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벨 바그: 새 물결 프로젝트> 2편
첫 번째 물결: 미디어 디톡스 / 책을 일상으로 가져오기
영상물은 하루에 한 편만 볼 것, 영상을 보지 않는 대신 책을 읽을 것. 3일간 두 가지를 지켰다. 무명의 독자가 미디어 디톡스를 하고 싶은 이유는 ‘생각하며 살기 위해서‘라고 한다. 본격적으로 생각이란 걸 하며 지냈다. 오늘은 그 2, 3일 차 기록을 담았다.
어제는 밤 10시에 잠들었다. 아침 7시에 일어나서 7시간 동안 카페 알바를 하고 약속을 두 개나 갔다가 돌아온 날에도 이렇게 일찍 잠들지는 않는다. 자기 직전까지 꾸역꾸역 유튜브를 보다가 눈의 피로에 항복하듯 잠들던 날들이 있었다. 디톡스를 하지 않는 모든 날이 그랬다.
하지만 나는 이제 디톡스녀가 되었고... 새벽 기도를 갈 수 있기까지 했다. 오전 5시 15분에 출발해서 기도를 하고 콩나물 국밥을 먹고 집에 돌아오니 7시 반. 여러모로 뜨끈한 아침을 보냈다. 어차피 깨어 있어 봤자 읽고 쓰기밖에 안 할 테니 다시 자기로 했다. 이런 때는 하루가 너무 길어지는 것도 곤란한 일이다. 결국 예상보다 시간을 더 쓰고 정오에 일어났다.
일어나자마자 카톡을 확인하고, 곧바로 인스타에 들어가려다가 손가락이 길을 잃는다. 내가 찾는 앱이 그 자리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것들을 미리 삭제해놓지 않았더라면 앱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일을 반복했을 것이다. 그건 더 곤란한 일이다. 길을 잃은 김에 쉬는 시간이란 걸 어떻게 보내야 할지 멀뚱히 생각한다. 내 집에서 길을 잃는 순간이 반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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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일어나자마자 전날 보던 유튜브를 마저 보거나, 인스타를 하면서 상쾌하게 하루를 시작한다. 남들이 무얼 하며 사는지, 웃는지 염탐하는 일이다. 별생각 없이 남들이 편집한 것들을 본다. 찍히고 편집된 것은 필연적으로 과거의 일이라는 사실을 잊는다. 씻고 난 후에는 아점을 먹는다. 와중에도 유튜브는 계속 틀어져 있다. 밥을 다 먹고 일어나는 시간은 작은 쇼를 만족할 만큼 즐겼을 때다.
보통은 글을 쓰러 카페에 다녀와서 저녁을 먹을 때도 티비를 틀어둔다. 요즘은 무한도전에 빠져 있다. 물론 티비를 보는 내내 멀티를 한답시고 핸드폰도 한다. 밥을 다 먹고도 할 일이 없다면 영화 한 편을 본다. 혹은 드라마 몇 편. 잘 시간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면 방에 들어가, 어둠 속에서 유튜브를 보다 기도를 하고 잠든다.
평소 나의 루틴이 얼마나 전자파 쓰레기였는지를 다시 깨닫는다. 무언가를 틀어두지 않고서는, 바라보지 않거나 스킵하지 않고서는 가만히 쉬지도 못하는 사람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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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오늘은 보통의 때가 아니고, 나는 점심으로 먹을 고구마를 구워놓고 차를 우리면서 책을 펼친다. 지난번에 읽던 <우정 도둑>을 다 읽지 못했다. 마침내 책에서 우정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유지혜 작가의 우정은 ‘지현’이라는 인물을 향한다. 갑자기 내 친구 지원이가 보고 싶어져서 카톡을 보내둔다. 여러모로 나의 우정이 집약된 인간은 지원인 것 같기 때문이다.
걔는 곧 이사를 할 계획이라고 했다. 자기 방을 둘러볼 사람들을 위해 부리나케 청소를 했다고도 말했다. 머지않아 그의 헌 집이 누군가의 새 집이 될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는데 동생이 샤워하는 소리가 들린다. 쟤가 씻을 때면 핸드폰 대리점에서 흘러나올 법한 노래가 들린다. 지금 나오는 음악은 '박재정- 헤어지자 말해요' 저렇게 멀대같이 크고 까만 애가 애절한 노래를 들으며 개운하게 샤워하는 순간이 너무 웃기다.
오늘의 영상물 한 편은 어벤져스의 앤드게임. 무려 3시간짜리 영화라서 1시간씩 나눠 볼 요량이다(원래라면 단숨에 보고도 다른 영상을또 틀었겠지만). 첫 1시간을 보는 동안 기억에 남은 문장은 “끝없는 우주 공간이 주는 두려움”. 끝이 예견되지 않는 순간부터 두려움이 시작된다. 나 역시 모든 일을 통제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가능한 많은 걸 알고 싶다. 정확히 알아야만 극복되는 공포라는 게 있다. 언젠가는 통제에 대한 욕구를 내려놓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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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와 데이트를 했다. 청주의 한 독립서점 겸 카페에 다녀왔고, 그곳에서 이민진 작가의 <파친코>를 처음 읽게 됐다. 한국계 미국인인 작가가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으로 건너간 한국인의 이야기를 썼다. 그가 자신이 속해있으면서도 속해 있지 않았던 세계를 구축하는 힘은 무엇일까. 읽는 내내 꽉 차는 느낌이 들었다. 재미와 흥미와 의미를 모두 잡은 소설이었다. 글에 빨려드는 느낌은 아주 간만이었다.
초면인 카페에 앉아 초면인 파친코를 읽는 동안, 아주 구면인 오빠가 옆에 있었다. 그는 내 옆에서 <천로역정>을 읽었다. 전시하지 않아도, 구경하지 않아도 꽉 차게 행복한 날. 좋은 글을 읽는 내내 좋은 사람과 있었다. 딱딱하고 불편한데 움직이는 의자에 앉았어도, 끝까지 불평하지 않고 각자의 독서로 인해 충분했던 오후.
나는 파친코를 읽기만 했고, 오빠는 천로역정을 읽다가 찬양을 들으며 나를 가만히 쳐다보다가 웃다가 내 볼을 만지다가 유튜브를 보았다. 그러면서도 내가 자기 영상을 훔쳐볼까봐 손으로 가리는 액션까지 취했다. 어이가 없어서 웃는다. 그의 뻔한 유머에 이제는 스며든 걸까... 큰일이다. 예전엔 별로 웃기지 않았는데. 이제는 그냥 꾸준한 유머에 감탄하게 된다. 웃음에도 근성이 작용한다는 걸 처음 알았다.
기가 막힌 삼계탕 집을 찾았다. 정확히는 찾는 건 내 몫이고 즐기는 건 우리의 몫이다. 나는 녹진한 들깨삼계탕을, 오빠는 맑고 깊은 옻삼계탕을 먹으며 감탄했다. 아주 배가 부른 채로 동방신기 노래와 2000년대 수련회 찬양 메들리를 들으며 서로를 몰랐던 과거를 가늠한다. 그 때 나는 수련회에서 가장 먼저 앞으로 달려가 찬양하던, 바르고 뻣뻣한 애였다. 오빠는 숨어서 딴 짓을 하다가 이따금씩 제자리로 돌아오는, 엇나가지만 예의 바른 애였다.
우리가 서로를 몰랐던 때 우리는 얼마나 빛나고 또 빛나지 않았던가. 각자의 자리에서 착실히 기도하는 요즘, 어느 때보다 안정적이고 순도 높은 기쁨을 느끼며 그를 만난다. 우리가 바라보는 방향이 크게 다르지 않음을 느낀다. 올곧은 사랑으로 인해 혼자서도 “잘” 있을 건강한 용기를 얻는다.
오늘 방문했던 독립서점 겸 책방의 인스타를 확인하고 싶다... 역시 관성으로 앱이 담긴 폴더 앞까지 갔다가 손가락이 길을 잃는다. 챌린지가 끝나고도 그 카페를 기억한다면 팔로우하게 될 것이다. 아니라면 그 정도로 궁금하지는 않은 것일 테다. 문득... 이 프로젝트가 내 안의 중요한 무언가를 회복시킬 거라는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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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엔 찬양팀 연습이 있었다. 연습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보니 쫍쫍 마시던 커피에 벌레가 들어가 있었다. 연습할 때 눈앞을 알짱거리던 것이었는데 갑자기 사라진 게 어쩐지 이상하다 싶었다. 아무튼 벌레를 먹지 않은 데 감사하기로 했다. 모든 행동이 조금씩 느려지는 동시에 선명해진다. 평소라면 핸드폰을 보다가 벌레를 먹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평소라면... 찬양팀이 끝나고 집에 오면 저녁 11시. 많은 에너지를 쏟아내고 온 만큼 집에 돌아오는 즉시 잠들 채비를 한 뒤에 영상에 빠져든다. 렌즈를 빼고, 씻고, 안경을 쓰고, 티비를 켜기까지 아주 많은 생각이 생략되곤 한다. 오늘치의 수고, 사람, 연민, 슬픔, 사랑. 그것들을 꾹꾹 눌러담은 채 소화하지 않고 신속히 영상에 빠져드는 것이다. 그러면 일단은 덮인다. 소화되지 않은 것들은 언젠가 삐져나올 것이지만, 그냥 덮이는 게 나은 것들도 있다. 그럼에도 살아남은 것들을 쓰면 된다.
아까 보던 영화를 1시간만 보고 끄는 데 성공했다. 보는 중에 핸드폰을 두 번(내일 먹을지도 모를 방어 맛집 서치 + 영감 메모) 만졌고, 양치를 한 번 했다. 한 번에 한 가지 일에만 집중하려고 했으나 아직은 어렵다. 빠르게 내려가는 스크롤을 바라보면서 멀미를 느낀다. 낯설지 않은 울렁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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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출근할 때마다 신발장에서 다녀오겠습니다- 고 나직이 말한다. 그의 출근 예고는 우리가 집에 있건 없건 듣건 말건 계속된다. 잠결에도 그 소리를 자주 들었다. 가끔은 힘을 주어 잘 다녀오라고 소리친다. 그러면 아빠는 예상치 못한 반응에 놀랐다는 듯 잠시 멈췄다가, 어~ 하고 답한다. 아무도 듣지 않는데 다녀오겠다고 말하는 사람의 마음은 무엇일까. 어쩌면 아빠의 기질은 긍정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삶의 풍파에 깎여나간 긍정은 여전히 긍정이지, 부정은 아니니까.
일어나서 패딩 소매에 묻은 때를 지우고, 아침으로 먹을 떡을 데운다. 냉동된 떡을 전자레인지에 살짝 해동해서 에어프라이어에 굽는 것은 나의 오랜 바람이었다. 겉바속촉인 떡을 맛보고 싶지만 두 번 데우기 귀찮아서 미뤄왔던 일이다. 패딩 소매에 묻은 얼룩을 지우는 일도 마찬가지다. 일어나자마자 핸드폰을 보지 않으니 밀린 일을 처리할 시간이 남아돈다.
오늘의 영상 한 편은 저녁 식사 때의 핑계고. 한 시간짜리 영상을 가볍고 귀중한 마음으로 본다. 동생과 약간 싸운 채로. 안 그래도 다퉜는데 형제 둘이 앞만 보고 밥을 먹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번 핑계고 게스트는 이동욱, 임수정, 이상이다. 리모컨으로 유튜브를 켜는 동작이 신속하지만 조금 낯설기도 하다.
저녁엔 주현과의 온라인 글모가 있었다. 글을 한 편 가져와서 만났어야 하는데, 레터를 신경 쓰느라 그 유일한 준비물을 잊었다. 지난 번에는 오프라인으로 만나서 글을 썼다. 그것만 기억하다가 미리 글을 써와야 한다는 단 하나의 사실을 잊었다. 글모를 잊은 것도 아니었는데 준비물을 잊다니... 지점토나 수수깡을 사오는 걸 잊고 학교 정문에 선 초등학생의 마음이 된다.
글모를 내일로 미루고, 사과하고, 전기장판 위에서 <우정 도둑>을 완독한다. (이 책은 주현이 선물한 것이다...) 책 한 권을 이렇게 빨리 읽은 게 얼마 만인지! 그의 글은 쉽게 읽히지 않는다. 두세 번 곱씹어야 온전히 이해될 때가 많다. 그럼에도 이따금씩 언어의 천재 같다는 생각이 들 만큼 정확한 표현을 사용할 때가 있다. 명징한 언어. 아주 많은 글을 읽었기 때문에 쓸 수 있는 글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의 글에는 아주 많은 여자들, 작가들, 예술가들, 뉴요커들, 옛날 사람들이 있었다. 그저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타인의 경험을 훔치고 빌릴 수 있음을 느낀다. 그가 어렸을 때는 자신의 창문이 책이었다고 했다. 세상을 향해 열린 창. 이제 그의 책은 나의 창문이기도 하다.
미디어 디톡스 3일차. 오늘도 저녁 9시 반에 침대에 눕는다. 일찍 잠자리에 드는 일이 조금은 자연스러워졌다. 루틴이란 걸 만드는 데 고작 3일의 시간이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 영상을 보지 않는 동안 나는 읽었고 썼고 생각했고 만났고 말했다. 보지 않아도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았고, 이제 그냥 흘러가는 시간은 없었다. 흘려 보내지 않으니 시간이 되돌아왔다. 그리고 물었다.
이제 뭐 할래?
이전과 달리 붕 떠오른 시간 속에서 이제 뭐하지... 를 고민하다가 3일을 보낸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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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피드백도 환영입니다. 여러분의 이야기를 들려주셔도 좋습니다. 혹시 이루고픈 삶의 태도를 바꾸고 싶거나 추가하고 싶으시면 답장해주세요. 소망이 더해질수록 우리의 하루는 더욱 풍족해질 것입니다. 첫 번째 물결은 다음 편까지 이어집니다.
발송일 2023. 12.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