게 적는 글이다. 친구의 이야기를 의미 있게 이해하려고 하거나 거창하게 답변을 하면 오히려 공감을 얻을 수 없다. 글을 읽는 건 친구를 만나는 거처럼 공감을 느끼기 위해서란 걸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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