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나의 십자가

by 최열음

감사하게도 나는 믿는 사람이다. 하나님이 존재함을 믿고 그가 주는 사랑을 믿고, 다른 이들에게도 비슷한 사랑을 줄 수 있음을 믿는다. 아주 가끔 그런 사람들을 본다. 사랑이 다 어디서 오는지 묻고 싶을 만큼 깊고 헌신적인 사람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늘 사랑을 주고 싶은 사람이었다. 줄 줄 아는 사람이 진짜 강한 사람이며, 알짜배기라고 생각했다. 그런 마음으로 아빠는 나의 십자가가 되었다.


예수님이 졌던 십자가처럼 내가 지고 가야 할 버겁고 사랑스러운 사람은 아빠였다. 너무 무겁고 나를 지치게도 했지만 동시에 정말 사랑하고 싶은 대상이었다. 나는 아빠를 사랑할 수 있으면 모두를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빠를 사랑하는 게 너무 어려웠기 때문에… 아빠에 대한 미움은 예측이 불가했고, 꽤나 진득하게 얼룩진 것이었으므로. 여하간 나는 내가 우리 가족의 문제를 두고 질긴 투쟁을 할 운명이라는 걸 예견했다.


이를 위해 알아둘 사실이 있다.


1. 어렸을 때부터 글 쓰는 일을 좋아해서 고등학교 때 문예창작과 진학을 준비한 적이 있다.

2. 입시용 글쓰기에 질려 문창과를 포기한 후 재수를 거쳐 경영학부에 오게 됐다.

3. 그래도 글을 쓰던 날들을 잊지 않기 위해 스무 살에도 시를 써갈긴 적이 있다…


글을 써야 할 운명을 깨달은 스무 살의 최승희는 이런 부끄럽고 적나라한 글을 남겼다. <부대끼며 사는 것보다 치사하고 솔직한 일은 없다> 나는 우리 집이 꽤나 치사하고 불공평하다고 생각했나 보다. 한 친구는 이 글을 보고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 “부대끼며 사는 게 왜 치사하고 솔직한 일이야?” 너무 주관적인 데다가 나만의 이야기라서 이런 질문을 받을 만했다. 그럼에도 그런 질문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는 건강한 가족을 가졌을 거라고도 생각했다.


나는 우리 가족의 어려움을 활자로 새김으로써 온 천하에 공표하기로 다짐했고, 비슷한 이유로 무너지고 있는 가족들에게 이 잔해가 닿기를 바라고 있다. 당시에 나는 이러한 글도 남겼다.


“온도의 차이를 느낀다/ 때론 불행하게도/ 때론 특별하게도/ 어느 쪽이든 편협하다/ 불합리하다고 느낀다는 건/ 갈망하는 것이다/ 따뜻함을 내게 달라는”


어쩜 점도 하나 안 찍고 한 호흡에 이만한 불합리를 논했는지. 이렇게 뻔뻔하게 사랑을 구걸하는 시를 쓰면서 사랑을 원하는지도 몰랐다. 스스로를 사랑할 생각도 하지 못했다.


여기서 온도의 차이를 느낀 사람은 나, 느끼게 한 사람은 아빠, 비교 대상이 되었던 건 남동생이었다. 나는 남동생보다 뻣뻣하고, 든든하고, 애교 없는 존재라서 덜 사랑받는다고 느꼈다. 여기서 뻣뻣하다는 것은… 사랑받고 싶다는 마음에서 비롯되는 몸의 불균형이다.


나는 애교를 장착하기는 어려운 첫째 딸이었으므로 현명함을 덧칠했다. 똑똑함보다는 똘똘함으로 인정받고 싶었고, 성실히 학교 생활을 하며 각종 상장을 섭렵했다. 그 상장들이 우리 집 한편에 걸리기는 했지만 그걸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아빠는 능력 있는 것보다 당장의 기쁨을 원했다(물론 그가 말한 것은 아니고 내 생각이다). 동생은 아빠의 적적한 저녁날에 단비 같은 존재였다. 언제든 안방에 쳐들어가 쓸데없는 잡담을 늘어놓을 수 있는 능력이 내겐 없었고 걔한테는 있었다. 그러나 동생을 원망하는 건 아니다.


이러한 이유들로 나는 사랑을 받는 대신 그만한 사랑을 주기로 선택했다. 겸허히 그들을 위해 식사를 준비함으로써 헌신하기로 했고, 이 희생으로 인해 모두가 편해질 것이라는 불온한 기대를 품고 있었다. 사실 아빠가 엄마 없이 홀로 남았다는 사실에 집중하느라 내게 엄마가 없다는 사실은 제쳐두고 있었다. 나는 가끔 울었지만 크게 슬퍼하지 않았고, 공허함을 느끼지도 못했다. 아빠가 무너지는 걸 볼 자신이 없어서 내가 정신줄을 부여잡았다.


그렇게 엄마의 그림자를 지우려 애썼지만 그건 건드릴수록 더 깊게 빠져드는 구멍이었다. 이렇게 평생, 당연히 부엌을 책임지다가 내게 싱크홀이 생길 것 같았다. 그때는 몰랐지만 나는 나만의 방법으로 괴로움을 표현했었다. 모순적이게도 내게 그렇게나 고통을 주었던 음식을 입 안에 한가득 넣고 내 머리를 퍽퍽 때렸었다. 그리고 울었다. 그렇게 음식을 잔뜩 밀어 넣은 나의 미련함에 벌을 주면서 해소를 느꼈지만, 동시에 내가 너무 불쌍했던 것이다.

견딜 수 없는 시간을 아무렇지 않은 척 견디다 보면 이런 잡음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제야 나는 멈춰서 엄마를 애도하고 지난날을 슬퍼할 시간을 갖게 되었다. 그래도 내게는 신이 주신 사랑이 있으니 가족을 위해 묵묵히 밥 하는 것쯤은 해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나의 희생으로 모두가 편해지지는 않았다. 나를 제외한 두 명의 삶만이 반쪽 짜리 안락함을 누릴 수 있었다. 그러니 어느 누구도 온전한 마음일 수 없었다.


게다가 밖에서 밥이라도 먹고 오려면 귀신 같이 달려드는 귀소 본능을 외면해야 했다. 내가 없이 제대로 밥을 해 먹는 사람은 없었고, 시켜 먹거나 라면을 먹거나 최악은 안 먹는 등 어쩌면 내게는 가혹하고 무책임하기만 한 일이 생겼다. 어떻게 먹든 그들의 자유지만, 우리 아빠는 대충 먹는 일에 진절머리를 내는 사람이었다. 그가 한 마디씩 던지는 불평들이 내게 꽂혀있었다. 그래도 그는 끝까지 부엌에 들어오지 않았고 그 자리는 여전히 내 것이었으니, 밥상을 제대로 차려내는 수고롭고 거룩한 일도 온전히 내 차지였다.


나는 아빠를 사랑하려면 다시 돌려받을 것을 기대하지 않고 사랑했어야 했다. 그게 신이 내게 보여주었던 진짜 사랑이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나는 어리석게도 사랑의 등가교환 법칙을 믿었으나, 돌아오는 게 없다고 생각해 엇나가기 시작했다. 가족들에게 받는 것도 없이 주고만 있다는 생각에 배알이 틀렸고 말이 헛 나왔다. 안 예쁜 말만 툭툭 내뱉는 누나딸이 되어 엄마라는 그림자를 슬슬 피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우리 가족의 개념을 재정립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들에게 사랑을 맡겨놓지 않았다. 그들도 내게 음식을 맡겨놓지 않았다. 어쩌면 우리는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서로에게 너무 많은 빚을 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제 조금은 자유해져도 되지 않을까. 어떤 해방이란 게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몰랐다.


내가 가족을 사랑하고자 발버둥 치는 이유는 결국 우리가 가족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서로 사랑하기로 약속된 존재이자 같은 사랑의 방향을 지닌 존재이므로. 나는 아빠라는 십자가를 지고 있지만, 아빠는 나라는 십자가를 지고 있을지 모른다. 둘 모두 짐을 내려놓고 개인으로서 마주할 수는 없을까. 그게 더 온전한 방법일 것도 같은데.

어떤 방법이든 나는 아빠를 사랑하기 위해 하나님을 먼저 사랑할 것이고, 나를 사랑할 것이며, 그 사랑이 아빠에게까지 흐르게 할 것이다. 원한다면 그 질긴 여정을 지켜봐 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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