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니또르쟈니 Dec 31. 2019

신정 특식

냉이 굴전

 영하 11도, 체감온도 영하 17도

옷을 세 겹을 입어도 차가운 바람은 어디로든  내게 달려 들으려고 혀를 날름댔다. 12월 31일이라는 느낌 자체가  그냥 보내기에는 서운하고 해서 빠지지  않고 운동에 나갔다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점심을 하고  시장을 배회했다.  손에는 두터운 장갑을 껴서 어떻게 지갑을 꺼내야 할지  엄두도 나지 않는  엄동설한에 추위를 참지 못해  농협에 들어가 녹차를 한 잔 하면서 냉기를 좀 녹였다.


 몸에 온기가 돌자, 시장으로 다시 나가서 시금치(섬초)를 사려는데 야채가게 안쪽에  뿌리가 실한  냉이가  자루에서 걸어 나오려는 듯  빳빳하게 들어차 있다.  

 "저,  시금치도 주시고 냉이도 좀 주세요."

다시 입김을 내고 수다를 떨며 걸어오다가 굴도 사고 꼬막도 사는데 생선가게 아주머니의 노란 장화가 눈에 들어온다. "추운데 애쓰시네요.!"

그러니까 "아유 추워.!"

 그러신다.  속으로  양말이나 따뜻하게   신으셨나 싶다.  냉랭한 손으로 겨우 굴과 꼬막 값을 치르고 돌아서려는데  아주머니가 "새해  복 많이들 받으세요." 그러신다.  한기가 어디로든 빈틈만 있으면 스며들려고만 하는 날씨에  그런 인사를 할 겨를이 있으실까 싶은데 , 정말이지 그렇게 친절한 인사는 바라지도 않는데 사람들은 참말로  정성으로 살고  착하다는 생각이  얼어붙으려는 머리에서 떠올랐다.


 애쓰는 사람들의 덕분이겠지만, 하여간 집에 와 나물을 다듬고, 굴도  씻어서 두었다. 출출하려는 시간에 이것저것 넣어서  전을 만들어 보았더니 맛이 특별하다. 입안에 넣자,  뜨거운 것이 터지는 순간 굴의 육즙과 잘게 썰어서 가끔 씹히는  냉이 뿌리의 둔탁한 식감, 그리고  조선간장의 담백한 맛과  고명으로 얹어진  붉은  청양고추  조각의 어울림은 이 깊어가는 겨울이라는 터널 속의 보배로운 향연이다.  


 그저 기쁘고 금방  힘이 생겨날 것 같은 맛.


 사진을  찍어  직장에서 일하고 있는 가족들에게 올리면서 신정 특식이라고 말했더니, 지금   일하다 말고 집으로 가고 싶다고 한다.  '종무식이 끝나면 곧장 오겠지.' 맛나게 만들어 주려고 한다.  


 기억이 나지 않을까 봐 뭘 넣어 만들었는지

자세히 써보려 한다.


 냉이 굴전에 넣은 것들


1. 소금 뿌려 씻은 굴

2. 잘 다듬어 3~4회  씻은 후 곱게 다진 냉이

3. 튀김가루 3분의 1

4. 감자녹말가루 3분의 2

5. 콩기름과 들기름

6. 붉은 청양고추 썬 것-고명으로 사용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작가의 이전글 까페라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