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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킬번댁 Oct 23. 2021

할머니! 엄마가 그러는데 착하게 살면 멍청한거래.

오늘은 16세기에 만들어진 하이델베르크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이자 괴테가 사랑한 성. 잇단 전쟁과 자연재해 속에서 운명이 여러 번 바뀌면서도 결국은 타협하지 않고 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고성 투어가 있는 날이다. 서둘러 조식을 먹고 아이 간식도 몇 가지 챙긴 뒤 호텔을 나오자 선선한 바람이 맑은 햇살을 지나 불어왔다.


호텔 창 너머 보이는 성은 고작해야 한 뼘 정도의 거리밖에 안돼 보였다. 어림잡아 도보 15분이면 충분할 것 같은 거리라 돈도 아낄 겸 산책도 할 겸 성에 오르기로 했다. 그런데 막상 호텔을 나와 산 허리에 위치한 성을 마주하니 그 높이가 보통이 아니었다. 걸어서 오른다면 어림잡아 못해도 30분 이상, 왕복 한 시간 이상의 발품을 팔게 될 상황인데 비탈진 길을 걸어 올라갈 생각을 하니 귀차니즘이 발동했다.


고작해야 몇 유로 안 되는 돈이기도 했고, 케이블카로 산을 왕복하면 시간도 에너지도 아낄 수 있으니 옳다구나 싶어 노약자 세 분을 꼬셨다. 평소의 엄마였다면 허리 보호 차원에서 '당연히 땡큐'를 외쳤을 법 한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고작해야 약수터 높이밖에 안되는데 엄살도 심하다며 되려 면박을 주는 게 아닌가. 엄마가 안 올라 가봐서 그래. 나중에 딴 말하기 없어. 다리 아프다고 해도 안 주물러 준다고 건방진 으름장을 놓았지만 묵묵부답에 별 수 없어 털레털레 계단을 따라 올랐다. 그런데 왜지? 계단 오르기 몇 분만에 힘이 쭉 빠진다.


다리에 힘이 풀리자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들어찬다. 괜한 불평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구시렁거리며 노약자 세분의 뒤를 따라 중간쯤 왔을까 몸에 힘을 빼고 느긋하게 기어가는 민달팽이가 보였다.


경계태세를 갖추지 않고 유유자적, 한가로운 몸짓의 달팽이를 본 딸아이가 걸음을 멈추고 무릎을 모아 앉는다. 걸어 올라가는 것도 억억울한데느긋한 그분들이 답답해 속이 탄다. 서둘러 일처리를 마치려는 내 마음과 달리 노약자 세분은 (그놈의) 달팽이에게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다.


출발 전 강낭콩 만했던 마음의 조급함이 어느새 하늘을 뚫을 만큼 덩치를 키웠다.


'빨리, 빨리, 제발 좀 빨리. 오늘 일정을 끝내려면 시간이 빠듯하다고!'


조급한 나와는 달리 그 누구 하나 자리를 이탈할 생각도, 서두를 기색도 없다. 세월아 네월아 이놈의 달팽이는 여덟 개의 눈이 쏘아보고 있음에도 느릿함에 속도를 붙일 생각이 없다. 그래. 급한 건 나 혼자였구나.


에라 모르겠다 싶어 딸내미 옆에 우두커니 자리를 잡고 달팽이를 째려봤다. 미끈한 몸으로 이끼 사이를 느리게 스치는 달팽이가 보였다. 그리고 잠시 뒤 거짓말처럼 빠르게 흐르던 삶의 시간이 달팽이의 시간에 맞춰졌다.

처음엔 지루했고 그다음은 답답했다. 그러나 달팽이의 시간에 익숙해질 즈음엔 그제야 내가 놓치고 있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서두르지 않은 덕에 속삭이듯 흔들리는 나뭇잎이 보였다. 채 마르지 않은 빗방울이 잎사귀 표면에 내리 앉아 햇살을 받으니 반짝반짝 눈부시다. 지저귀는 새소리가 한 마리, 아니 여러 마리가 되는 것 같다고 알아 갈 때쯤, 하얀 아이의 얼굴에 함박 웃음이 피어있는걸 보게 되었다.

그렇지... 여행은 이런 거였지.


평소 내가 살아가는 시간과 지극히 어긋난 시간을 살아도 잘못되지 않음을 알게되는 것, 시간이 흘러가는 그대로를 지켜 보는 일 이 결코 낭비가 아니라 자연스러울 수도 있다는 것이 여행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 나 지금 여행 중이잖아. 느려도 괜찮다고.'

느림의 미학을 몸소 체험하고 비탈진 기슭을 오르자 숨이 차올랐다. 하지만 숨 고를 틈이 없다. 혹여나 몇 개 없는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가 동이 날까 서둘러 티켓 창구로 달려갔다. 신분증을 맡긴 뒤 오디오 가이드와 한국어로 만들어진 안내 책자를 인원수 대로 빌렸다. 귀에 이어폰을 꼽고 준비를 끝내자 아이가 마치 투어가이드 마냥 빨간 손수건을 흔들며 줄을 세운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제가 가이드입니다. 손수건을 따라와 주세요."


어디서 본 건 있어가지고 따라 하기도 참 찰떡같다.

딸내미가 흔드는 빨간 손수건을 따라 걸으며 선명한 모국어로 타국의 유적지에 대한 설명을 듣는 명쾌함이 어찌나 짜릿한지 절로 신이 났다. 노약자 세 분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는지 모두들 오디오 소리에 집중하느라 침묵 일관 중이다. 다른 때 같았으면 폭풍 질문 공세로 '정신 가출 투어' 의 문이 활짝 열렸을텐데 말이다.


설명에 집중하며 하이델 베르크 성 투어의 백미인 약 22만 리터의 어마 무시한 양의 술을 저장할 수 있는 일명 '세계에서 가장 큰 와인통'을 보기 위해 지하로 내려갔다. 그런데 투어의 주제에 '술' 이 등장하자 오늘도 어김없이 논 알콜러 엄마와 프로 알콜러 아빠의 숨 막히는 설전이 시작됐다.


술통은 딱히 술을 저장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기보다는 전쟁 시 혹시 모를 식수 부족을 대비하기 위한 '비상 식수 통'이었다고 하는데 술통의 진정한 쓰임새를 몰라본 논 알콜러 엄마가 '사는데 대체 이런 큰 술통이 왜 필요하냐'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자 프로 알콜러인 아빠가 깜짝 놀라 격한 반박을 했다.


"아니, 이 사람아!! 술통이 왜 필요가 없어! 술 없음 인생 재미없어 어찌 살라고?"


"저 난쟁이 봐봐. 술통 지키면서 하루에 와인을 15리터씩 마셨다잖아! 그런데 웃긴 게 뭔지 알아? 의사가 저 난쟁이한테 '여보시오, 그렇게 술 마시다가는 골로 가는 수가 있소. 그러니 제발 술 좀 끊으시오' 했다잖아. 그랬더니 어떻게 된 줄 알아? 술 끊고 하루도 안 지났는데 글쎄 난쟁이가 죽었다고 그래. 더 웃긴 건 그 난쟁이가 죽은 나이가 팔십 이래. 팔십. 호상도 그런 호상이 없지. 중요한 건 난쟁이가 죽은 이유는 술 때문이 아니라 스트레스 때문이었어. 술보다 무서운 게 스트레스야! 스트레스! 알지도 못하면서!"


술통 옆에 와인잔을 들고 거나하게 취해 보이는 난쟁이 페르케오를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아빠의 그럴듯한 설명에 홀라당 넘어가서 일까? 갑자기 근처 와인바가 눈에 들어온다. 와인 가격에 와인잔이 포함되어 있어 기념으로 가져가도 된다니 꿩 먹고 알 먹고 좋겠다 싶어 발길을 돌리는 찰나 내 수작을 눈치챈 엄마의 눈초리가 찌를 듯 날카롭다. 이럴 땐 세상의 평화를 위해 내빼는 게 상책이라 아닌 척 다음 장소로 발길을 옮겼다.

엄마의 눈초리를 피해 왕실의 정원을 걷다 하이델 베르크 전경이 펼쳐진 전망대에 기대 유유히 흐르는 넥카강을 바라보았다. 산 아래 펼쳐진 아름다운 구시가지의 모습과 달리 허물어진 날것 그대로의 모습의 성이 맞지 않는 퍼즐 조각을 올려놓은 듯 어색했다. 어째서 이곳은 허물어진 그대로의 모습을 하고 있는 걸까?

그때였다. 마치 내 마음을 읽은 듯 얼굴에 궁금함이 들어찬 아이가 내게 묻는다.


"엄마! 그런데 여기 성들은 왜 모두 부서져 있어?"


"응.. 여기에서 전쟁이 많이 일어났었데. 그래서 성이 폭탄을 많이 맞고, 공격도 많이 받아서 그렇게 됐데. 그런데 이것도 많이 복원한 거래. 그 전엔 성이 흔적도 없이 바닥에 돌만 가득했다더라고."


"그건 아까 설명 들어서 나도 알아. 내 말은, 왜 더 고치지 않고 그냥 두었냐고. 디즈니 성처럼 이쁘게 고치면 더 사랑받고 많은 사람들이 좋아할 수 있잖아."


"손녀딸~ 그건 말이야. 성을 고치려면 돈도 많이 들고, 많은 사람들의 힘도 필요했데 그런데 사람들은 성을 위해서 희생을 하고 싶지 않았나 봐. 먹고살기도 힘든데 성이 뭐가 중요하냐고 싫어했데. 그래서 성은 오랫동안 못난 모습을 하고 있었던 거야. 그러던 어느 날 이 아름다운 성을 도저히 그냥 놔둘 수 없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나타난 거지. 그 착한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했데. 돈과 노력은 많이 들겠지만 무너진 성을 그대로 둔 다면 나중에 우리 자식들이 더 이상 성을 볼 수 없게 될거라고. 다음 세대에게도 이 성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아무리 힘들더래도 고쳐야 하는 거라고. 그래서 그 착한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 성을 고쳐 나갔데. 처음엔 반대를 한 사람들도 착한 사람들의 마음이 전달돼서 꾸준히 함께 고치다 보니 지금의 성이 만들어 진거야. 그리고 지금도 꾸준히 고치고 있는 중 이래.


성을 고치려고 마음먹은 착한 사람들 덕분에 우리가 성에 올 수 있었던 거야. 그러니까 우리 손녀딸도 착한 마음으로 살아야 해. 착한 마음은 죽은 성도 다시 아름답게 살려 낼 수 있고, 못된 사람의 마음도 돌리는 힘이 있거든."


"할머니 말이 맞네. 그 사람들 진짜 착하다. 근데 할머니!!  엄마가 착하게 살면 바보라고 했는데?"




엄마의 설명을 들으며 과거 폐허가 되어 사람들의 발길조차 끊긴 초라한 성의 모습과 사람들의 사랑과 관심으로 다시 태어난 성의 모습을 떠올렸다.

화려하게 시작했지만 전쟁의 희생물로 결국 폐허가 되어 채석장으로 이용된 보잘것없는 성. 어쩌면 이 성은 사람들의 기억에 자리잡지 못 할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겨우 채석장이 될 운명을 벗어나 지금의 모습을 유지하게 되었다는 것은 대가를 바라지 않는 착한 사람들의 노력이 만들어낸 크나큰 결과 인지도 모른다.


난 그동안 아이에게 '착하다.' '착하게 살아야 한다.'라는 말을 하는 게 겁이 났다. 그러다 보니 아이를 키우며 입버릇처럼 하게 되는 말이 '너무 착하게 살아도 안돼' '요즘 세상은 착하기만 하면 맹한 거야'였다.


모두가 한데 엉켜 착하게 살면 더 할나위 없이 좋겠지만 세상살이 내 맘 같지 않다 보니 착한 것보다는 '차라리 약은 게 낫다' '약으려면 착하지 않아야 하니까'라는 생각을 하며 아이를 키웠다. 그래야 손해를 덜 볼 것 같았고, 그렇게 살아야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주변 누군가가 아이를 칭찬할 때 '너 참 착하다~' '이렇게 해야 착한 거야~'라는 말을 할 때면 마음이 불편했다. 자식이 착하게 자라준다면 싫다 할 부모가 어디 있겠느냐만은, 아이가 '착하다!'라는 단어에 익숙해지면, 훗날 어른이 되어서도 '당신 참 착하군요.'라는 상대방 말에 취해, 싫은걸 거절하지 못하고 그저 이용 당하기 쉬운 '착한 사람'만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착한 사람 콤플렉스에 빠져 속앓이를 하며 살게 될까 걱정이 앞섰던 거다.


그런데 하이델베르크 성에 올라 엄마의 이야기를 들으니 결국 세상을 움직이는 건 착한 사람들, 선한 마음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동안의 내 육아관이 참으로 편협하고 어리석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우리는 장사꾼으로서 세상에 온 게 아니니,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가 이득을 얻기 위함만이 아닐 것인데 어떻게든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 아등바등 애쓰는 모습이라니. 그래서 아이에게 선한 마음을 부정하는 엄마가 되었다니. 그런 장사꾼의 마음으로 아이를 키웠다고 생각하니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지금은 손해 보는 것 같더라도, 어차피 세상은 착한 마음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을 텐데.

나도, 아이도 선 한 시선으로 세상을 살아가야 함이 옳지 않은가.


여전히 수다 삼매경인 엄마, 아빠와 딸아이를 뒤로하고 아직도 복구해야 할 곳들이 많이 남은 성을 둘러보았다. 착한 이들의 신념이 담긴 성의 모습이, 두 동강이 나 이미 한쪽 면은 허물어진 지 오래인 화약고의 모습이 더 이상 불쌍해 보이거나, 쓸쓸해 보이지 않았다.

분명 또 다른 착한 사람들의 손길을 타고 앞으로도 조금씩 그 모습을 다듬어 나갈 테고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보잘것없는 낡은 고성도 예전의 영광을 누리는 그런 날이 올 테니 말이다.



하이델베르크 성이 내게 말했다.


'나는 지금 위태롭고 초라한 모습으로 너에게 보이겠지만, 눈에 보이는 그것이 전부가 아님을 알아주길.

폐허가 된 나를 이 자리에 있게 만든 것도, 앞으로 나를 있게 만들 자들도 결국엔 선한 마음을 갖은 자들일 테니.

부디 이 세상을 선한 마음을 갖고 살아가기를. 그 선함이 결국엔 사람의 마음도, 세상도 움직이게 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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