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자아비판에 글을 멀리하기 때문이다.

1-1. 논문을 못 쓰는 이유 ▶ 자아비판에 글을 멀리하기 때문이다.

by 천년하루
* 프롤로그

[나만의 레벨 상승으로 심장이 뜨겁다.]

성공의 상징으로 살아온 과거를 멋지게 보여줄 방법은 무엇일까? 상징성 있는 자격에서 시작된 학위 취득의 열망은 최종 레벨인 박사 취득을 목표로 폭주 기관차 바퀴가 차가운 선로를 밀어내기 시작한다. 어린 시절 번뇌의 전차에 올라타 학업에 열중하지 못한 애달픔이 가슴 한편에 층층이 쌓여 탑을 이룬다.

직장에서 어느 정도 익숙한 흐름에 단조로움이 생기고 가정에서도 신혼 초 육아와 일을 병행하던 복잡함이 벗어날 때쯤 작은 욕구가 생겨난다. 이렇게 살다가 가면 밍밍하지 않을까 하며 세상에 태어났다면 뭔가 작은 흔적이라도 남기면 좋지 않을까 하는 별의별 생각이 허공을 한참이나 떠다니고 있을 때, 작은 소망이 목젖에 걸려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바둥바둥 댄다.

거친 환경을 탓하며 목이 타오를 때면 침을 모아 삼긴 채 꾹꾹 참아온 제 안의 꿈틀거리는 갈망을 억제하지 못하고 걱정 반 희망 반으로 자기 학습이 가능한 대학원 입학을 망설이다가 대학원 석사과정에 도전하면 뜨거운 심장의 감성 호수가 끓어오르기 시작한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C. 384~B.C. 322)는 “심장에서 감성이 표출되었다.”라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사람이 흥분했을 때 신체적 반응이 가장 활발하게 나타나는 중요 기관인 심장의 박동 변화를 통해 감성이 표출되는 것으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석사과정을 밟으려면 할 일이 많다. 시, 소설, 수필 글짓기를 통해 글쓰기를 시작하자. 글을 잘 쓰려면 잘 쓴 글을 읽어보고 느낀 감동을 제 작품에 품어서 녹이는 방식을 추천한다. 논문도 이전 우수한 성과로 학위논문을 통과한 같은 학과의 선행 논문과 유사한 구조에 맞춰 구성한 주제로 진행한다면 학위논문 졸업은 따 놓은 당상이다. 우수 논문을 쓰기 위해서 좋은 논문을 탐독하고 그 기준에 맞춰 논문을 쓰다 보면 어느새 높은 수준의 논문이 펼쳐진다.

충만한 에너지를 가졌다면 신춘문예에 도전하자. 논문을 쓰면서 다듬어진 칼을 고이 보관할 필요가 없다. 재야의 고수들이 칼 솜씨를 뽐내는 경연장에서 상금도 타고 이름도 날리고 재미있는 도전이다. 박사학위를 받았다면 최고 수준에 맞는 책을 출간하자. 논문 쓰는 과정에서 파악한 주제를 가지고 글을 쓰다 보면 재미와 흥미가 맴돌기 때문에 소재를 찾거나 글을 쓰는데 쉽게 지치지 않는다.

책을 출간했다면 해당 책을 가지고 이름값을 높이자. 졸업한 대학에서 강의도 할 수 있다. 형편이 되지 않는다면 평생교육원에다 학과 개설을 요청하고 출간 책 내용으로 강의를 시작하자. 박사학위를 가졌으면 자기 소개란에 강의 경력도 집어넣어야 전문가 반열에 들었다고 자부할 것 아닌가.

박사학위를 받기 위해서는 학위논문을 쓰고 졸업해야 한다. 학위를 받기 어려운 이유는 5명의 선행 박사에게 3번의 심사를 통해 박사 학위 논문으로 인정받아야 하는데, 선행 박사가 능력이 부족한 자의 미흡 논문에 인준 서명으로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에 자신의 명예를 걸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고된 과정을 거치고 박사 학위 논문을 인준 받고나면 제 학업 분야의 최고 레벨 달성으로 자체 각성한다.




▶ 자아비판에 글을 멀리하기 때문이다.


자기 겸손을 넘어 자아비판에 글을 멀리하기 때문이다. 통계는 하나도 모른다. 글을 못 쓴다는 것은 거짓이다. 대학 과정을 거쳐서 논문 쓰는 단계에 들어섰는데 글을 못 쓴다는 것은 잘못된 표현이다. 논문을 써본 경험이 없어 생소할 뿐이다. 원고를 작성하고 거울 앞에서 자신을 향해 글을 못 쓰는 이유를 3가지 들어 설득해 보자. 스스로 설득하지 못했다면 당신은 글을 쓸 수 있는 방증이다.


지나간 일에 대해 후회하는 것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큰 시간 낭비다.

뉴욕의 저명한 한 신경정신과 의사는 퇴임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동안 환자들을 만나면서 가장 큰 도움을 준 스승을 발견했다. 바로 많은 환자들이 입에 담는 <만약>이란 두 글자다. 나와 만난 환자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지난 일을 회고하고, 그때 반드시 해야 했는데 하지 못했던 일을 후회하면서 보낸다.

“<만약> 내가 그 면접시험 전에 준비를 잘했더라면”, “<만약> 그때 그 사람을 보내지 않았더라면” 만약이라는 두 글자와 함께 후회의 시간을 보내는 것은 엄청난 정신적인 소모를 가져올 뿐이다.

차라리 이렇게 해보는 것이 어떨까? 당신이 습관처럼 쓰는 <만약>이란 말을 <다음에>라는 말로 바꾸어 쓰는 것이다.

만약 꼭 들어야 할 강의를 듣지 못했다면 이렇게 말한다. “<다음에> 기회가 오면 반드시 그 강의를 들을 거야” 그러다 보면 어느 날 그 말은 이미 자신의 습관이 되어 버린 사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절대로 이미 지난 일을 가슴에 담아두지 말고, 문득 지난 일을 후회하는 마음이 들면 이렇게 말한다. “<다음 번엔> 그런 바보 같은 행동을 하지 않을 거야.” 이렇게 한다면 과거의 후회로부터 벗어날 수 있으며, 동시에 당신의 소중한 시간과 정열을 현실과 미래에 쓸 수 있을 것이다.


실제 집을 짓다 보면 현실적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경제적 문제, 지식 부족 문제, 이렇게 해도 되나 자체에 대한 의구심이 생긴다. 글쓰기 과정에서도 이런 요소로 인해 글이 산이나 들로 가버린다. 중심을 잡고 써야 하는데 중심 잡기가 서툴다. 최우선 과제는 문제의 중심을 잡는 것이다. 종이배를 물에 띄우기 위해 적당한 재질의 종이를 구한다. 재질에 따라 종이접기의 난이도가 다르다. 재질을 정했다면 크기를 정해야 한다. 무엇을 태울 것인지, 태우지 않을 것인지도 고민한다.


“1960년 9월 26일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인 존 F. 케네디 상원의원과 공화당 후보인 리처드 닉슨 부통령이 4번의 텔레비전 토론 중 첫 번째 토론을 벌인 날이다.

케네디는 구릿빛 얼굴로 건강함을 과시하면서 자신에 차고 거침없이 답변하는 모습을 시청자들에게 보였으나 닉슨은 창백하고 근심 어린 모습을 노출했다.

케네디는 프로듀서와의 사전 제작회의에 참가했으며, 스튜디오 배경을 고려해 검은색 정장과 파란색 셔츠를 골라 입고 앉아있는 동안 피부가 보이지 않도록 긴 양말을 신는 등 치밀하게 준비한다.

닉슨은 사전 제작회의도 불참하고 외관이 좀 밝게 보이게 조명등 아래 앉으라는 측근들의 조언을 무시하는 등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닉슨은 토론 내내 케네디만을 응시함으로써 시청자들과 거리감을 뒀으나 케네디는 카메라, 즉 국민을 정면으로 보고 얘기했다.

토론 다음 날 케네디 선거 유세장에 케네디의 나이와 종교에 관하여 의심하거나 그에 대해 많이 몰랐던 민주당과 무당파 지지자들이 운집했고, 심지어 보수 성향의 주지사와 유권자들조차 케네디를 지지하는 쪽으로 돌아서는 등 파장은 엄청났다.”


논문을 쓰는 사람은 케네디와 같은 성향을 지녀야 한다. 건강한 낯빛에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처음부터 논문을 척척 써 내려가는 사람은 없다. 처음 써보는 글이라 서툴 뿐이다. 중심을 잡고 방향만 잘 잡으면 논문을 못 쓸 이유가 하나도 없다. 지도교수 앞이라고 주눅 들지 말고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당당하게 논문을 쓰겠다는 결의를 보여준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