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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끼리 Jun 25. 2024

30대_ 미생

나에게 미생은 드라마 이름이다. 


미생은 바둑을 두던 주인공 장그래가 계약직으로 들어가 사회를 배우며 성장하는 스토리의 드라마다. 나는 드라마를 처음 접하고 가슴에 와닿는 대사들을 소장하고 싶어서 원작인 만화책 전집을 구매하기도 했다. 20대 초반에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얼마 되지 않는 돈으로 생활하면서 큰 마음먹고 구매해 몇 번이나 읽었는지 모른다. 이러한 기억들 또한 내 삶의 한 조각이 되어 자리 잡았다.


6월은 내 생일이 있는 달이다. 서른 번째 생일은 평일이었고 나는 평소와 똑같이 출근해서 일을 했다. 5시 퇴근이지만 아무와도 약속을 잡지 않고 집에 있었다. 정말이지 전혀 특별하지 않은 하루였다. 그런데 왜 인지 모르게 나에게 이렇게 평범한 하루가 선물같이 느껴졌고 무사히 지나간 날들을 되돌아보니 앞으로도 이렇게 편안한 날들이 펼쳐질 것만 같은 안도감이 들었다. 이 또한 내가 누릴 수 있도록 하늘이 준 선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번 생일을 혼자 보내긴 했어도, 나에게는 사실 먼저 연락해 나의 안부를 묻는 친구들이 있고 필요한 것들을 챙겨주는 가족이 있다. 또한 나에게 진심 어린 관심을 기울여주는 친구가 있어서, 이 친구와 함께 생일을 기념해 도자기를 만드는 체험을 하며 조금 특별한 주말을 보내기도 했다. 아마도 이 덕분에 혼자 보내는 시간이 선물 같다고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다가 문득 드라마 속 오 차장님이 '우리는 다 미생이야'라고 인턴 장그래를 위로하며 건넨 말이 떠올랐다. 원하는 것을 모두 가진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결국 나와 같은 '미생'이라는 말은 하나의 문을 열면 또 하나의 문이 기다리고 있다는 김대리님의 대사와 결이 비슷하다. 나는 결국 우리의 인생은 끝없이 해야 할 일이 펼쳐진 굴레와 같다고 이해했고, 드라마를 처음 접했던 20대와 달리 이러한 말들이 더 현실감 있게 느껴졌다.   


서른쯤이 되니 나는 뭔가 이루고 있구나 하는 착각을 하다가도 결국엔 아무것도 아닌 것임을 깨닫는다. 살아간다는 것은 이러한 착각과 깨달음의 반복이 계속되고 이런 굴레에서 그저 덩치를 키워나가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종종 이러한 굴레는 자신을 타인과 비교해 스스로를 부족하다고 느끼고 무언가 보잘것없는 사람처럼 생각하게 만든다. 나는 혼자 보내는 생일에 무엇을 하면서 보낼 예정이냐는 질문에 솔직하게 답하면서 이러한 느낌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대답을 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서 읽히는 안쓰럽다는 표정들을 보며, 재밌기도 하면서 조금은 슬프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사람들이 사회가 정해둔 과업들(취업, 연애, 결혼 )에 스스로를 가두지 않고 다양성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미생에서 벗어나 여러 가지 형태의 완생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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