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유독 게을러지고 싶은 날이었다.
금요일 저녁, 미처 끄지 못한 평일 알람 덕분에 7시 15분에 깨었다가 다시 잠이 들었다. 그리고 8시 30분 정도에는 저절로 눈이 떠지고 말았다. 아마도 이때 무의식 중에 오늘은 무조건 게을러지겠다고 다짐을 했던 것 같다. 졸리지 않았지만 굳이 늦잠을 자겠다고 다시 이불을 덮어썼고, 결국 11시 반 즈음 느지막이 일어났다.
아침이면 나는 잠에서 깨고자 창문을 열어 환기시키곤 하는데, 토요일인 오늘도 예외 없이 문을 활짝 열었다. 차가운 공기가 들어오면 기분이 상쾌해지고 머리가 맑아진다. 그리고 잠시 이번 주말에 꼭 하려고 했던 일들이 머리에 스쳤다. 학원 복습하기, 겨울옷 사러 가기, 헌혈하기, 24년도 계획 세우기, 다이어리 구매하기, 머리 염색, 책 읽기, 안경 맞추기 등등. 이번 주말을 제외하고 11월 주말에 모두 약속이 있어 이번 주에 해결해야지 마음을 먹었던 일들이다.
그런데 갑자기 주말에 반드시 해야만 했던 모든 일들이 너무나 귀찮게 느껴지면서, 오늘은 그냥 아무것도, 정말이지 아무것도 안 하고 그저 누워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책하고 자전거 타는 걸 좋아하지만 급격하게 추워진 날씨 탓인지 해가 반짝 들어도 밖으로 나가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리고 넷플릭스나 유튜브처럼 시간을 소비해 버리기 쉬운 것들에만 눈이 갔다. 결국 나는 오후 4시까지 넷플릭스 드라마를 골라 시즌 1을 정주행 하고 나서야 일어났다.
해야 할 일을 못했다는 죄책감이 몰려왔지만, 오늘은 그냥 나 스스로에게 주말 하루정도는 아무런 생각 없이 그 누구보다 게으르게 살아도 괜찮다는 위로의 마을 해주기로 했다. 괜찮다. 몸과 마음이 쉬고 싶다고 신호를 보낸 것을 무시하지 않았을 뿐이다. 이렇게 오히려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말해주니 에너지가 생기는 기분이다.
내일은 조금 더 힘을 내어 움직일 수 있도록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