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쯤 되니 직장과 내가 조금씩 분리되기 시작함을 느낀다.
예전에는 내가 속한 모든 것들이(학교, 아르바이트, 직장) 곧 나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고 조금 부족더라도 작은 부분까지 신경 쓰고 노력했다. 이는 금전적인 보상이나 인정을 바라는 것이 아니었고 그냥 내가 하는 거니까 잘하고 싶었다. 어릴 때라 순수했던 것인지, 아니면 그저 학습된 책임감인지 몰라도 나 자신에게 떳떳할 수 있도록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서른 인 나는 짧지만 여러 아르바이트와 직장 경력이 생겼다. 이렇게 시간이 지나고 경험을 하다 보니 전부일 것만 같았던 직장도 결국 떠나면 그만인 것을 깨닫게 되었고, 조금씩 직장과 나를 분리하는 연습을 하게 되었다. 일이 조금 잘 안 풀려도 쪽팔릴지언정 세상이 무너지지 않는 것을 경험으로 알게 된 것이다. 그냥 스스로를 갉아먹지 않을 만큼만 사회에서 주어진 나의 역할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
서른 이전의 사회생활에서, 나는 학생 때 꿈꾸었던 직장생활에 대한 로망을 모두 실현해 보았고 지금은 안정적인 환경에서 일을 하고 있다. 생각해 보면 소망했던 모든 것들 하나하나가 삶에 있어 동기부여가 되어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발전하게 만들어 준 것 같다. 그 길에서 만난 좋은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받기도 했다. 그런데 로망이 곧 나의 현실이 되면 이 또한 그렇게 아름답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 당시 나의 직장생활에 대한 로망은 다음과 같다.(그리고 현실)
내 얼굴이 있는 사원증을 찍고 매일 출근하기 (딱 처음 1주일만 설렌다.)
일 끝나고 사내 헬스장에서 빌딩을 바라보며 러닝머신 뛰기 (일 끝나면 바로 집 가고 싶다.)
밤늦게까지 회식해 보고 집에 가기 (그냥 회식이 싫다.)
공간에 구애받지 않는 업무 환경 (자유로운 재택은 퇴근이 없다.)
함께 열심히 일하고, 뿌듯한 느낌으로(?) 택시 타고 퇴근하기 (그냥 피곤하다.)
호텔이나 멋진 곳에서 워크숍 해보기 (호텔은 휴가에 가족과 함께, 코스요리보다 국밥 먹고 싶다.)
이제는 딱히 회사생활에 대한 로망이 없다. 그저 주말을 바라보며 한 주를 버티고 월급날을 생각하며 한 달을 버틴다. 나의 커리어를 어떤 방향으로 발전해 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있지만, 예전처럼 회사의 업무 하나하나에 마음을 쏟아 스트레스를 자처하는 일은 드물다. 나름대로 운동도 하고 글도 쓰며 나의 인생을 즐기고 있고 사람들을 만난다.
서른, 사회생활 초년기에 해당하는 내가 바라본 4,50대 직장인의 모습은 각양각색이다. 아마도 내가 겪었던 비슷한 것들을 경험하며 세월을 살아온 분들일 것이다. 곧 나의 모습이 될 수 있는 인생의 선배들로부터, 좋은 부분을 골라 배워나가야지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