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저녁 잠을 자고 났더니 밤 12시다. 내내 뒤척이다가 시계를 보니까 한 시간밖에 지나지 않았다. 잠자리에서 공상하는 거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곧장 일어났다. 갱년기 때도 그랬고 지금도 어쩌다 잠이 오지 않는 밤에는 수면제 역할에 제격인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그랬다. 그러던 사람이 요즘엔 한 가지가 더 늘어 낮에 하다만 뜨개질까지 하게 되었다. 뜨개질을 시작한 지가 벌써 3년째가 되는 것은 우리에게 코로나 19라는 불운이 닥친 때와 시기가 같다. 코로나19도 3년째, 뜨개질도 3년째.
이제 곧 코로나19는 역사 속으로 묻히면서 우리네가 겪는 질병의 한 형태로 남겠지만, 나의 뜨개질도 과연 그럴까.
의구심이 드는 건 그것이 할 때마다 좋은 생각이 자꾸 들고 새로운 계획이 생기고 희망 뭐 그런 것이 꼬물꼬물 맘속에서 움직이는 것이 어찌 보면 중독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중독이 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주로 가방을 뜨는데 처음 그러니까 가장 처음에 가방의 형태를 만들어내기만했는데도 내가 엄청나게 대단하게 여겨지고 뛸 듯이 기뻤던 기억으로 보면 어딘가 바보스런 데가 있는 것 같기도 한데 일단 그 후로도 날이 거듭할수록 솜씨라는 게 생기는 것 같아 보인다. 그래서 새로이 작품을 만들게 되고 또 감탄을 연발하고.
사실혼자서 자아도취에 빠져있는 것만은 아니다. 가족들의 평을 듣기도 하고 때때로 수정도 하고 그런다. 신작이 나오면 같이 뜨개질하는 지인들에게 들고 달려가면 서로 예쁘다고 칭찬해 주니까 실제로는 어떤지 모르지
만 '나 소질 있나 봐' 하며 속으로 좋아 죽겠는 거다. 혹여 그간에 칭찬에 너무 목이 말라 있었던 건 아닐까?
백화점의 평온한 일상을 표현한 그림
그런 가운데 얼마 전 필요한 게 있어서 몇 년 만에 백화점엘 갔다. 동행이 있어 구입할 것을 다하고 7층 차 마시는 곳을 찾아가 봤다. 예전엔 뭘 하나 더 팔까 하고 온갖 세일 물건을 가득 채워놓던 곳을 모두 비우고 널따랗게 차를 마시면서 즐길 수 있게
해두었다. 거기다 대형 그림 하나가 실제인 듯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데 그 안에는 들로 산으로 떠나는 형형색색의 사람들이 그려져 있었다. 그 그림은 어제를 말했던 걸까 아니면 돌아올 날에 대한 상상의 그림이었을까. 하여간 그 그림이 지금인 것처럼 사람들은 삼삼오오 앉아 차담을 나누고 있었다.
그렇다면 내게도 4월의 설악산 봉정암 산행일정이 있지 않은가. 뜨개질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또 하나의 꿍꿍이가 생겨났다.
산에 오를 때 휴대폰 가방이 따로 있으면 가끔 사진을 찍거나 전화를 받을 때 편리하겠구나 하는 생각에 동행자 8명의 가방을 떠보기로 계획을 하게 되었지 뭔가. 구상 끝에 한 작품을 해봤더니 바닥 색이 좀 어설퍼 다른 방법으로 해봤다. 노력의 대가였는지 생각보다 훌륭한 게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