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아리 안으로 바다가 흐른다
그저께 퇴임사를 준비했다 밤새 쓰고 지우기를 반복해 손날과 팔뚝 아래 검정 분칠이 그날의 흔적을 알리려 한다
지하에서 서식하는 많은 생들은 보통의 눈으로는 볼 수 없어 그들의 변태 과정도 알려지지 않은 경우가 많다
팔이 부채인 경우, 애벌레로 시작하여 번데기 단계를 거쳐 성체로 진화해 이러한 완전변태 과정은 그들의 생김새와 행동을 완전히 변화시키는 항아리 역할을 한다
항아리 안은 고요가 왕이다 안에서 울림이 밖으로 요동친다 파형은 부딪힘을 두려워한다 배움을 발리지 않는다 불변은 없다고 가늠한다 마찰은 원치 않는다
퇴직이라는 글자는 무겁게 내려앉아 밤낮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이상행동을 찾아 나서는 카메라 앞 뒤에서 조정하는 일을 했다
항아리에 주섬주섬 먹을 거를 재워놓는다 어쩜 먹을 수 없을지도 몰라 생애 처음으로 담은 간장이다 검은 숨이 켜려면 은빛이 필요한데 잠긴 하늘은 들임을 외면한다
항아리에 눈물이 가득 차 흘러내렸다 눈알은 뻑뻑한데 간장 샘이 터졌는지 주책없이 눈물이 안으로 안으로 흑갈색 바다가 두서없이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