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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장

흘러간 흔적을 인정하다

by 천년하루

장 앞에는 하얀 경로잔치 노인 버스가 기다린다

마음은 바쁜데 몸은 따라가기가 싫은지 멈칫거리는 몸짓이다

삼단 신발장 문이 열리고 하얀 스포츠머리에 잔허리 꼿꼿한 노인이 서있다

첫 단에 앞머리 검은 단화 목을 오른손바닥이 더듬거리다가

구두 입천장에 손가락 네 개를 집어넣고

윗부분을 살짝 들어 올린 뒤 앞 쪽으로 보내자

가운데 단에 앞굽이 갈라진 삼색 슬리퍼 한 짝이 문안 인사를 올린다

닫힌 장에서 먼지가 찢어진 족보 몰래 똬리를 틀었는지

구두 앞코에 허연 비듬 같은 작은 분말이 살고 있다

노인은 왼 손 엄지와 검지로 구두 양 볼을 잡아들더니

오른 손가락 살 등으로 겉질을 털어낸다

조금 남아있던 가루눈이 거슬렸는지

입술을 오므려 큰 숨을 들이쉬고는 입김을 후하고 거침없이 세 번을 분다

헛기침이 나오자 앞부리에 침이 튀여 여러 방울이 가죽을 확대한다

노인은 신발장 하단 틈이 없는 서랍을 열기 위해

왼 손으로 문짝을 밀고 왼발로 밑 둥을 받치더니

오른손으로 미닫이 서랍을 어기죽 어기죽 연다

그 안에 털이 듬성듬성 빠진 울퉁불퉁한 검정갈색 솔 하나

시멘트 바닥에 두세 번 빗질한 뒤 구두코와 볼을 털기 시작한다

코에 묻어 있던 방울이 길게 퍼지자 동그란 말 그림 뚜껑을 연다

구두약은 오백 원 동전만큼 쪼그라들어 구둣솔을 비비자

솔에서 빠진 허리앓이 털이 배짝 마른 나프탈렌 같은 동지 옆에서

서로의 흘러간 흔적을 인정하는 듯 엇비스듬하게 누워있다

가만히 서서 바라보다가 구두 손질을 멈추고 신발장을 솔질한다

장 끝에는 누런 손주 재롱잔치 꼬마 버스가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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