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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국간호사 Sophia Apr 01. 2024

한국 병원 근무 경험기 - 2

B병원 - 전국구 암전문병원

결혼 전까지 살던 곳에서 먼 곳으로 이사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경력에 공백이 생겼다. 그간 힘들었던 근무에서 벗어나 백수의 자유로움을 느껴보니 이 또한 좋았다. 하지만 주부의 삶을 살기로 한 게 아니라면 언젠가 다시 일할 곳을 찾아야 할 터. 집에서 대중교통으로 약 한 시간 거리에 있던 전국구 암전문병원의 공고를 보기 시작했다. 이제는 약간의 경력을 가지고 있기에 경력직으로 지원할 수 있었고 그건 신규로 들어가는 것보다는 훨씬 수월한 조건이기도 했다. 다만 전국구이기에 전국의 암환자들이 물밀듯 내원하는 곳이고, 그만큼 중환자들이 많아서 업무강도 자체가 무섭도록 가혹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게다가 일도 힘든데 태움도 있다는 소문 때문에 입사를 하더라도 또다시 각오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결정적으로 문제는 경력직이든 신규이든 공고자체가 나오지 않는 시기였다.

 그래도 집 주변에서 출퇴근하기에 거리가 아주 멀지는 않았고, 상급종합병원의 경력으로 너무 작은 곳에서 일하고 싶지는 않았기에 쉬는 기간을 즐기면서 추이를 보고자 했다.


그러다 메르스가 터졌다. 아마 이때부터 신종감염병이라는 것이 인류에게 위협을 준다는 공포가 생긴 것 같다. 중동에서 발생했다던 이 감염병은 낙타가 옮기는 것인데 왜 머나먼 동양의 작은 나라에까지 공포심을 주는지 모르겠다며 연일 뉴스에서는 무서운 이야기를 보도했다. 그러면서 예의주시하던 그 병원에서 연구간호사 공고가 올라왔다.


PA로 일하면서 암환자를 담당하는 일을 해왔고, 암전문병원에서의 경력을 이어나갈 수 있다는 생각에 무슨 일이든 해보고 싶다고 마음먹었는데 간호사로서 하는 일이기는 하지만 임상이 아닌 연구에 관련된 일이어서 좀 더 흥미를 느꼈고 서류를 보고 꼼꼼하게 일처리를 해야 하지만 미친 듯 바쁜 분위기로 일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마음이 좀 놓이기도 했다. 하지만 보통의 일자리가 그렇듯 동종경력이 없는 사람에게 첫 기회는 그리 쉽게 주어지질 않는다. 그래서 그 일을 하기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도 몰랐지만 메르스가 무서워 병원이 텅텅 비어 가는 상황에서는 오히려 직장을 구하기에 적기(?)라는 발상으로 지원을 했고 비록 급여를 후려치기 당하기는 했지만 그렇게 나는 연구라는 분야에서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스스로 그만두겠다고 결정하기까지 4년이 조금 못 되는 시간 동안 참 많은 경험을 했다. 그리고 내가 어떤 업무에 적합한지 알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지금은 더 이상 연구와 관련된 일을 하고 있지 않지만 생각보다 나는 느리지만 꼼꼼하고 배울수록 일을 잘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업무에서 만나는 환자들을 그저 연구대상자로 생각하고 필요한 정보만을 얻는 것이 아니라, 의료인으로서 환자에게 조금이라도 이득이 될만한 방법이 있는지 알아보고 도움을 주려 노력하는 자세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는 새로운 일을 배우는 것을 두려워하지는 않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덤비듯 일을 하는 것은 무섭고 선호하지 않는다. 그래서 처음에는 뜸을 들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소극적으로 느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일을 제대로 잘 해내기 위해 나름대로 소요해야만 하는 로딩시간이었으며 그 시간을 잘 이용해서 내가 할 수 있다고 느꼈을 때는 얼마든지 자신감 있는 자세로 일을 해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준비가 되지 않아도 던져지고 어찌 되었든 해내야만 하는 한국의 임상은 나에게는 너무나 부담스러운 환경이었고 억울하지만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으로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경력이 조금씩 늘어가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많아지면서 그 로딩은 줄어들기 시작했고, 우리나라가 조급하고 많은 것을 요구하는 것이지 그것이 일반적이지는 않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여담이지만 내가 미국에서 간호대를 다니며 간호사가 되는 것에 확신과 자신감을 느꼈던 가장 큰 이유는 각자의 속도를 인정하고 각자의 방식을 존중하면서도 환자가 중심이 되는 간호를 제공하도록 가르치고 배우는 환경 때문이었다. 나는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고, 한국에서만 배웠기 때문에 미국에서 맞닥뜨린 낯설고 자신 없는 술기를 해야 했을 때에도 무조건 억지로 시키거나 시켜놓고 못하는 것을 지적받는 것이 아니라 나의 상황에서 가장 잘 해낼 수 있는 신체적, 정신적(?)인 상태를 만들 수 있도록 기다려주고 도와주며 어떻게든 내가 간호사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지지해 주는 분위기 덕분에 불편함이나 두려움보다는 해보자는 마음으로 실습을 했던 경험이 있다. 그래서인지 경력이 어느 정도 쌓인 지금에도 한국에서의 임상은 여전히 버겁게 느껴지지만 내가 느낀 따뜻했던(?) 미국에서의 임상은 얼마나 더 발전했을지 기대가 되는 이상한 마음이 든다.


결론.

연구라는 분야는 정적인 업무가 많지만 꼼꼼하고 차분한 면이 많은 나에게는 잘 맞는 일이었다. 하지만 당장 돈을 벌어들이는 분야가 아니기에 급여나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의 성과가 평가절하되는 부분이 많다. 성공과 실패를 떠나서 시도를 하는 것에 많은 점수를 주는 선진국에 비해서 여전히 우리나라는 발전해야 하는 여지가 많기는 하다. 만일 중증의 환자를 매일 만나는 것에 두려움이 있거나 너무나 소극적이어서 사람을 만나는 것이 익숙지 않은 간호사가 있다면 한 번쯤 권해볼 만한 포지션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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