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 길어서 다 안 써지군요
에프킬라에 맞아 죽는 나방이 될지, 카메라에 찍힐 나비가 될지
1.
“번데기요.”
21살, 대학교 2학년. ‘지성과 글’ 수업시간. 자신을 한 단어로 표현해보라는 교수님의 말이 끝나자마자, 옆자리에 앉은 ‘진규’와 실컷 잡담을 나누었다. ‘현주네 포차’의 닭볶음탕과 ‘풍년 포차’의 닭볶음탕 중 어떤 것이 더 맛있는가? 열띤 논쟁을 벌이던 중 어디선가 들리는 내 이름 석자에 벌떡 일어나 생각해낸 단어다.
“왜 번데기죠?”
5초 만에 뱉은 레토르트 단어에 무슨 의미가 있겠냐 만은, 첫 수업이니 만큼 고심한 흔적이 묻어 나오는 그럴듯한 설명을 덧붙여야 했다.
“에프킬라에 맞아 죽는 나방이 될지, 카메라에 찍힐 나비가 될지… 아무도 모르니까요.”
40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모두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는데, 그들의 눈동자 속에는 실제 번데기를 마주한 것 마냥 께름칙함이 묻어나 있었다. ‘그렇게 별로인 대답인가?’
2.
24살, 대학교 4학년. ‘스피치 토론 실습’ 시간. 사물을 이용해 1분 자기소개를 하라는 교수님의 말씀에, 나는 또 한 번 번데기를 꺼내 들었다.
“1년의 휴학 기간, 종로에 유명한 토익 강사가 있다고 해서 열심히 수업을 들었습니다. 자격증 하나는 기본이라 하길래 KBS 한국어 능력을 땄습니다. 유효기간 2년이 지나면 사라질 껍데기들을 열심히 모았습니다.”
“그런데 껍데기도 쓸모가 있었습니다. 4학년이 된 지금, 모아둔 껍데기들을 제 주변에 차곡차곡 쌓았습니다. 그 어떤 공격도 막아낼 병사의 갑옷처럼 촘촘하고 단단하게 쌓았습니다. 개강파티에 오라던 후배들의 연락을 단칼에 거절했습니다. 족발을 사주겠다는 고향 친구의 연락도 막아냈습니다. 일명 취업준비생. 줄여서 취준생. 다른 말로 번데기. 한 마리의 번데기가 되어 은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학생들의 한쪽 눈에선 ‘측은지심(惻隱之心)’이, 다른 눈에선 ‘동병상련(同病相憐)’이 느껴졌다.
“제가 불쌍하신가요? 아니면 여러분의 모습인 것 같아 슬프신가요? 걱정하지 마세요! 번데기는 에프킬라에 맞아 죽는 나방이 될지 카메라에 담길 나비가 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우리 모두 2년 후 껍질을 까고 세상에 나올 것입니다. 멋진 나비가 되어 말입니다!”
나를 위한 것인지, 리액션 점수를 위한 것인지 모르겠으나,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3.
“나방일까? 나비일까?”
밤은 산과 하늘의 경계를 무너트려 세상을 하나의 까만 덩어리로 만든다. 퇴근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아침의 부산스러운 공기와는 다른 정적 속에, 나지막한 어둠이 짙게 깔려 있다. 할 일만 서둘러 마무리하고 나왔는데도 이미 12시가 넘어 있었다.
5시간 자고 출근하나, 4시간 자고 출근하나 피곤한 건 매한가지. 맥주 한 캔을 들고 종로에 있는 ‘시인의 언덕’에 올랐다. 대학시절, 머리가 복잡할 때마다 찾아가 혼자만의 시간을 보냈던 곳이다. 계단에 적힌 윤동주의 시를 읽으며 한참을 올라가니 서울의 야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블링블링 꺼지지 않는 도시의 불빛. 서울에서 은하수를 볼 수 있는 곳이 있다면 바로 여기가 아닐까?
‘별 하나의 사랑과 별 하나에 동경. 별 하나에 야근과 그리고 별 하나에 팀장님! 팀장님!’
피식, 마른 웃음이 새어 나왔다.
“여러분, 지나고 보니 나방도 아니고 나비도 아니고 반딧불이였네요. 그렇죠…?”
그렇게 얼마나 앉아 있었을까. 뚜렷하던 불빛들이 물감처럼 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